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가을에 띄우는 사랑시

심란하고 서글픈 계절입니다. 도대체 종교란 무엇이고 민족이란 또 무엇인지요. 신념이 만들어내는 증오의 가공할 위력을 막을 방도는 어디에 있을른지요. 인간이란 존재가 본시 이리도 악한가, 파괴욕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인가, 성선설은 애초에 잘못된 건가…..

안타깝고 어지러운 온갖 생각을 달래 보고자 사랑시 3편을 골라 봤습니다.

독일의 비평가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가 가능한가`라고 물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수많은 시집을 뒤져 세 편의 시를 찾는 동안,

이 가을 자꾸 초라해지는 저 자신으로 인한 쓸쓸함과 미움으로 가득찬 듯한 세상에 살아있는 자로서의 슬픔을 잠시 잊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이런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편의 시는

황동규시인의 과,

프랑스 시인 엘뤼아르의 ,

미당 서정주선생의 입니다.

사랑시라는 테두리로 묶었습니다만 느낌은 상당히 다릅니다. 사랑을 시작한 이의 황홀함과 사랑을 잃을까봐 두렵고 미칠 듯한 심정, 소박한 질투의 감정이 각기 개성있는 시어 속에 잘 담겨 있습니다. 3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슴에 와 닿을 지는 전적으로 읽는 이의 몫입니다.

***황동규시인의 은 8편으로 돼 있는 `소곡`시리즈의 하나입니다. 황시인은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씨의 아들이지요. 서울대 영문과 교수구요. 지프차를 타고 여행하기를 즐기는(즐기던 ?), 제 기억으론 상당히 쌀쌀맞은 사람입니다. 물론 가까운 사람에겐 그렇지 않겠지요, 아마…..

`소곡` 연작은 1961년에 나온 시집 `어떤 개인 날`에 실린 것입니다. 젊은날의 시인 만큼 후기작과는 다르게 서정적인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영화 `편지`에서 박신양이 읽는 `즐거운 편지`도 이 시집에 실렸던 것이지요.

바위 위에 하나의 금이 기어가다 기어가다 서듯 그렇게 서 있는 것같았습니다.

하나의 불길 속에.

조용함이었습니다. 타는 불 너무 환해 귀 속과 귀 밖이 구별 안되는.

그러나 귀 열고 기다리는. 뜰에 선 나뭇가지의 잎 하나하나가

귀처럼 뾰족 섰다가 재로 사그라지는 외로움…

당신 모습이 처음으로 내 마음 속에 자위 떴을 때>>

***엘뤼아르(1894-1952)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시인입니다.

은 민음사의 `세계시인선` 여섯 번째 권인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 실려 있습니다. 제목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뜻이 선명하게 전달됩니다.

숲속에 태양은 잠들고

살아있는 하늘은 사라지고

어느 곳에나 어둠이 내린다.

새들은 헐벗은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움직임이 없는

외길 뿐인데

그곳에 비인간적인 어둠의 밤

종말의 밤이

밤의 종말을 향하여 오리니

아랫마을 포도밭에도

땅 위에도 추위는 가혹해지며

불면도 없고

낮에 대한 회상도 없는 밤에

불길한 경이의 사건이

모든 것에, 모든 사람들에게

한겹도 두겹도 아닌 죽음을 베푼다.

밤의 종말을 향하여

왜냐하면 어떤 희망도 허락되지 않기에.

왜냐하면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절절하긴 하지만 다소 무겁지요.

미당 서정주선생의 는 어렸을 적 누구나 한두번쯤은 느꼈음직한, 살아가는 동안 수시로 크고 작은 일에 느끼는 `질투`라는 감정을 시인 특유의 말하는 듯한 어투로 소박하지만 실감나게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우울하기만 한 이 가을, 까마득하게 잊혀진, 어린 시절(혹 젊은시절) 첫사랑을 떠올리며 문득 미소지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소학교 3학년에서 제일 힘이 장산데,

뾰족구두 신은 일본 여선생님이

소풍 가서 발병이 나 못걷게 됐을 땐

그네를 등에 업고 으스대고 걸었지.

내 나이는 이때에 만으로 열한 살

복도꽁이 부럽고 질투가 나서

눈창이 뜨끈뜨끈 닳고 있었지.

내가 고 여선생을 업었으면 졸텐데

힘이 아직 모자라서, 질투가 생겨나서…>>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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