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비가 두어 차례 내리더니 들녘엔 억새풀 더미의 허옇게 피어버린 솜꽃들이 싸늘한 허공으로 흩날리고 있네요.
그 황량한 겨울 벌판에 유난스레 파란 생명력을 드러내며 자라나고 있는 식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보리순입니다.

'물도 흐르지 않고 논둑위에 깔렸던 잔디들도 푸른 빛을 잃어가고 그 맑고 높던 하늘도 검푸른 구름을 지니고 찌푸리고 있는데 너 보리만은 차가운 대기 속에서 솔잎과 같은 새파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하늘을 향하여 솟아오르고만 있었다.'
수필가 한흑구 님은 이즈음 들판에서 자라고 있는 보리를 이렇게 표현 했네요.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는 보리의 새순은 시금치 보다 칼륨이 18배, 비타민 C는 3배나 많다고 합니다.
굳이 이런 영양학적인 정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저는 보리순(싹)으로 만든 음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지난 봄, 수십년 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가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이 바로 이 보리순을 넣어 만든 팥시루떡이라고 하데요.

보리는 우리가 먹을 것이 귀해 기근의 세월을 지나 오던 시절, 먹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만 했던 음식이라 그 눅눅한 기억이 싫어 의식적으로 멀리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 따라 보리(잡곡)의 대우는 바뀌어 요즈음은 웰빙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어 보리밥을 즐겨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지요.
하지만 보리순은 여전히 식재료의 관심권 밖에 있는 듯합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파란 비닐봉지 속에 들어 있는 보리순이 진열대 한쪽으로 치워진 채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니까요.

예전엔 보리순을 다른 봄나물들과 함께 주로 이른 봄에 먹었는데 요사이엔 파종 시기가 빨라 지금 나오는 것이 뻣세지 않고 부드러워 조리하기에 좋습니다. 여린 보리순을 캐서 차로 만든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보리순은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되는 작물이라서 우리 몸에 더 좋은 것이지요.
보리순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보리시루떡, 보리순 굴 된장국, 보리순 바지락 된장국, 보리순 나물, 보리순 부침개, 보리순 겉절이 등이 있습니다.

<보리순 시루떡>
보리떡은 무시루떡이나 호박시루떡을 찌는 방법과 동일합니다.
쌀은 현미나 일반미를 하루 저녁 물에 불렸다가 건져 백설기용으로 빻아오시면 됩니다.
취향에 따라 찹쌀을 반 정도 넣기도 하고 아예 차시루떡으로 찌기도 합니다.
팥을 잘 무르게 삶아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빼고 소금간 하여 중국팬에 넣고 잠시 덖어 수분을 날려보냅니다.
보리순은 깨끗이 씻어 건져 물기를 뺍니다.
빻아 온 쌀가루에 보리순을 넣고 고루 섞이도록 잘 버무립니다.
찜기나 시루에 시루밑이나 베보자기를 깔고 팥고물 한 켜 쌀가루 한 켜씩 넣고 떡을 앉혀 고루 익도록 쪄냅니다.
기호에 따라 설탕량은 가감 하세요.
<보리순 굴 된장국>
보리순을 깨끗이 다듬어 씻어 건집니다.
냄비에 멸치육수를 끓여 맑은 국물을 준비합니다.
굴은 소금물에 씻어 굴에 붙어 있는 껍데기를 떼어내고 두 번 헹구어 놓습니다.
육수에 된장을 풀고 끓이다가 보리순을 넣고 한소끔 끓으면 마지막에 굴을 넣고 다진 마늘 한 숫갈 넣고 한 번 더 끓여 집간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보리순 겉절이>
보리순, 상추, 얼갈이 속잎, 청홍 파프리카채, 쑥갓등 냉장고에 남아 있는 야채들을 손질하여 준비합니다.
양념장은 고춧가루, 멸치액젓, 통깨, 간마늘과 물을 조금 넣고 혼합 합니다.
준비된 야채를 볼에 담고 양념장으로 버무립니다.
기호에 따라 양념장을 새콤달콤하게 하셔도 좋고 단맛을 더 하실 수도 있습니다.

공해가 적은 보리순은 환자나 채식주의자 노인에게 특히 좋고 무기질과 비타민을 다량 함유하고 있으면서 열량이 적어 다이어트 식사에 활용하셔도 좋다고 합니다.
보리순 만으로 생즙을 만들어 드셔도 좋다는군요.
오늘 저녁밥상에 보리순된장국 한 번 올려보시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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