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그늘에서 맛본 행복

입력 2008-07-23 08:34 수정 2011-02-28 13:53




감나무 그늘에서  맛 본 행복

요 근래는 영농기술과 저장법의 발달로 사시사철 포기배추가 출하된다.
포기배추는 늦가을에 수확된 게 육질이 가장 단단하고 맛도 좋다. 가능하면 가을 배추로 일년 분의 김장을 해서 저장해 두고 먹는 것이 규모 있는 살림이다. 여름에 꺼내 먹는 묵은지는 얼마나 깊고 감칠맛이 나는가.
찌개를 끓여도 찜을 해도 묵은 김치로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입맛은 간사한 것이라서 제아무리 묵은 게 깊은 맛을 지녔을지라도 제철의 햇김치가  생각나는 건 인지상정.
한 여름에 담가먹는 김치는 포기배추 보다 얼갈이나 열무로 담그는 풋김치가 제격이다. 유년에 맛 본 배추 얼갈이 김치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담그는 법을 정리해 보았다. 서울식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을 즐기시는 분들은 별로일지 모르겠다.

키가 좀 크고 약간의 속도 들어 있는 경종 배추를 씻어 약하게 소금 간을 한 후, 서너 시간이 지나면 바구니에 건져 물기를 빼놓는다. 마른 고추를 가위로 잘라 고추 씨를 대강 발라 낸다. 돌확에 손질해 놓은 고추와 마늘과 생강, 찬밥 한 덩이에 발갛게 곰삭은 추자도 생멸치젓을 두어 국자 넣고 절구대로 좌우를 돌려가며 간다. 밥알이 안 보이고 고추의 입자가 곱게 갈리면 건져 놓은 얼갈이배추에 부추와 쪽파를 얼기설기 잘라 넣고 양념에 잘 버무린 후 거피한 통깨를 뿌리면 완성이다.

오목한 보시기에 담긴 김치가 이웃 몇 집에 돌려지고 오지 항아리에 찬으로 할 김치를 담아 놓으면, 어머니는 우리들을 모두 부르신다. 이 때부터 생김치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다. 찬밥 한 통을 어머니 손으로 꼭꼭 쥐어서 둥글둥글한 주먹밥을 만드시고 돌확에 남겨 놓은 풋김치에는 참기름과 통깨가 듬뿍 뿌려진다.
어머니는 언제 마련해놓으셨는지 잽싸게 돼지 편육을 뜨뜻하게 뎁혀 접시 그득하게 내 오신다. 수저 젓가락도 필요 없다. 각기 주먹밥 한 덩이를 손에 들고 돌확 가에 빙 둘러서면 그게 바로 밥상이다.

김치가 매우니 쓰린 속을 달래줘야 한다며 김치 한 가닥에 돼지 고기 한 점을 얹어 싸먹으라고 하신다. 그득하던 주먹밥은 금세 동이 나고 김치도 편육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온데간데없다.

생멸치젓과  돌확에 갈은 고추양념으로 담근 전라도식 얼갈이김치!
김치 달랑 하나 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경상도(진주 )가 고향이신 어머니도 음식 만큼은 전라도라며 남도음식에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신다.

배는 부르고 매운 것을 많이 먹었으니 혀가 알알하고 물은 한없이 쓰인다.
매운 입을 호호 불며  감나무 그늘 아래 놓여 있는 평상에 누우면, 
'맴맴맴맴....' 매미 소리는 귓전을 때리고, 하늘엔 잠자리 떼로 가득하다.
어머니는 햇보리를 볶아 만든 미숫가루를 커다란 양푼에 한가득 타서 내오신다. 구수하고 시원한 미숫가루 한 컵을 입가심으로 마시면, 세상은 파라다이스!. 눈물나게 맵고 '악'소리 나게  맛난 그  김치맛을 어이 잊을손가.

물고추 갈아주는 재래 시장에서 김치 양념을 갈아 왔다.
생멸치젓 양을  줄이고  액젓과 새우젓과 양파를 추가한 양념에 찹쌀 죽을 넣고 버무렸다. 너무 맵거나 짠 것은 건강에 금물, 매운 맛도 조절하고 염도도 최대한 줄였다. 돼지 편육 대신 요즘 많이 나는 감자를 쪄서 점심으로 차려보았다.

감자는 알칼리성 식품이라서 몸에도 이롭고 김치의 매운 맛도 중화시켜주니 간단한 점심으로 손색이 없고 가벼운 나들이 도시락으로도 좋겠다.
우유를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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