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러셀 크로가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난 늘 변두리에서 살았다. 어린 시절 기억에서 영감을 얻는다. 혜택받지 못하는 사람, 믿을 것이라곤 용기뿐인 사람에게 희망이 되기를…”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연극배우를 하다 헐리우드로 진출한 만큼 아카데미상을 받게 되기까지 나름대로 설움도 많았던 모양이지요. 아마..

올해도 벌써 석달이 지났습니다. `황무지`의 시인 엘리어트가 `잔인한 달`(죽어 있던, 보이지 않던 모든 걸 일깨우니까)이라고 말한 4월입니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은 얼마나 하셨는지요??? 우물쭈물 망설이는 사이 시간만 가고 아직 시작도 못하진 않았는지요. 겨우 시작만 해놓은 채로 제자리걸음 상태에 있는 건 아닌지요.

어쨌거나 봄입니다. 입술 꼭 깨물고 다시한번 출발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삶이 우리를 무시로 속여도 말입니다. 고단하고 외로운 삶에 위로가 됐으면 싶어 푸쉬긴(1799-1837)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소개합니다. 저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좋아합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러시아의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푸쉬긴은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의 본성에 천착, 계층간 차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주위사람들과 대립,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끝없이 염문을 일으키는 어린 아내 때문에 고생하다 결국 아내 정부와의 결투 끝에 죽었지요. 주어진 상황과 잘 타협하지 못해 버거운 인생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어둡지 않습니다.

푸쉬긴의 시에 더해 니체와 박재삼 김용택의 시도 옮겨 적습니다.

일이 도통 잘 안풀리고 어긋나기만 해서 지치고 화가 날 때, 그렇다고 마땅히 화를 낼 곳조차 없을 때 읽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들입니다.

니체(1844-1900)의 `언제인가 많은 것을`이라는 시는 이렇습니다.

“언제인가 많은 것을 일러야 할 이는

많은 것을 가슴 속에 쌓는다.

언제인가 번개에 불을 켜야 할 이는

오랫동안—- 구름으로 살아야 한다.”

박재삼(1933-1997)은 바둑을 잘 두던,곱고 나지막한 목소리의 서정시인입니다. 쉽고 단순한 어휘로 씌여진 그의 시는 우리말 가락의 정겨움을 듬뿍 담고 있지요. 여기에 적는 `천년의 바람`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김용택은 전북 임실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며 정겹고 소박한 시를 쓰는, 자그마한 몸집의, 그야말로 타고난 시인입니다. `섬진강`이라는 사회시로 알려졌지만 저는 그런 쪽보다 `그여자네 집`이라는 시집에 실린 것같은 아름다운 시들을 훨씬 좋아합니다.

서울대 미학과를 나온 운동권출신 시인이자 조각가이며 평론가인, 그래서 몹시 잘난체하기도 하지만 역시 타고난 심미안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는 황지우교수(예술종합학교,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의 저자)는 그를 일러 `시선(詩仙)`이라고 하지요. 오늘 옮기는 `이 바쁜 때`는 짤막하지만 시선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소낙비는 오지요

소는 뛰지요

바닥에 풀은 허물어지지요

설사는 났지요

허리끈은 안풀어지지요

들판에 사람은 많지요.”

니체와 박재삼의 것은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속상하고 서글픈 이들에게 작게마나 위안을 주리라, 김용택의 시는 바쁜 일상 속에 정신없는 이들에게 잠시 한숨 돌리고 빙긋 미소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리라 생각합니다만….

어느 것이든 한편이라도 햇빛에 반짝 빛나는, 그래서 문득 `아! 살아봐야겠다` 싶게 만드는 아침이슬같은 혹은 코 끝에 전해지는 향기만으로 살아있음이 다행스럽고 행복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봄밤의 상큼한 나뭇잎같은 것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하시는지요?????

35년반의 언론인 생활 끝에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나이에 상관없이 지금이 화양연화요,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