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전야

입력 2009-12-24 05:18 수정 2010-12-23 20:17
성탄절을 설레임으로 기다리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마 그 때가 1950년대 말이었을 거예요.
성탄절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얘기해주신 산타의 존재에 대해 긴가민가 하면서도 저의 상상력은 사실 쪽에 무게가 실리데요.
'글쎄, 산타 할아버지는 저 좁은 굴뚝을 타고 어떻게 그 큰 선물꾸러미를 메고 오실 수가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도 제가 갖고 싶어 하는 인형이 제발 저의 머리맡에 놓여져 있기를 기대하며 잠이 들었지요.
성탄절 새벽 눈이 뜨이자마자 본능적으로 베개 위로 손이 가더군요.
과연 저는 선물을 받을 만큼 선행을 많이 했는지 그런 건 그 순간 고민할 일이 전혀 아니었지요.

더듬거리고 있는 손에 무언가 뭉텅한 게 잡히데요. '아하!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다녀가신 거로구나.' 예쁜 주머니 속에는 알록달록 색색의 새콤달콤한 드롭프스와 아주 앙증맞은 인형이 들어 있었지요. 얼마나 기쁘던지... 그러고 얼마 안 돼 대문 쪽에서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 새벽 찬송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마당으로 나가보니 어머니는 며칠 전에 쑤어 놓은 동지팥죽을 그분들에게 대접하느라 부산하신 모습이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맞이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환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제 유년의 기억 속에 남아 있네요.
불행하게도 산타의 꿈이 허구임을 알게 된 때부터 이 세상은 늘 원하지 않는 일들이 시도때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지 않았나 싶군요.

저는 크리스챤은 아니지만 성탄절은 어느 명절 못지 않게 각별하게 지냅니다.
성북동에 자리한 천주교성당 앞길에는 성탄절 무렵, 윗마을 길상사에서 마련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 쓰인 현수막이 나부낍니다. 이듬 해 4월 초파일이 돌아오면, 길상사 앞에는 아랫마을 성당에서에 제공된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합니다.' 라 쓰인 화답의 현수막이 걸립니다.

지난 2월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 님과 길상사를 창건하신 법정스님은 아주 각별하게 지내시는 사이이기도 했지요. 이렇듯 서로 다른 길을 걷고 계시는 두 분 종교 지도자들께서 인간적으로 깊이 교유할 수 있으셨던 것은, 방도는 달라도 사람과 세상을  크게 보듬으시려는 사랑, 그것을 공유할 수 있으셨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습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차가운 길목에서 이런 아름다운 풍정을 떠올려 보니 제 마음 또한 따뜻해집니다. 오늘은 시절에 걸맞는 조금 화려한 저녁상을 마련해 볼려고 합니다.
한식엔 즙(소스)을 끼얹는 요리가 없다는 편견을 깨는 전통음식인 잡누르미를 소개합니다.
잡누르미는 누르미 중에서도 육물 어패류 야채류가 고루 들어가서 붙은 이름인데 아주 화려하고 정성이 들어간 음식입니다.
지금은 많이 잊혀진 전통요리이지만 몇 번 만들어보시면 모양과 맛이 두루 좋은 음식임을 아시게 될 거예요.
  
어육류나 채소를 양념하여 꼬치에 꿰어 굽거나 팬에 지지는 음식을 적(炙)이라 합니다.
적은 다시 산적과 누르미로 나뉘는데 산적은 재료를 양념하여 꿰어 옷을 입히지 않고 굽는 요리를 가리키며 누르미는 양념하여 구운 재료 위에 즙을 끼얹거나  다시 옷을 입혀 팬에 부치는 음식을 말하는데 전자를 누르미, 후자를 누름적이라 합니다.

<잡누르미>
재료
소고기 500G, 불린 해삼 3마리, 전복 3개, 오이 3개, 당근 1개, 표고버섯채 1컵, 석이버섯 2큰술, 달걀 4개, 잣 반컵, 육수 1컵, 육즙(육수 1컵, 물녹말 2큰술, 소금 약간) 잣가루, 올리브유, 죽염
갖은양념-간장 2,5큰술, 설탕 2큰술, 참기름, 1큰술, 배즙, 1큰술, 생강즙,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다진 파, 1큰술, 깨소금

조리법
소고기는 폭 12센티 길이 7센티로 도톰하게 썰어 칼집을 넣고 갖은 양념에 재웠다가 팬에 구워 나비 1센티로 자른다.
불린 해삼은 끓는 물에 데쳐 식힌 다음 부드러워지면 소고기와 같은 크기로 썰어 밑간하고 다진 파와 마늘로 양념하여 살짝 볶는다.
전복도 손질하여 살짝 쪄서 해삼과 같은 방법으로 준비한다.
오이와 당근도 같은 길이로 썰어 소금 간하여 팬에 볶는다.
석이버섯은 물에 불려 손질하여 가늘게 채 썬다.
달걀을 풀어 간을 하고 황백 지단을 도톰하게 부쳐 고기와 같은 크기로 썰고 약간은 가늘게 부쳐 채 썬다 .
믹서에 잣과 육수를 넣고 갈아 잣즙을 만든다.
냄비에 육수를 간하여 끓이다가 물녹말 2큰술을 넣고  멍울이 지지 않게 저으면서 한번 더 끓여 걸죽한 육즙을 만든다.
육즙에  지단 채 썬 것과 석이버섯채만 남기고 모든 재료를 넣고 버무려 최종 간을 죽염으로 맞춘 후, 색스럽게 꼬치에 꿰고 길이를 가지런히 맞춰 정리한 후 잣즙을 바르고 잣가루를 뿌린 다음 접시에 담고 석이채와 황백 지단으로 장식한다.
잡누르미에 곁들일 음식은 데친 브로콜리와 물미역에 생굴을 접시에 담아 초고추장과 함께 내시면 밥상의 균형이 맞습니다.
맛난 요리 장만하시어 소원했던 사람들과 함께 나누시면 이도 땅 위의 평화이지 싶네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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