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건봉사 패사에 핀 개망초- 사진 오순옥 님

연일 오른 수은주가 내려갈 줄 모르니 난감합니다.
개망초가 메밀 꽃이나 되는 양 온 들판에  피어 하얗게 나부끼는 이맘 
때쯤이면, 어김 없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습니다.

아마 농경문화 세대 분들은 아실 거예요.
50년대 후반의 이야기이지요.

여름 점심의 풍속입니다.
물자가 귀한 시절, 먹을거리라고 예외 일순 없었지요.
영농 기술도 전근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던 터라 쌀이 귀할 밖에요.
벼 수확은 아직 멀었고, 거년 가을에 생산한 쌀은 동이 날려고 하고...
초여름에 수확한 보리는 그득해 그나마 다행이지요.
뜨거운 햇덩이가 석양으로 넘어갈 쯤이면, 어머니들은 보리쌀을 한 됫박 씩 뒤주에서 퍼내 돌확(돌로 된 절구통)에 넣고 박박 갈으십니다.
까끄러운 보리쌀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셨죠.
그 보리쌀을 무쇠 솥에 붓고 불을 지펴 한참을 고웁니다.
보리쌀이 넘어오르면(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한 후 한동안 뜸을 들이지요. 
물컹하게 퍼진 보리 삶은 것을 손잡이가 달린 대바구니에 퍼서 물기가 빠지게 한 후, 바람이 잘 통하는 부엌 앞 처마 밑에 매달아 놓습니다.

끼니가 되면 삶아 놓은 보리쌀을 무쇠 솥에 깔고 한 쪽에 약간의  씻은 쌀을 얹은 후 밥을 지으십니다.
밥을 푸실 때 어머니들은 섞여져버린 보리밥 속에서도 귀신같이 쌀 알을 추려내 아버지의 진지 그릇에 담습니다.
나머지는 오빠나 남동생의 순으로 밥을 차리시지요.
맨 마지막 남은 꽁보리밥은 가려 낼 것이 없는 평등입니다.
당연히 어머니나 우리네  딸들의 몫이지요.
성 차별은 밥에서부터 시작되었나 봅니다.


아침에 해놓은 보리밥은 밥바구니에 또 매달립니다.
점심 때가 되면 그 바구니를 꺼내려 밥사발에 담지요.
반찬은 신 열무 김치나 노각 냉국, 멸치 무침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앞 마당의 텃밭에서 금방 따온 풋고추와 잘 익은 노오란 된장이 밥상에 올려집니다.

식은 보리밥을 시원한 뽐뿌(펌프)물에 말아 한 술 뜬 뒤, 풋고추를 생된장에 찍어 먹는데 그 맛이 꿀맛입니다.
반찬 투정같은 거 '잊어줘'였지요.
내 밥그릇엔 왜 쌀 알이 없냐고 항의도 하지 않았습니다.
턱 없는 아버지의 전횡을 무던히 참고 살아 내시는 어머니가 어린 마음에도 한 없이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그 눈물겨운  밥은 조건 없이 맛 있고 배부르고  감사했습니다.

그 맛을 차마 잊을 수 없어 지금 서울에서 재연해 보려니 어림 반푼어치도 없네요.
대접 가에 찬 이슬이 서리는 진짜 암반수도 없고, 작지만 탱탱한 토종 풋고추도 없는 데다, 커다란 장독에서 금방 퍼온 샛노란 된장과 냉장고에서 꺼낸 얼치기 된장과는 게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꽁보리 밥과 생된장과 텃밭의 풋고추가 오늘, 몹시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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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지는 풍경 이미지는,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죽마고우 오순옥 님의 작품입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함께 합니다.

다산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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