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는 피었는데

입력 2010-04-19 07:42 수정 2013-01-29 06:14








<진달래. 사진- 조현숙 님>

세상의 일도 날씨도 뜻 같지 않아 한동안 집안에서만 눌러 지내다가 모처럼만에 봄나들이를 했습니다.  산의 초입에 들어서니 무심한 세월은 그래도 흘러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진달래의 모습이 그날 밤, 영문도 모른 채 느닷없이 산화하신 님들의 화신인 것만 같아 지나는 사람의 걸음을 무겁게 합니다.가슴을 옭죄며 애타게 귀환하고 싶어 했을 천안함 장병님들의 절박함이 진달래의 전설 속, 망제의 애절함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에 핀 진달래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왜 이리 가슴이 에이는지요. 그 연유는 아득히 지나버린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수업 시간,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배우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실력이나 인품 면에서 두루 존경을 받았던 선생님께서는 진달래에 얽힌 슬픈 설화를 장장 1 시간 여에 걸쳐서 저희들에게 들려 주셨습니다. 그 후, 진달래는 봄꽃이 아니라 이승에 한을 품은 망제의 애절한 화신이라 여기게 되었지요.

옛 중국의 촉나라에 이름은 두우(杜宇)이고 제호는 망제라 불리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망제가 문산이라는 산 밑을 지나는데 그 옆으로 흐르고 있는 강물에 시신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나더래요. 망제는 이를 기이하게 여겨 그에게 사연을 물은즉 '나는 별령이라는 사람이며 강가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졌는데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고 하더래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했던 망제는 그를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 준 사람이라 생각하고 별령에게 집과 벼슬을 내렸어요.

하루 아침에 정승 자리에 오른 별령은 불측한 마음을 품고 대신과 하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든 다음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어요. 때 마침 별령에게는 어여쁜 딸이 있었는데 그녀를 망제에게 바쳤어요. 망제는 크게 기뻐하며 국사를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버리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 지냈대요. 그러는 사이 별령은 여러 대신들과 짜고 망제를 나라 밖으로 몰아내고 위나라를 세워 자신이 왕위에 올랐어요. 졸지에 나라를 빼앗기고 타국으로 쫓겨난 망제는 촉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면서 종일토록 울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망제는 지쳐 죽었는데 한 맺힌 그의 영혼은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돌아가고 싶다)라 부르짖으며 목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더래요.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두견새를 촉혼(蜀魂) 두우(杜宇) 원조(怨鳥) 귀촉도(歸蜀禱)라고 불렀답니다. 망제의 억울한 혼이 새가 된 두견은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로 다시 목을 축이며 운다고 합니다. 두견새의 피가 땅에 떨어져 진달래꽃의 뿌리에 스며들어 꽃의 빛깔이 붉어졌다고도 하고 꽃잎에 떨어져서 붉은 물이 들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진달래꽃을 두견화라 부르기도 합니다.
두견새가 한번 울 때마다 두견화는 한 송이 씩 피어난다고  설화는 전하고 있습니다. 

봄바람에 나부끼는 진달래꽃 몇 잎을 따고 양지 바른 산 어귀에 돋아난 쑥을 한 웅큼 캐 왔습니다.
쑥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빻아 온 맵쌀가루와 버무려 찜솥에 베보자기를 깔고 쪄서 쑥버무리를 만들었습니다.
진달래는 꽃술을 떼어내고 물에 살짝 흔들어 물기를 닦아 준비합니다.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동글납작하게 빚어 꽃잎을 얹고 살짝 누른 후 약한 불에 앞 뒤를 돌려가며 익힌 후 설탕을 묻히고 잣가루를 뿌린 진달래화전을 접시에 담았습니다. 

두견주 한 잔을 따라 진달래 꽃잎을 띄우고 쑥버무리와 진달래화전을 소반에 차려놓고 진혼을 위한 조촐한 다례를 올려봅니다. 그날 밤, 차거운 바다에서 불의에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살아서 돌아가고 싶다 '

흩날리는 꽃잎처럼 홀연히 이승을 떠나가신 님들이시여, 부디 평안하소서.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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