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고추장 담그기

입력 2009-10-09 11:10 수정 2012-07-22 11:18
어제(10월 8일)가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였지요.
한로는 추분과 상강 사이에 있는 절기로 태양이 황경 195도의 위치에 이른 때이고 양력으로는 10월 8일경입니다.
이 시기는 단풍이 물들고 여름새와 겨울새의 교체기에 들며 오곡백과를 수확해야 하는만큼 농촌은 몹시 바빠집니다.
한로는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절기이니 기러기가 모여들고 참새가 줄어들며 조개가 나돌고 노란 국화꽃이 핀다고 옛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늦더위가 아직 남아 있어 낮 기온은 좀 따갑지만 서늘한 바람이 불어 기분좋게 식혀주니 계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仲秋佳節입니다.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들녘엔 수확을 기다리는 벼들이 노랗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고, 줄기에 달린 마지막 빨간고추를 따느라 농촌의 손길은 쉴 틈이 없습니다.
밭이랑엔 김장무우와 배추가 푸르게 생장을 지속하고 있고 봄에 심어놓은 호박넝쿨엔 둥근 호박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네요.

고향고을 무등산 증심사 나들이 길에 들른 부페식 보리밥집엔 무우청과 배추쌈이 멸치젓 쌈장과 함께 준비되어 있데요.
떫은 맛이 남아 있는 진짜배기 도토리묵도 오종종한 토종 산밤도 제가 무척 좋아하는 가을철 먹을거리인데 기특하게도 그것들이 고스란히 마련되어 있어 정말 신이 났지요.
그 맛에 반해 '적고 가볍게 먹고 살겠노라'던 저의 건강수칙은 순간에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老醜를 보이기 싫다시며 마냥 집안에서만 눌러 지내시는 부모님을 어르고 졸라 모처럼만에 나선 걸음이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나들이였습니다.
기력이 쇠잔하신 부모님과 함께 한 길인지라 무등산의 억새밭도 가보지 못했고 산행도 할 수 없었지요.
하지만 웅대한 산세에 비해 완만한 흙산이 대부분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무등의 산자락 끄트머리에 서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가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먹는 일에 전혀 익숙하시지 않은 어머니의 뜻을 좇아 고추장을 담가야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큰일 하기가 수월한 고향집에서 내친김에 고추장을 담갔습니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한테 얻어다 먹는 일이 불가능해진 이유도 있지만 모든 살림을 스스로 익혀야 겠다싶어 제 스스로 모든 먹을거리들을 마련해오고 있습니다.
하다보니 기본 장류는 이제 제가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는 게 자연스런 일이 되어버렸군요.

고추장 담그는 방법은 지역이나 가정마다 각기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고춧가루와 메주가루 그리고 찹쌀이 주재료로 들어가는 것만은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해오던 방식은 찹쌀가루를 엿기름 물에 삭혀 끓여서 식힌 다음 고춧가루와 메주가루 넣고 설탕과 소금으로 단맛과 염도를 맞추던 것이었어요.

한데 이번에는 조금 더 간편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찹쌀을 가루로 만들지 않고 통째로 하루동안 불렸다가 묽게 죽을 쑤어 식히고, 생수에 소금과 황설탕을 넣고 오래도록 끓여 대강의 간을 맞춘 후에 식힙니다.
미지근한 찹쌀죽에 메주가루를 붓고 젓다가 고춧가루 마저 넣고 끓여 식힌 물을 부어가며 재료가 고루 섞이도록 잘 저어줍니다.
마지막으로 간수 빠진 천일염으로 간을 맞추고 물엿으로 단맛도 맞추었는데 아주 성공입니다.
참고로 재료의 분량은 찹쌀 2kg 고춧가루 2.2Kg 물엿2.45Kg 소금 500g  메주가루 2.2Kg 생수4L가 들어갔습니다. 

잘 담가진 고추장은  오래 두어도 부글부글 괴어오르지 않고 고약처럼 끈끈한 점성이 그대로 유지되는데 모양도 맛도 이틀 전에 담근 그대로네요.
주부님들도 이 방법을 이용해보시면 좋을성 싶군요.
사실 고추장 담그는 시기도 통상 늦가을이나 이른 봄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빠른것 같아 괴어오를까봐 내심 염려가 되었거든요.
아마 제가 담근 고추장 가운데  이번 것이 제일 잘 만들어진 고추장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어머니집 텅빈 항아리에  햇고추장 담가 가득 채워드리고 면보자기로 봉해 햇볕에 내놓았더니 어머니께서 오져죽겠다며 좋아하시네요.

가을고추장 맛나게 담가 비빔밥도 초고추장도 회무침이나 볶음요리도 장만하셔서 건강한 밥상 마련하시면  이 가을이 더욱 풍성해지시지 않을까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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