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신데렐라& 온달, 그리고 팥쥐 부장?

TV는 동시대 사회상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속엔 특정한 곳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과 움직임이 있지요. 옳으냐 그르냐, 바람직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떠나서 그때그때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어떤 식으로든 전달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사투리가 경상도 사투리에서 전라도 사투리로 바뀐다든가, 키스장면이 대수롭지 않게 방영된다든가, 연하남 커플이 자주 나온다든가, 여성들의 성 표현이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변한다든가, 인기직업이 판사 검사 의사에서 펀드매니저 벤처기업 대표로 바뀐다든가. 미용사나 요리사가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남자들의 직업으로 등장한다든가……

드라마 역시 그렇지요. 때로 황당하고 어이 없는 설정이라 보이는 것도 실제 우리 사회 어디선가 일어나는 일을 전하거나 사람들의 마음속 희망사항을 대신하는 수가 많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의 TV드라마를 휩쓴 것은 신데렐라 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집 딸이 우여곡절 끝에 돈과 지위와 너그러움까지 갖춘 부잣집 아들을 만나 부와 지위를 한꺼번에 거머쥔다는 얘기지요. 만화영화 `들장미소녀 캔디`류의 이런 드라마는 참 끈질기게도 우리 안방극장을 차지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류의 드라마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SBS의 주말드라마 `그래도 사랑해`같은 게 대표적인 예지요.

그러나 세월은 모든 걸 변화시키는 것일까요. IMF체제 이후 우리의 TV속엔 신데렐라와 함께 `온달`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따뜻한 남자가 부잣집 아가씨의 사랑을 얻음으로써 돈과 지위를 한꺼번에 얻는다….뭐 이런 식이지요.

생수배달부에서 재벌집 사위가 된다는 설정의 `신귀공자`(MBC)가 나오더니 아예 형제들이 모두 여자 덕에 팔자가 펴는 `온달왕자들`(MBC)이라는 일일극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아줌마`의 경우 장진구의 친구인 박재하는 교수부인 대신 집안에서 주부 일을 하기로 하고 결혼해 밥을 하고 아기를 봅니다.

`온달`과 함께 TV에 등장한 또하나의 새로운 전형이 있습니다. 일하는 여성, 그것도 직장에서 팀장 혹은 부장으로 나타난 `여자 상사`입니다.

얼마전 방영된 `루키`(SBS)에서 황신혜가 외국에서 스카웃된 수출회사의 여자부장으로 나오더니 요즘 방송되는 아침드라마 `내 마음의 보석상자`(MBC)에선 김나운이 역시 외국에서 공부하고 특채된 백화점의 부장(팀장?)으로 등장하더군요. `이별없는 아침`(SBS)에선 병원의 원무과장이 여성입니다. `호텔리어`(MBC)에선 호텔의 여자지배인이 주인공이구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 증대 현상을 대변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이들 드라마에 나오는 여자 부장이나 팀장이 한결같이 같은 직장내의 남자를 사랑하느라 정신을 못차리는가 하면 심지어 남자를 둘러싸고 부하여직원과 갈등관계를 빚습니다.

글쎄요???? 사내 연애가 늘어나고 그 결과 직장내 커플이 급증하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제가 알기론 대부분의 사내 커플은 결혼전까지 연애 사실이 알려질까 조심하는 게 보통입니다. 때로 감쪽같이 숨기는 경우도 있구요. TV에서처럼 그렇게 공공연하게 직장 그것도 같은 근무부서에서 사랑 타령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결코 흔한 경우는 아니리라 봅니다.

더욱이 여자 부장이 남자 부하직원을 애인으로 두고 있다니…….. 그것도 모자라 아래 여직원과 갈등관계를 빚고 표독하게 몰아 부치거나 일에서 불이익을 준다는 전개는………

여자부장 노릇을 해본 저로서는 드라마 작가나 연출자가 일반직장의 구조나 현실을 너무 모르거나 아니면 만에 하나 여자상사에 대한 편견(독하고 사나우리라는)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됩니다. 여자로서 직장의 간부사원, 그것도 부하직원을 거느린다는 일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힘든 일인가는 아무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0여명의 부장 가운데 여자부장이 한사람 있을 때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일단 누구도 선뜻 여자부장이 있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남자부장에 비해 파워가 약하리라, 속을 터놓기 어려우리라, 남들 보기 쪽팔리겠지 등등…..이유는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서를 이끌고 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남자직원에겐 남자직원에게대로 말이나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특히 여직원에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여자 부장이 여직원을 거느리는 경우엔 아무 것도 아닌 일도 자칫 여자끼리의 갈등관계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때문에 잡무를 시키는 사환에게도 조심스러운 게 여자 상사입니다.

이런 마당에 여자 부장이 남자를 사이에 놓고 부하직원과 공공연한 갈등관계를 일으킨다구요????? 제가 너무 과문해 실제 어디선가 일어나는 일을 모르고 하는 얘기일까요.

물론 저도 잘나가는 여성 가운데 더러는 적극적 또는 당당이라는 이름 아래 뻔뻔스런 경우가 있다는 걸 압니다. 이른바 실력있는 남자들에게 얹혀 앞으로 나가면서 주위 여자들에겐 경계를 늦추지 않고 심지어 적대감까지 표시하는 여자들도 있구요.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자들보다 훨씬 많은 눈치를 보며 사는 것 아닐까요. 간혹 예외가 있다곤 해도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도 TV드라마가 여자상사를 그처럼 왜곡되게 그리는 건 왜 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흔히 통용되는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말은 이제 시정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밥그릇, 즉 기회가 적으면 관련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여자건 남자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혹시 여자상사를 모시는 분이 계실른지요? 칼럼회원에 가입하셔서 솔직한 의견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토론장이 되지 않을까요?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