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래적으로 저는, 자연 그대로의 모든 대상들을 아끼고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려고 합니다.
하기에 , 자연주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선구자적인 도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가슴이 뜁니다.

아직은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 있어 귀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그 쪽으로 기운 때문입니다.
제가 바라는 삶으로 가기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 현재 귀농하여 살고 계시는 분들의 현장을 탐방해 보려고 합니다.
그 기획의 첫 번째 주인공이 행복숲 지기 김용규 님입니다.

제가 찾은 곳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의 산 중턱에 자리한 행복숲 지기의 베이스 캠프인 백오산방입니다.
두해 전 여름 , 숲 지기 님이 이곳에 터를 잡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방문한 적이 있고,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에 다시 찾았습니다.
숲 지기 님이 최근 황토집을 지어 준공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지 한참을 꼼지락거린 연후에야 저는 발걸음을 뗐습니다.

산방에 들어서자마자 드넓은 들판의 全景이 한 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전망의 거실이 저를 단숨에 매료시켜버립니다.

長城一面 溶溶水(긴 성벽 한 켠에는 넘실대는 강물이요)
大野東頭 點點山(넓은 벌판 동쪽에는  점점이 산이로세) 
                          金黃元(1045-1117)-고려 시대의 문신

무당벌레들이 창문 여기저기에 기어다니고 밤이면 노루들의 울음소리가 산을 울린다는 동화같은 황토집이 바로 백오산방입니다.
산 속에 널려 있는 고사목을 주워다 장작으로 땔감을 마련하여 군불을 지피면, 구들장이 깔린 온돌은 24 시간 온기가 유지될 만큼 보온성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구들장이란 말은, 사전에서나 존재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백오산방에서 그 실체를 보았습니다.

행복숲 지기 김용규 님은, 지금 숲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 '숲에서 길을 묻다'란 주제로 강의 하는 일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을 숲의 식생을 살피고, 첫 책 출간을 위한 집필에 하루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숲이 부르는 소리에 덜미를 잡혀 그는 그만 다니던 직장도 집도 서울도 버려버린 사람입니다.
그가 직접 밝힌 자신의 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학원까지 행정학을 통해 조직과 정책을 공부한 뒤 기업 몇 곳을 거쳐 일했고 작은 벤처기업의 대표직을 마지막으로 마흔에 기업을 떠났다.
조직을 떠나기 전 몇 해 동안 스스로 자신의 삶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고 , 돈벌이의 욕망에 치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답을 얻었다.
그때부터 대안을 모색하고 새로운 삶을 도모하며 준비하는 데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늘 설레게 해온 숲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겠다고 결심, 안거할 숲을 찾아 1년여 동안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헤매 다녔다.
마침내 충북 괴산에 조그마한 산 하나를 마련하고 숲으로 들어가 자연과 교감하며 행복숲 공동체의 대표이자 숲 생태 안내자로써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텃밭을 가꾸고, 숲을 관찰하고, 글을 쓰며 나무를 심는 농부의 삶이 나의 일상이다.
숲연구소의 숲 생태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역량개발연구소가 개최하는 자기계발 워크숍인 ‘씨앗에서 숲으로’와 ‘기업 창조성 개발 프로그램’의 자기계발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자연생태포럼을 조직하여 숲과 자연생태가 전하는 메시지를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그가 틈틈이 하고 있는 또 다른 일은, 백오산방과 근거리에서 귀농학교를 운영하시는 長兄과 함께 하는 천연 염색 작업입니다.
쪽에서는 푸른 하늘의 빛깔을 얻고, 오리 나무 삶은 물과 산화철 액을 합성하면 은은한 구름 색이 나오고, 선인장의 꽃에 있는 벌레집을 말려서 염료로 쓰면 고혹적인 와인 색깔이 나온다 합니다.

제가 방문한 날의 아이템은 실크 원단의 머플러 염색이었습니다.
오리 나무 줄기를 삶은 물에 녹물(산화철)을 섞어 무색의 실크 머플러를 담그니 빛깔은 금세 잿빛으로 변합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좀 불어야 염색한 천을 건조시키기가 좋은데, 제가 방문한 날이  바로 그런 날이어서 색이 곱게 나왔다 합니다.
햇볕이 강하면 공들여서 해놓은 염색이 퇴색해버린다고 하네요.

서울에서 행복숲 까지가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라서 도착 하자마자 금세 시장기가 돕니다.
저는 내심 내왕이 쉽지 않은 산중이라  컵 라면이나 찐 고구마 정도로 점심을 때울 수만 있어도 고마우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한데 밥상에 오른 음식들은 보약이 따로 없다 싶게 진기한 것들이었습니다.
강화 순무 김치, 알 청국장 찌개, 굴비 구이, 배추 김치, 김, 대하 찜, 깻잎 장아찌, 풋고추...
정말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입니다.
이 오지에 항시 이처럼 밥상이 화려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가던 날이 장날이더라고 제가 먹을 복이 아주 많았던 것입니다.
그 음식들은 며칠 전, 동호회의 지인들이 방문하면서 준비해 오신 거라고 합니다.
몹시 시장하던 터라 저는 그 귀한 음식을 염치 불구하고 잘도 먹었습니다.

후식으로 주신 형님이 직접 재배하셨다는 유기농 사과의 맛은 더욱 환상이었습니다.
태생이 시골뜨기인 저는, 몸에 이로운 음식과 몸에 해가 되는  음식을 식별하는 능력이 수준급입니다.
식품 첨가물이나 화학 조미료의 유무를 혀끝으로 알아 내는 감각도 아주 잘 발달되어 있고요.
그 사과는, 제가 이제것 먹어 본 것 중에서 가장 신선하고 향긋한 맛이었습니다.
청정한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좋은 음식이 나의 입에 들어 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공덕과 수고를 거쳤을까?
이런 근원적인 데에 까지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하다 보면, 나는 과연 이 음식을 먹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자문해 보게 되고, 무위도식하고 있다 여겨지면, 사람 구실 제대로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자성과 다짐의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산 마을의 겨울은 낮이 짧아 금세 태양이 서쪽으로 기웁니다.
50억 지구촌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는  이때, 그는 어쩌면 이 거대한 시류를 거슬러 올라가려고 작정이나 한 듯, 느리고 고독한  삶의 방도일 수밖에 없는 숲 지기를 선택 했습니다.

남 다른 결단으로 제 2의 삶을 시작하신 백오 님의 꿈이, 세상 속에 튼튼하게 뿌리 내려서  아름다운 결실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지금  서울에 남아 묵묵히 내핍하며 그를 지지하고 있는 가족들도 두루 평안하시길 기원하면서, 땅거미 지는 산길을 저는 내려왔습니다.

*백오(白烏)는 행복숲 지기 김용규 님의 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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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는 성파 김주한 님이 찍으신 작품입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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