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추억 속의 송이

저의 고향은 남도의 명산 지리산과 청정하천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구례입니다.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누구나 한 번쯤 머물고 싶게 하는 곳이지만, 현대가 태동할 무렵 첨예한 이념분쟁 때문에 희생을 치루어야 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모두 교직에 종사하신 연유로 우리 가족은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와 객지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저는 늘 자자손손 고향에 뿌리 내리고 사는 동무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네들은 항상 부락에서 일어나는 재미진 공동체의 이야기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대소가 누구네 결혼식이 있고, 또 어느날은 조상님의 제사를 모셨다며 넓적한 찰떡과 약과등을 학교로 가져와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맛나게 얻어 먹으면서도 마음 한켠은 항상 외로운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지요.
우리집도 저 아이들 처럼 대소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고향마을에서 세세토록 뿌리내리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말입니다.

한데 재미 있었던 건 아이들은 반대로 저를 부러워하는 눈치들이었습니다.
남의 떡이 커보이더라고 농사를 짓지 않으니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가도 집안일을 거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 좋겠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방학 때가 되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고향에 갈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모님 댁의 낮으막한 단감나무에서 달디 단 단감을 마음대로 따먹을 수도 있었고, 섬진강을 나룻배로 건너야 하는 백운산이 바라다 뵈는 간전면에 큰댁이 있었는데 큰어머님이나 큰댁의 오빠 언니들은 저를 한껏 귀히 대해주셨고 목 말라 하던 농촌체험도 원 없이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을 주말이면 어머니는 고향에 다녀오시면서 송이버섯과 은어 참게를 가득 사오셔서 송이구이와 참게장으로 밥상을 푸짐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빛깔이 하도 맑고 비린내도 없어 민물고기 같지 않은 은어도 미나리가 곁들여진 매운탕으로 변신하여 밥상에 오르곤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채식을 즐겼던 저는 참게장이나 은어요리엔 손이 가지 않았지만 송이버섯 만큼은 아주 맛이 있어서 저녁 늦게 들어오시는 아버지 상에 올릴 송이구이까지 생쥐처럼 살금살금 훔쳐 먹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린 시절  달게 먹었던 아련한 기억이 그리워 가을이 되면 송이 몇 개라도 꼭 구해서 먹어보곤 했는데 근래 들어선 턱 없이 높아진 가격에 놀라 먹어 볼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7.8년 전쯤의 일입니다.
아버지 생신 때 고향에 내려갔더니 오라버니가 송이 한상자를 선물로 사오셨더라고요.
어찌나 고맙고 반가운지 송이를 손질하여 부산나게 양념한 소고기 등심과 함께 팬에 볶아 접시 그득히 담아 양것 먹었지요.
그러고는 바삐 상경하였는데 탈이 단단히 난 겁니다.
무엇 때문에 식중독이 되었을까 원인을 곰곰 생각해 보니 송이상자를 살펴본 기억이 났는데 중국산이었음을 기억해냈어요.
그 때만 해도 중국식재료가 시중에 그닥 많이 유통되지를 않아 특별하게 관리해야 된다는 경각심이 없었거든요.
날이 더운 초가을에 선도를 유지할려니 아마 맹독성 농약이나 보존제로 처리 되어 국내로 반입되었지 싶어요.
그로부터 일주일을 내리 설사를 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난 생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지요.
그  끔찍한 소동을 겪은 이후론 송이를 먹고 싶은 염사가 깡그리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약이더라고 시간이 많이 흐르니 이젠 다시 송이에 대한 건강한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추석 무렵 소나무숲 햇볕이 잘 드는 땅 위에  보물처럼  불쑥 솟아 오른 송이는 활물 기생균이므로 모두가 자연산입니다.
손질한 송이는 참기름 살짝 두르고 팬에 구우면 향이 그대로 살아 있어 가장 자연스런 조리법이지만 전골로도 영양밥으로도 산적으로도 다양하게 요리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으로 많은 양이 수출되는 송이는 종균에 의한 인공재배가 아직 연구 중에 있어 희소성 때문에 값이 센 듯합니다.

다산 선생께서 설파하셨 듯, 일상에서의 근검은 지속적으로 지켜져야 할  덕목인 줄 압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좀 호사스런 이벤트가 결코 사치나 낭비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약간 과한 지출로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력을 되찾게 되신다면 그건 낭비가 아닌 생산적인 투자일 수 있습니다.
보약 잡수신다 셈치고 송이잔치 한 번 벌이시면 그 쫄깃한 맛에 반하고 독특한 향에 취하여 성인병이나 당뇨 혈액순환장애 고혈압 신경계통과 피부미용에도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하니 실보다 득이 더 많지 싶네요.
이번 가을에 송이요리로  새로운 일상의 변곡점도 찾고 기도 한번 살려보시면 어떨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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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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