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쌀 삶는 게 우리네 어머니들의 일상이던 시절의 열무김치 이야기다.

지금은 목화를 재배하는 곳이 많지 않다.
우리 자랄 적만 해도 목화를 재배하는 농가가 아주 많았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무명 베를 짜는 모습은 시골에서 흔히 보던 일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방적과 방직기술이 발달하고 다량의 원단과 면사들이 수입되면서부터 베 짜던 여인네들의 일손은 한결 가벼워졌다.
 
목화꽃은 처음 필 때는 연노랑이었다가 그 다음 날엔 자주빛으로 색이 변한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엔 흰색으로 변한다.

영화<바람과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로 분한 비비안 리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타라 농장에 돌아와 목화를 가득 심던 장면이 떠오른다.
<톰아저씨의 오두막 집>의 노예 톰과 에바 소녀와의 아름다운 우정과 약자의 슬픈 운명에 가슴을 죄며 읽었던 어린날의 기억도 목화밭과 함께 오버랩 된다.

목화꽃이 지고 나면 꽃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솜이 되기 전의 작은 열매(다래)를 따 먹으면 달짝지근한 맛이 난다.
그 목화밭의 고랑 사이에 열무를 심었는데 시골에서는 이걸(미영밭 무시) 뽑아다가 물김치를 담가 먹었다.

열무만 심은 밭에서 수확한 것은 억세고(일조량이 너무 많아)  기생충 알의 감염에 대한 불안( 당시엔 인분이 밭작물의 거름으로 이용되었다)이 상존한데 비해, 별 거름 없이도 잘 자라는 목화밭 열무는 부드럽고 깨끗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목화밭 외에 콩밭이나 수수밭 고랑에도 열무 씨를 뿌려 두었다가 자라면 김치거리로 이용했는데 이들 작물 모두 척박한 토질에서도 생육이 잘 되는 것들이어서 가외의 거름(인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목화밭이나 콩밭의 열무는 밭에서 김을 매던 여인네들이 바로 뜯어서 새참으로 쌈을 싸먹기도(씻지 않고) 할 정도로 청정한 김치거리였다.
열무는 천일염(간수를 뺀 굵은 소금)으로 간하여 놓고 보리쌀 삶은 물을 넉넉히 받아 식혀 놓는다.
마늘 생강과 보리밥을 넣고 돌확에서 먼저 갈은 후, 반쯤 익은 황토색의 풋고추를 통째로 넣고 자근자근 알맹이를 으깬다.
간해 놓은 열무를 건져 갈은 풋고추 양념에 치댄 후 항아리 바닥에 먼저 담고, 식혀 놓은 보리쌀 물(소금 간하여)을 부어 하루 정도 익힌 다음 상에 낸다.

풋고추의 알싸한 맛이 열무와 어우러져 붉은 고추로 담근 것보다 풍미가 더하고, 보리쌀 삶은 물은 아주 매끄럽고 고소하여 찹쌀이나 밀가루 풀물로 담근 것 보다 식감도 좋고 영양가도 높다. 
새금새금 숙성된 열무 물김치는 더운 여름 국을 끓이지 않고도 국물로 대용할 수 있어 노인을 모시는 가정에 요긴한 기본 찬이다.

일산 열무를 자르지 않고 통째로 다듬고 씻어 간수를 뺀 천일염에 간해 놓는다.
보리쌀을 씻어 한시간 가량 불려 두었다가 물을 넉넉히 붓고 삶는다.
보리쌀이 끓기 시작하면 넘치지 않게 뚜껑을 열고 불을 약하게 줄인다.
보리쌀 삶은 물이  말간 젖빛이 되고 농도도 모유 만큼 되면 다시 한번 불을 세게하여 끓여 낸 후 보리쌀은 건져내고 보리쌀 삶은 물은 식힌다.
마늘 생강과 삶은 보리쌀, 절반 익은 주황색의 풋고추 대여섯 개(청양)와 양파 반 개 새우젓 2숫갈을 넣고 믹서에 간다.
식혀 놓은 보리쌀 물에 약간 간간하다 싶게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익으면 간이 약해지므로)
준비해놓은 재료에 보리쌀 삶은 물을 붓고 쪽파와 양파 반개 풋고추(청양)를 어슷어슷 썰어 띄우고 대추도 몇 개 넣은 후 하루밤을 재워 냉장했다 꺼내 먹는다.

열무물김치를 넉넉히 준비해놓으면 다른 요리에 두루 이용할 수 있다.
자잘하게 썰어서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르고 비빔밥을 만들어도 좋고, 냉면이나 국수를 말아먹어도 좋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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