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의 초상 2, 남자주부 `상범`

입력 2002-01-17 07:49 수정 2002-01-17 07:49
// `남자 주부`는 정말 안되는 걸까요? 남자가 주부 노릇을 하는 건 아무래도 `얼굴 많이 팔리는` 일인가요? 분명히 집에 있으면서도 전화를 못받을 만큼 남자가 낮동안 집안에 머무는 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서울 서초구 서초동 00번지 CEO`라는 명함을 내미는 건 우리 사회에선 터무니없는, 정신 나간 짓일까요?




KBS 1TV의 일일극 `사랑은 이런거야`는 바로 이런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9시 뉴스 전에 방송되는 이 드라마는 다양한 남녀상을 보여주지요. 아들만 셋 둔 집과 딸 하나만 애지중지 키운 집, 남편과 헤어져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두 딸을 키우는 집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을 통해 `미혼모` `이혼가정의 자녀결혼` `이복 자매의 갈등` 그리고 `남자주부의 가능성` 등 한번쯤 짚어봐야 할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를 제기합니다.




//드라마의 주요 배경만 세 가정이나 되는 만큼 상당히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합니다. 미국유학중 미혼모가 돼 돌아온 딸, 딸의 이런 정황을 남편에게 감추려 숨도 제대로 못쉬다가 결국 들통나자 딸의 장래를 생각해 외손주를 자식으로 입양시키자는 엄마, 딸의 의견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자기 주장을 내세우면서도 그걸 사랑이라고 믿는 아버지(이상 김자옥네 집)가 있습니다.




또 경제권을 틀어쥔 채 반찬값까지 계산해주는 남편, 콩나물값까지 받아쓰면서도 남편 말이라면 꼼짝 못하고 한달 용돈 8만원을 받게 됐다고 뛸 듯이 기뻐하는 부인, 좋아하던 여자가 미혼모임을 알고 방황하는 둘째아들, 애인 말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막내아들, 실직한 뒤 직장 다니는 아내 대신 주부 노릇을 맡아 하는 큰아들(이상 윤여정네 집)이 나옵니다.




잘사는 이복언니와 헤어진 남편에 대해 원망스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홀엄마도 나옵니다. 아무튼 나이든 남자는 권위주의적이고, 나이든 여자는 그런 남편에게 꼼짝도 못하고, 아들세대는 거꾸로 여자에게 상당부분 휘둘리는, 있을 법 하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일들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제 눈길을 끄는 건 아들만 셋 있는 집의 장남(상범)이 주부를 자처하는 겁니다. 출판사에 다니던 아들은 구조조정 대상이 된 부하직원 대신 사표를 쓰곤 일자리를 알아보지만 실은 요리등 집안일에 관심이 훨씬 많습니다. 직장에 나가는 아내 대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에서 식구들의 아침식사를 대신 장만하기도 하고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상을 차리기도 하지요.




아버지가 애써 주선한 직장에도 안나가고 요리학원에 다니는가 하면 최근엔 아예 부엌에서 각종 음식을 만들어 아내와 집안식구들을 먹이지요. 우렁각시가 아니라 우렁신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스스로 "손이 빠르다" "내손만 가면 뭐든지 풍성해진다"고도 말하지요.




못마땅해 하던 어머니까지 아들의 음식솜씨를 인정, 집안일을 싫어하는 며느리에게


"어쩜 니네들은 그렇게 반대니? 신랑은 온갖 걸 만들어 먹이고 싶어하는데 너는 만들어 놓은 것 차려먹기도 귀찮아 하니. 그렇게 거꾸로 만난 것도 잘된 일인지 모르겠다만"


이라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물론 요리를 더 배워 음식점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합니다. 마루에서 걸레질을 하는 아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기도 하지요.




//TV드라마에 남자 직업으로 요리사 미용사 등이 공공연하게 등장한 건 IMF사태 이후입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난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이른바 기존의 남자 직업군 바깥으로 눈을 돌리게 된 까닭인 듯합니다. 가장 흔히 대두되는 건 요리사지요.




`맛있는 청혼`에선 탤런트 박근형과 정준이 중국요리사로 나오고, `온달왕자들`에서도 셋째아들이 요리사로 분했습니다.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된 SBS드라마 `피아노`의 주인공 억관(조재현)은 조폭이다가 갱생, 앞치마를 두르고 빵을 만듭니다. 뿐인가요, 언젠가 방송된 `루키`에선 무역상사를 때려치우고 미용사를 택하는 남자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남자주부가 처음 등장한 건 MBC드라마 `아줌마`였지요. 애인인 여자교수(심혜진)가 임신하자 자신이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겠다며 구혼하는 남자(송승환)가 탄생됐습니다. 실제 세상은 남편의 육아휴직을 인정하고 이를 활용하는 남성들도 나올 만큼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휴렛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의 남편을 비롯, 유명 여성CEO의 남편들이 주부를 자처하며 아내를 외조하고 있구요. 굳이 미국의 예를 들 것도 없이 국내에서도 남녀의 역할 경계가 무너지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남자는 무조건 돈을 벌고 살림은 여자가 한다는 틀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 하는 게 현실입니다. 바깥놀이가 더 좋은 여자가 있는가 하면 소꿉놀이를 더 즐기는 남자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취향도 다른데 여자 일 남자 일을 가릴 때는 지난 것 아닐까요.하리수의 등장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말입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박노자씨는 최근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노르웨이 대학교수로 가서 느낀 점중 한가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입사 때 여성이나 장애인이 남성보다 더 유리한 나라에 살면서 여성들이 손님의 냉면이나 잘라주는 음식점 아줌마 정도의 역할밖에 맡지 못하는 고국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기가 가슴아프다"고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택해야 하는 때입니다. 평생직장은 없어도 평생직업은 있으니까요. 요즘엔 사내 커플중 남자가 그만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남자의 노동유연성이 높아서이기도 하지만 직장에서 은근히 여자쪽의 능력을 높이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허물지 못하면 궁극적으로 힘든 건 여자보다 남자일 것이라고 말한다면 또 "무슨 억지 소리?"라고 하실른지요?? 그러나 그같은 성역할에 대한 편견때문에 집에 있으면서도 전화도 못받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의 눈을 피해 산에 오르는 현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른지요.




많은 가정에서 남편이 집에 있는 걸 달가와 하지 않는 건 돈문제도 있지만 "있어봤자 도움은 안되고 걸거치기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살림은 여자나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남녀 모두 괜한 굴레에서 조금은 자유로와질 수 있을 듯합니다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칼럼니스트와 함께`에 의견을 올려주십시오!!!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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