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메주 쑤는 날


우리네 맛의 기본은  김치와 젓갈 그리고 간장 된장 고추장에서 나옵니다.
옛 말씀에 ‘말 단 집 가지 말고  장 단 집 가라’는 속담이 말 해주듯 장 맛이 좋은 집안의 부엌 살림은 규모가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음식의 맛은 醬類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간장의 맛을 내는 중요한 요소는 콩 물 소금 햇빛 바람입니다.
11월 말에서 12월 중순에 이르는 기간에 알이 잘 여문 우리 콩을 하루 저녁 물에 푹 불렸다 메주를 쑵니다.
콩이 부르르 끓어 오르면 솥 뚜껑을 열고 콩물이 넘지 않도록 불을 줄여 아주 약한 불에 마냥 뜸을 들여 메주 콩의 빛깔이 갈색이 될 때까지 뭉근히 삶습니다.

잘 삶아진 콩을 소쿠리에 건져 물기를 뺀 후, 절구에  찧어 메주 틀에 넣고 메주 모양을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꾸덕꾸덕 말려 짚으로 엮어 매달아 양지 바른 처마나 따뜻한 방에서 서서히 띄웁니다.

이듬 해, 정월 맑은 말날에 소금물을 풀어 가라 앉히고 메주는 깨끗이 씻어 말립니다.
넉넉한 항아리에 불 붙은 솔 가지나 숯 달군 것으로 항아리의 잡균을 없애는 소독을 합니다.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고 메주를 넣고 참 숯과 건고추도 너덧 개 
띄워 간장을 담급니다.

매일 항아리를 열어 햇볕과 바람을 쐬어 간장이 잘 우러나도록 살피기를 90여일, 이 기간이 지나면 간장은 까맣게 우러나고 메주는 흐물흐물 숙성이 됩니다.
그 시기가 대략 5월 말이나 유월 상순의 초여름인데 꽃분홍 빛의 소담스런 모란꽃이 피어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 때 메주를 떠내 소금을 넣고 치대어 항아리에서 다시 숙성시키면 맛 있는 된장이 되고, 까맣게 우러난 장물은 달이거나 햇볕을 계속 보여 숙성시키면 간장이 됩니다.

늦가을 추수를 다 끝내고 김장도 마친 한갓진 어느 초겨울 날, 집에서는 종일토록 메주를 쑤었습니다.
어머니는 커다란 무쇠솥에 장작불을 지펴 놓으시고 메주콩을 삶으셨지요.

메주콩이 익기 시작하면 구수한 콩 삶은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고 잘 삶아진 부드러운 콩이 담긴 놋주발과 찐 고구마를 커다란 함지박에 담아 햇볕 좋은 앞마루로 무우 동치미와 함께 내오셨습니다.
 
동지가 가까워 오는 겨울, 햇볕은 길게 내리 쪼이지만 바람은 콧잔등이 빨개질 정도로 매섭습니다.
대나무 잎이 땅 속에 묻어둔 동치미 항아리 위에서 서걱이고 국물은 살얼음이 얼어 있습니다.
입에 넣으면 흠씬 삶아진 메주콩은 금세 흐믈흐물해져 별로 오물거릴 일도 없이 잘도 넘어갑니다.

지금처럼 땟깔 좋은 밤고구마는 아니지만 겉 껍질의 빛깔이 바알간 물고구마는 수분이 많고 당도도 아주 높습니다.
입을 대고 주욱 빨면, 그 부드럽고 달콤한 고구마의 속살이 입안 가득해지는데 어찌 그리도 기분이 좋아지던지요.
어릴 적 메주 쑤는 날 먹었던 찐 물 고구마의 맛,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구운 고구마의 맛은 또 어떻고요.
군불 지피시는 어머니가 전해 주시는 옛 이야기(어머니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 지내셨던 행복했던 추억담)를 들으며 저희 두 모녀는 부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도란도란 얘기 꽃을  피웁니다.
그러고 있노라면 잿불 속에 파묻어 두었던 고구마는 어느 새 아주 먹기 좋게 익어 있었지요.

어머니는 길죽하게 생긴 겉이 거뭇거뭇하고 주글주글해진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노오랗게  속 살이 드러난 군고구마를 호호 불어 뜨거운 김을 식히신 후, 제 손에 쥐어 주시는 거였어요.
극락(極樂)!
지극한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
절더러 누가 극락이 뭐냐고 묻거든, 바로 그런 거라고 얘기할 것  같군요.

요즈음 한창 맛이 좋은 시래기 된장국 만들어 보겠습니다.

시래기 된장국

재료-삶은 시래기 2컵, 된장 2큰술, 청양 고추 4개, 다시 멸치 1컵, 다진 마늘 1작은 술, 고춧가루 1작은 술, 물 7컵

만드는 법

커다란 냄비에 물과 다시 멸치를 넣고 푹 끓인 후 멸치 건더기는 건져 냅니다.
시래기를 알맞은 크기로 썹니다.
시래기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조물조물 무칩니다.
멸치 육수에 간이 밴 시래기를 넣고 끓이다 마늘과 청양  고추를 잘게 썰어 넣고 다시 한번 끓이면 완성입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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