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전통이 살아 숨쉬는 안동 나들이



       <사진-안동 하회마을 원경, 홈페이지 제공>


       <사진 -안동 하회마을 . 홈페이지 제공 >

낙동강의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돌아 천재(天災)와 인재(人災)에 쉽게 휘둘리지 않은 살기좋은 땅, 안동의 하회(河回)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열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둘러보고 인근의 풍기에서 인견과 인삼장을 본 뒤, 영주의 부석사를 들르는 당일치기 여정이었습니다. 망중한(忙中閒)이더라고, 폭염과 폭우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지난 8월 하순의 하루를 택했었는데 그날따라 기온은 내려가고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지요.
이것저것 걸리는 일들이 많고도 많았지만 죄 접어두고 훌쩍 늦여름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유림의 고장, 안동을 가보아야지 늘상 벼르고 있었지만 마음처럼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아릿다운 친구들이 그걸 단박에 해결해주었습니다.
고맙고 반가운 마음으로 대문을 나서는 발걸음은 아주 가푼했지요. 난생 처음 안동땅을 밟아보는 소회는, 아! 이리도 고스란히 전통을 이어오는 마을이 實在하는데 여지것 난 뭘 하면서 살았나 하는 무력감에 자괴감까지 더해 잠시 가라앉는 마음을 뒤로하니, 다시 우리의 옛것에 대한 벅찬 애정이 용솟음칩니다.

울며 투정을 부리던 아이도 금세 웃어버린다는 하회탈이 소장된 탈박물관을 돌아 본 뒤, 저희 일행은 草家와 瓦家, 民家와 班家, 강과 산, 학문과 생업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하회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하회마을이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마을이 아닌 풍산 유씨들이 600여 년간 대를 이으며 살아온 집성촌인 까닭입니다.
 
한말까지는 350여 가구가 살았으나 현재는 약 150여 가구가 남아 이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마을 내에는 437개 동의 건물이 있고 127 채의 가옥이 있는데 이 중, 12 가옥이 보물 및 중요 민속 자료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7월 31일)에는 하회마을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 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을 흙담길 아래 소담스레 피어 있는 봉숭아며 채송화 그리고 맨드라미의 고운 빛깔들이 지나는 길손들의 잃어버린 유년을 되찾게 해줍니다.

여정은 다시 살림을 위한 풍기 쪽입니다.
가슬가슬한 맛에 더위를 쉬 잊게 해주는 인조 차렵이불이며 집에서 간편하게 입을 옷가지들과 인삼 장보기를 마친 저희 일행은 안동한우로 좀 거한 식사를 했습니다.
출발 전에는 안동 헛제사밥을 먹어보려니 싶었지만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여 안동한우구이를 택하게 됐지요. 좀 더 넉넉한 일정으로 안동을 다시 방문하여 마을이나 서원의 고택에서 하룻밤 정도 묵으면서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한 곳들을 두루 찾아 볼 예정입니다.
마지막 남은 일정이 도산서원과 영주 부석사를 둘러보는 것이었지요.

안동 여행의 정수는 퇴계 선생의 仁義의 정신이 깃든 도산서원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친구들은 배움의 기회를 놓칠세라 해설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빛을 반짝거립니다. 서원에 보존된 낱낱의 사적이 담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생애를 살피는 일이 더 뜻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도산서당은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된 지극히 단순한 한옥의 구조물입니다.
이는 선생의 절제된 선비정신이 물리적으로 드러난 형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생을 仁義가 실행 되기 어려운 벼슬로 지내기 보다는, 學理를 궁구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세상과의 소통과 앎의 실행을 위해 더 긴 세월을 할애한 선생의 뜻이 서원의 곳곳에 서려 있어 발걸음 머무는 곳마다 敬畏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茶山 정약용 선생은 인(仁)의 의미를 성리학에 근거하지 않고 초기 유학의 경전(洙泗學)을 재해석함으로써 보다 명징한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仁이란 두 사람(仁者 二人也, <論語>)을 의미하고, 두 사람이 서로 관여할 때의 윤리적 행위(仁者二人相與也, <論語古今註>)를 뜻합니다.
사람은 출생과 동시에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형제들 사이에 끼이게 됩니다.
이러한 혈연적 인간관계를 자각함으로써 효제(孝第)의 도리를 아는, 금수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기에 인간이란 仁을 行하지 않을 수 없는 실존적 당위에 직면합니다.

부모와 자식, 임금과 신하,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 나와 친구의 관계처럼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이런 對待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무릇, 이 세상의 모든 관계에서 서로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쌍무윤리(雙務倫理)를 실행하는 것이 바로 仁인 것입니다.
仁이란 자애로운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기보다 구체적인 상황 상황에 따른 사람으로서의 구실, 사람값, 사람다운 길로 가기 위한 실천규범입니다. (李乙浩, <茶山經學思想硏究> 참고)

義란 일의 마땅함, 즉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羞惡之心 義之端也)고 맹자는 사단론에서 설파했습니다. 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도 하였으니 仁과 義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實行해야 할 필수적인 덕목입니다.

私見이지만 저는 義에 대한 이런 聖賢의 思辯的인 해석보다 작가 김훈 님의 ‘正義란 약자의 밥을 뺐지 않는 것’이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명쾌한 풀이에 더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귀하께선 무엇이 정의라 생각하시나요?

끝 모르는 탐욕이 몰고 온 금융위기 이후, 신봉해오던 시장경제 논리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고, 實利 앞에 의리가 무색해지는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퇴계선생의 廉潔한 생애와 정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크고 귀한 가르침입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은 다시 걸판진 세속입니다.
이천쯤 오니 달리던 차는 서다 기다를 반복합니다.
정체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친구들은 주저할 것도 없이 노래방을 시작합니다.
‘삼포가는길’ ‘밤배’ ‘서울의 찬가’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편지’… 레퍼토리는 쉴 줄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지적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눈빛들은 언제더냐 싶게 온데간데 없습니다. 먹고 노는 일이 배움보다 훨씬 재미 있는 나이에 도달해버린 것을 어쩌지 못합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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