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탕평채 이야기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요. 맥주집 안주메뉴로 자리잡은 `아무거나`(뭔가 시켜봤더니 마른안주와 소세지, 야채를 조금씩 섞은 모듬이더군요) 말구요. 저는 잡식성이라 뭐든 잘 먹습니다. 틀림없이 `그럼 멍멍탕도?` 하시겠지요. 일부러 찾진 않지만 여럿이 메뉴를 정할 때 굳이 못먹는다거나 안먹는다고 내숭을 떨어 분위기를 깨거나 왕따 당하진 않습니다.

음식점을 택할 때의 기준은요?

음식맛, 분위기, 서빙하는 아줌마나 아가씨의 얼굴, 친절도, 주차편의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그가운데 어느 걸 제일 중시하는지요. 남자들은 음식맛과 아가씨 얼굴, 여자들은 분위기와 친절도 순이 될까요. 아마 사람마다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음식맛이 아무리 괜찮아도 “손님이 많으니 차곡차곡 순서대로 앉아라” “신발은 알아서 챙겨라” “우리 음식은 이렇게 먹는 게 순서다” “차례대로 줄 테니 기다려라” “물은 알아서 먹어라” 식으로 손님을 푸대접하거나 우습게 아는 곳은 딱 질색입니다.

흔히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가보면 장소는 허름하고 아줌마들은 손님에게 마구 큰소리치고 밑반찬 좀 더 달라면 못들은체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그럴 수 있는 건가요…..

번듯한 인테리어나 주차시설, 서빙하는 아가씨의 얼굴이나 짧은 치마만 믿고 음식맛은 나몰라라 하는 곳 또한 견디기 힘들지요.

이제 우리의 음식점 문화도 좀 고쳐질 때가 된 게 아닐까요. 음식이 맛있어도 불친절하거나, 시설만 번듯하고 음식맛이 엉망인 경우 어느쪽이든 말입니다. 필요하면 야단도 좀 치고 그래도 시정이 안되면 발걸음을 끊어서 고치도록 해야 하지 않을른지요. 돈내고 밥 먹으면서 동행한 사람 생각해서 꾹 참고 나오는 거 너무 기막히고 억울하잖아요.

오늘 탕평채 얘기를 하려는 건 탕평채의 모양과 맛이 한식집의 음식 솜씨를 가늠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탕평채가 뭔지는 아시겠지요. 하얀 청포묵(녹두묵)에 고기볶음 미나리 김 등을 섞어 만드는, 한마디로 청포묵 무침입니다. 탕평채라는 우아한 이름은 조선조 영조때 제발 당파싸움 좀 그만하고 여러 파벌이 잘 협력해 나라를 평온하게 하자는, 이른바 탕평책을 논하는 자리의 음식상에 처음 등장하는 바람에 생겨났다는 군요.

탕평채는 한정식집의 코스음식에 꼭 끼는 것중 하나입니다. 한정식집의 코스는 대개 죽으로 시작하는데 탕평채는 죽 다음 혹은 죽과 샐러드가 나온 뒤 등장하지요. 이 탕평채가 집집마다 재료는 엇비슷한데 모양 특히 묵을 썰어놓은 폼새가 꽤나 차이납니다. 저는 다름 아닌, 묵을 썬 솜씨로 그집의 음식솜씨와 손님에 대한 태도를 판단하지요.

묵이 가늘고 예쁘게 썰어져 있으면 일단 점수를 줍니다. 왜냐. 청포묵을 가느다랗게 써는 건 고도의 기술과 정성을 요구합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삐뚤삐뚤해지고 부스러집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음식점에선 그냥 넙적넙적하게 썰어 양념장이나 얹어 줍니다.

최소한 한정식집이라고 이름붙인 곳이라야 채 썰어 미나리 숙주 김같은 고명을 넣어 무쳐 주는 거지요. 그런데 명색이 한정식집이라면서 탕평채의 묵을 넙데데하게 잘라서 양념장이나 얹어주거나 아니면 굵직굵직하게 썰어 대강 무쳐 주면 다른 음식은 볼 것도 없는 거지요. 실제로 탕평채를 엉터리로 해놓는 곳이면 다른 음식도 영 별 볼일 없습니다.

올해초 경기도 일산에서 중산마을 거쳐 파주 가는 길에 있는 꽤 큰 음식점(야외결혼식도 하는) 에 들러 큰맘 먹고 한정식을 시켰는데 탕평채라고 내놓은 것을 보니 냉장고에 있던 걸 녹이지도 않아 뻣뻣한 채로 대문짝만하게 썰어 양념장을 쳐 가져 왔더군요. 우리 식구들은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황당해 합니다. 작은 녀석은 `정말 엽기였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얼굴을 온통 찡그리면서요.

오늘부터 탕평채의 모양과 맛에 관심을 가져 보는 건 어떠실지….. 탕평채의 묵이 가늘고 예쁘게 채 썰어져 있고 고기와 미나리 숙주 김등 고명이 부드럽고 고소하게 무쳐져 있는 집이라면 다른 음식도 틀림없이 짱일 겁니다.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정성에 손맛이거든요.

늦깎이 훈장이 된 글쟁이. 내 인생의 꼭지점이 아직 남아 있겠거니 믿으며 매사 열심히 대드는 철 안든 아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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