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폰다를 아시나요?

입력 2001-03-06 11:18 수정 2001-03-06 11:18
제인 폰다를 아세요? 명배우 헨리 폰다의 딸이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번이나 받고,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월맹군 전차에 앉아 미공군기를 겨냥한 사진을 찍어 미국정부를 기절초풍하게 만들고...,


40대중반에 에어로빅 비디오를 만들어 매년 3천5백만달러씩 벌어들이고... 두 번 결혼해 딸과 아들을 둔 상태로 쉰살 넘어 연하남이자 CNN창립자인 미디어재벌 테드 터너와 세 번째 결혼하고......


그러더니 이번엔 하버드대에 여성문제 연구기금으로 자그마치 1백60억원이나 기부하고.....




`정열의 화신` 정도의 말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정말!!!


아무튼 그는 1937년 12월 21일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나이론 예순다섯이지요. IQ는 보통보다 조금 높은 정도인 132라고 합니다. 이런 그가 일생동안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하는 데는 타고난 성정 탓도 있겠지만 성장과정이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고들 말합니다.




유명한 아버지와 남편의 바람기를 못참고 칼로 목을 베어 자살한 어머니 사이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게 그를 반항적인 동시에 성공을 향한 끝없는 도전의 화신으로 만들었다는 거지요.




어쨌거나 어린 시절 제인은 외로운 아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헨리 폰다는 일밖에 모르는 완벽주의자(부인이 자살한 날 저녁에도 연극무대에 섰다고 합니다)로 냉랭하기 짝이 없었고, 엄마 프란시스 세이무어는 유명인사의 아내들이 흔히 겪는 소외감에 시달린데다 아들이기를 바란 아기가 딸이자 실망해 보모에게 맡기곤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군요.




결국 제인은 주위의 관심을 끌고자 튀는 짓을 했다는 겁니다. 뉴욕의 엠마 윌러드학교 기숙사에 머물던 시절, 굽높은 구두를 신고 진주장식을 달고 저녁식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학칙에 반발,진주목걸이와 하이힐 외엔 아무것도 안걸치고 등장해 학교측을 대경실색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는 수많은 에피소드 가운데 한가지일 뿐이라고 할 정도지요.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이기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1963년 프랑스로 건너간 그는 첫남편이 된 영화감독 로제 바딤을 만나 본격적인 섹스 심벌로 등장했습니다. 바딤이 감독한 `바바렐라`라는 공상과학영화에서 우주인으로 등장, 외계에서 갑자기 옷을 벗어 세상을 화들짝 놀라게 만들었지요.




68년 첫딸 바네사를 낳았는데 이때 제인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했다는군요. 아마 여자에서 어머니로 변한 것 아닐까요.




사이는 나빴다지만 유명한데다 돈도 있는 아버지 덕에 고생 모르고 자란 제인이 갑자기 좌경인사가 된 데는 인도의 캘커타 여행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엄청난 빈부차와 헐벗고 굶주인 아이들을 본 다음 놀란 나머지 삶의 방향을 바꿨다는 거지요.




이후 바딤과 헤어지곤 신좌파 행동주의자가 돼 베트남전 반대와 각종 사회운동에 앞장섰습니다. 71년 영화 `클루트`에서의 창녀 연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72년 하노이를 방문, 미군조종사들에게 월맹에 폭탄투하를 하지 말라고 방송, `하노이 제인`이라는 별칭을 얻었지요. 이시기에 두 번째 남편이자 좌파운동 지주인 톰 헤이든과 결혼, 아들을 낳았구요.




그는 또 배우에 그치지 않고 영화사를 차려 `귀향` `차이나 신드롬`등을 만들고, `귀향`엔 직접 출연도 해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금연못`에 아버지 헨리 폰다를 출연시켜 사후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 영예를 안겨주었지요.




베트남전 후엔 몸매관리 사업가로 변신했는데 이는 방탕한 생활중에도 수십년에 걸친 운동으로 날씬함에 대해선 도가 터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비벌리힐스에 스튜디오를 열고 연습교본과 에어로빅비디오를 내놓았는데 그의 비디오는 이전까지 비디오란 빌려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미국은 물론 세계 여성들이 사들임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요.




80년대 내내 엄청난 돈을 벌고 남편 톰 헤이든을 상원의원으로 만든 제인은 90년대에 들어 다시 한번 변신합니다. 톰과 헤어지고 91년말 테드 터너과 결혼하는 거지요. 만 54세의 나이로 테드와 결혼하면서 그는 영화계에서 은퇴했습니다. "테드를 혼자 둘 수 없다"는 게 이유였지요.




그런 그가 지난해 터너와 헤어지더니 이번엔 하버드대학에 엄청난 돈을 내놔 세계를 다시 기절초풍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성의 성(젠더) 정체성과 교육의 상관관계 연구를 위한 하버드대학내 `성과 교육 연구센터` 설립기금이라는 군요. 말이 그렇지 1억6천만원도 아닌 1백60억원을 내놓는다는 걸 상상할 수 있으신지요?????? 그것도 60대 중반에 혼자가 돼서요.




제인 폰다는 한때 미국정부의 `적`으로 규정됐던 인물입니다. 젊은 시절 망나니였음을 스스로 인정할 만큼 엉망인 생활을 하기도 했고, 변신 때마다 이전의 자기주장이나 소신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섹스심벌에서 여성운동 지지자로, 군인모집을 위한 모델에서 반전주의자로, 성형수술 비판론자에서 예찬론자로, 반자본주의자에서 골수 자본주의자로 종횡무진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었지요.




그러나 그는 집단이나 조직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소신대로 행동했으며 일단 자기가 옳다고 믿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사회의 소수집단을 위한 운동과 미성년자 임신방지에 아낌없이 돈을 쓰더니 여성문제 연구를 위해 다시 상상을 초월한 돈을 내놓은 게 그렇지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라는 이유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1984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에서 마더 테레사, 마거릿 대처, 낸시 레이건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99년 미국 ABC방송이 선정한 ‘20세기의 여성 1백인'에 뽑혔습니다.




이번 뉴스를 보면서 저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같으면 과연 제인 폰다같은 여성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 우리 연예인들은 어째서 기부는 고사하고 팬들의 선물조차 얼마짜리인지 계산하는 인색한 모습을 보일까. 그리고 또한가지, 누구보다 강하고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제인 폰다가 "미국사회는 여전히 남녀의 성에 대해 왜곡된 의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여성차별 해소를 위해 거금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등등.......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솔직히 부럽습니다. 질투는 다음이구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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