스내커

동지

오늘이 ‘작은 설’이라는 동지입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긴 이날, 선인들께선 붉은 팥을 삶아 거른 물에 새알심을 넣고 죽을 끓여 조상신에게 올리고, 대문과 집안 곳곳의 담벼락에 뿌려 액귀를 쫓는 의식을 거친 뒤에 이웃들과 오손도손 나누어 잡수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맘때는 한 해를 무사히 보낸 데 대한 고마움과 다가오는 새해를 복되게 맞이하려는 다짐으로 가득한 시절이지요. 요핑계 저핑계로 팥죽끓이기를 생략하고 동지를 지나버리던 저였지만, 오늘은 동지죽을 끓여 이웃의 평안도 빌고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려 합니다.

어릴적 동무들과 놀다 집에 들어오면 팥 삶는 냄새가 코를 진동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은 왜 그리 기분이 좋고 신이 나던지요. 팥시루떡, 팥칼국수, 팥죽, 단팥죽, 찰밥, 팥경단…… 팥이 들어간 별미들을 죄다 떠올려보면서 어머니가 지금 만들고 계시는 게 무얼까를 상상해보는 순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팥으로 만든 음식 중에서도 동지팥죽은 그 맛에 있어 단연 으뜸입니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동지팥죽은 소화도 잘 되니 한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기는 음식입니다. 저자거리에 나가보면 고만고만한 밥집보다 팥죽집에 사람들이 몰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요.

홍역을 치루느라 열이 올라 머리가 지근지근 쑤시던 유년의 어느날, 어머니는 제게 물어오셨습니다. 네가 먹고 싶은 건 뭐든 다 만들어 줄 테니 말 해보라고요.
어린 마음에도 동지죽 끓이기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라는 건 헤아리고 있었던지 한참을 머뭇거리다 ‘동지죽’이라 대답했던 기억이 날 만큼 저는 동지죽을 좋아했습니다. 

예전의 동지는  잔칫날이었습니다. 내일이 동지다 싶으면 학교 파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옵니다. 커다란 가마솥엔 팥물이 끓고 있었고 소반 위엔 동글동글 빚어진 새알심이 가득했지요. 죽이 다 될 때까지 부엌에 들어오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스르고 살짝 들어가 새알심 한 움큼을 몰래 집어넣다가 뜨거운 팥물이 튀어 곤욕을 겪기도 했더랬습니다.
 
기다리던 동지죽이 다 만들어져 식구들과 두레상에 죽 둘러앉아 뜨거운 새알죽을 호호 불어가며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국물과 함께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밤이 이슥해지면 차갑게 식은 동지죽을 옹자배기에서 한 대접 퍼와 설탕 한 숫갈을 더해서 먹는 그 맛은 또 어떻고요.
  
한 해가 이우는 세밑에 이르니 제가 지었던 온갖 허물들이 도드라져 마음이 잦아듭니다.
<중용>에 ‘言顧行 行顧言’ (말은 행실을 돌아보고, 행실은 말을 돌아보아야한다) 하였거늘, 말이 앞선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허기를 메우기 위해 책을 읽거나 명사들의 강의를 들으러 다닌들, 행실이 배움을 따르지 못하면 모두가 헛수고일 뿐입니다. 책을 선정할 때에도 (특히 인문학 서적인 경우)저자의 생애부터 살필만큼 지행일치를 삶의 가장 큰 지침으로 여겨오면서도 자신은 정작 이를 실천하지 못해 많이 부끄럽습니다. 나이를 얼마나 더 먹어야 사람값을 제대로 할 수 있을런지요.

잡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한데 압력솥의 핀 돌아가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치치직’ 팥냄새와 함께 된김을 뿜어내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팥물을 만들고 새알심을 빚을 요량에 몸은 바빠지고 가라앉았던 마음도 다시 환해집니다.
맛난 동지팥죽 끓여 나누면서 모처럼 선행도 하고 즐거운 캐롤 들으면 오늘 하루는 잘 보낸 셈이겠지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