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쓴다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자신의 일생을 정리한다면 과연 얼마나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을 것같은지요? 자신의 일인 만큼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운 대목은 어떻게든 잘 포장하고 부끄러운 부분은 빼먹거나 은근슬쩍 정당화하진 않을른지요??


또 다른사람이 기록한다면 실제 자신의 모습과 어느 정도 비슷하리라 보시는지요?




영국대사관 상무관을 지내고 지금은 수양부모협회 회장으로 입양운동을 펴는 작가 박영숙씨는 해외여행을 떠날 때마다 유서를 쓴다고 합니다. 오래 전 남편이 시작한 일인데 처음엔 이상했지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진다는군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건데 유서를 쓰다 보면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보게 되고, 남은 삶에 대해서도 또한번 생각하게 된다는 겁니다.




각설하고, SBS TV가 정주영회장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만들 계획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확인 결과 기사를 쓴 스포츠지 기자가 넘겨짚은 것이라지만 그만큼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정주영회장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요. 특정인물의 생애를 다룬 전기소설이나 인물드라마가 드문 우리나라에서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정주영회장의 일생이 과연 어느 정도 사실에 가깝게 그려질 수 있을른지요.




여러분은 정회장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요? 강원도 통천 태생이고, 어려서 고생을 무지 했고, 소 판돈을 들고 가출했고, 쌀가게에 처음 취직했을 때 자전거를 탈 줄 몰라 쌀 실은 자전거를 밀어서 배달했고, 조선소를 세우기도 전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 수주를 받아냈다는 것 등등... 그밖에도 많겠지요.




저는 정회장을 두 번 만났습니다. 한번은 문화부 기자 시절 `기업인과 취미` 시리즈 기사를 쓰기 위해 단독 인터뷰를 할 때였고, 두 번째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기업인과 문인과의 만남` 행사 취재차 울산 다이아몬드 호텔에 갔을 때였지요.




당시 정회장이 밝힌 취미는 알려진대로 시 읽기였습니다. 모윤숙선생의 시를 외울 정도였지요. 원로시인 구상 선생과 오랜 교분을 나눈 것은 보도된 대로구요. 구상선생 외에 시인 김남조 김양식, 소설가 정연희, 극작가 김수현씨 등과도 가까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업인과 문인 모임을 가질 때만 해도 정회장은 청년같았습니다. 다이아몬드 호텔 오찬 때 전날 과음으로 쩔쩔 매는 저를 보고 `젊은사람이 그 정도 가지고" 하시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집도 사기 전에 차부터 산다`며 걱정하시던 일도 생각납니다.




정회장의 자서전은 1991년과 98년 두차례 출간됐습니다. 91년에 나온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는 극작가 이호씨, 98년에 출간된 `이땅에 태어나서`는 유명한 김수현씨가 구성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제가 알기론 소설가 김주영씨도 1년여동안 현대의 이사대우 대접을 받으면서 정회장 자서전 집필에 참여했었습니다. 간행되지는 않았지만요. 자서전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작가 백시종씨의 소설 `걸어다니는 산`도 정회장을 소재로 한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나라엔 전기소설이 드뭅니다. 독일의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젤란` `에라스무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인간 발자크` 정도엔 못미친다고 해도 누군가의 장점과 단점, 사회적 업적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당사자가 겪었던 인간적 고뇌, 밝히기 싫었겠지만 그래도 공개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담은 인물소설이 나올 법한데도 말입니다. 영웅이 없어서인지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게 싫어서인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정회장 드라마가 제작되려면 많은 자료가 있어야겠지요.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엄청난 참고자료가 수집돼야 하리라 봅니다.장차 나올 제3자에 의한 회고록이나 인물평전도 마찬가지구요.




만난 건 잠깐이지만 정회장은 소탈한 한편으로 상당히 정확하고 세심한 분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회고록이든 자서전이든 평전이든 드라마든 앞으로 정회장의 일생을 그려낼 작품들은 정회장의 내면의 모습에 좀더 많은 비중과 초점이 두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정회장의 치적을 그저 찬양만 하기보다는 일생동안 혼자 도전하고 판단해야 했던 한 기업인의 머리와 가슴 깊숙이 감춰져 있었을 `삶의 추`에 대한 조명이나 해석이 진정 정확하고 치밀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지요.




한사람의 가치관이나 의지가 형성되는 데는 반드시 누군가의 영향 또는 어떤 계기가 있게 마련이라면 정회장으로 하여금 `하면 된다`고 믿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는지, 그의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였는지,시련에 부딪쳤을 때마다 어떻게 극복해냈는지 쪽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제2 제3의 정주영회장을 꿈꾸는 이땅의 후세들에게 제대로 된 역할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 우리에겐 무조건적으로 미화되고 포장된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실로 존경하고 사랑할수 있는 역할모델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