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대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1세기 첫대회이자 아시아에선 처음 열리는 `2002 월드컵 대회`는 내년 5월 31일 개막돼 6월 30일까지 한달동안 한국과 일본의 20개(각 10개) 경기장에서 펼쳐집니다. `새 천년, 새 만남, 새 출발`을 내걸고 32개국 대표팀이 `컵`을 놓고 결전을 벌이게 되지요.




월드컵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은 실로 엄청납니다. 1998년 프랑스에서 열렸던 월드컵대회의 시청자는 총 3백70억명, 결승전 시청자는 17억명이었지요. 내년 대회의 TV시청 예상인구는 6백억명이라고 합니다. 21세기 첫 대회인데다 두 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리라 예측하는 것이지요.




우리 축구대표팀은 과연 어디까지 진출할 수 있을까요? 바라기는 온 세계인이 지켜보는 결승전 마당에 태극기가 휘날렸으면 싶지만, 글쎄요.... 모르는 일이겠지요??




어쨌거나 내년 이맘 때쯤이면 화질 좋은 디지털TV 판매량이 `확` 늘어나지 않을까요. 초저녁 술집은 텅텅 비고 주말 야외나들이 길목도 한산해질지 모르겠습니다.




월드컵 얘기를 꺼낸 건 98년 프랑스대회 결승전(프랑스가 브라질을 3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소재로 한 영화를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컵`이라는 작품이지요. 티벳의 진짜 사원에서 진짜 승려인 키엔츠 노부가 감독하고 진짜 스님들이 배우로 출연한 독특한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문명과 동떨어진 히말라야 산자락의 조용한 사원에서 축구, 그것도 월드컵대회에 푹 빠진 동자승 하나가 결승전을 보기 위해 동료(?)들을 어르고 노스님을 졸라 TV를 빌려다 본다는 내용이지요.




막이 오르면 새벽 풍경소리와 함께 불탑 사이를 오가는 스님들의 소리없이 분주한 모습이 나옵니다.경전 읊는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향을 피우고, 마당을 쓸고, 물 길고... 잠시 후 카메라는 승복을 입은채 마당 한쪽에서 찌그러진 코카콜라 캔을 차는 수도승들을 비춥니다.


우유팩은 없었는지..... 아마 코카콜라가 서양문명을 상징하는데 더 유효했겠지요.




영화는 또 엄숙하게만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사원 안에서 이뤄지는 `현실`을 가감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지요. 의식 중에 쪽지를 돌리는가 하면, 꾸벅꾸벅 졸고.... 우리네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교실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14살짜리 수도승 오기엔은 자기처럼 머리를 빡빡 민 호나우도에게 반해 정신없습니다.




월드컵대회 중계를 보기 위해 밤마다 몰래 사원을 빠져나가 TV가 있는 동네로 내려가던 오기엔과 동료들은 마침내 주지스님께 들키고..... 일행은 어떻게든 결승전은 사원 안에서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주지스님은 이들의 소망을 노스님께 전합니다.




노스님은 그까짓 `컵`이 뭔데 그걸 차지하려고 두 나라가 싸운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번을 놓치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조르는 동자승들의 간절한 요청에 결국 허락합니다.




문제는 돈! TV를 빌려오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수도승들이 돈이 있을리 만무하지요. 오기엔과 그 일당(?)은 푼돈을 모으고, 모자란 돈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까지 하지만 영 액수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결국 오기엔은 후배(?)가 절에 오기전 부모님께 받은 회중시계를 빌립니다. 꼭 되찾아주겠다는 약속 아래 가져다 잡히곤 TV를 대여해옵니다.




마침내 사원 한쪽에 TV가 설치되고 지지직 거리던 낡은 TV는 프랑스와 브라질의 결승전 경기를 보여주지요. 그러나 막상 경기에 몰두해야 할 오기엔은 중간에 자리를 뜹니다. 회중시계를 되찾는데 필요한 돈을 구하기 위해서지요. 혼자 자기 숙소에 돌아가 잡히거나 팔만한 물건이 없는지 찾느라 구석구석을 뒤집니다.




영화엔 화끈한 폭력도, 섹스도, 톰 크루즈나 샤론 스톤같은 배우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수영장과 골프연습장이 딸린 거대저택도, 눈이 번쩍 뜨이는 놀라운 컴퓨터시스템도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산속까지 불어닥친 월드컵 열풍을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세대간의 화해와 소통, 어쩔수 없이 밀려드는 문명의 물결, 전통과 외래문화의 마찰, 사람살이의 도리와 지혜, 현실을 받아들이는 법 등을 조용한 목소리로 유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거지요.




노스님은 월드컵에 미쳐 규율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어린 수도승들을 정말이지 이해할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의 문을 엽니다. 진정한 가르침을 전하자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지요.




누가 뭐라든 저는, 이런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요란한 스케일 없고 그래서 다소 심심하긴 해도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보고 막이 내린 뒤 옷깃을 여미게 되는 영화 말입니다.




흥행이 문제라구요. 글쎄요. 극장에선 몰라도 비디오로는 꽤 재미를 본 걸로 압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왜 불행해 하느냐?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불행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편하게 걷기 위해 땅을 가죽으로 덮을까? 발을 가죽으로 쌀까?"




저는 노스님의 이런 설법도 인상적이었지만,


마냥 철없고 엉터리같고 말썽꾸러기같던 오기엔이 `회중시계를 되찾아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훨씬 더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나라건 기업이건 개인이건 `안한다, 아니다`라고 강조할수록 `아, 곧 하겠군, 그렇겠군!` 하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살기 때문일까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근로자의 날까지 들어있는 5월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의 입장에 한번쯤 서보고, 일단 하기로 한 약속이면 불리하다 싶어도 지키고자 노력하거나 최소한 지키지 못하는 이유라도 설명하면 세상 살기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부모 자식, 부부, 스승과 제자, 노사 모두 상대에게 달라지라고 요구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게 순서라고 생각됩니다만........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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