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행복(9.20)- 만족과 감사함은 하나.

  만족이 먼저인가? 감사함이 먼저인가?

 만족(滿足)에서 감사(행복)가 나오는 것인가? 반대로 감사(感謝)함에서 만족(행복)이 생기는 것인가? 만족과 감사함은 닭과 계란의 관계처럼 선후(先後)를 알 수 없다. 어떤 일과 대상에 만족하기에 감사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감사함이 앞서기에 만족감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일이 성공적이고 흡족해서 만족감이 생기는 게 아니다. 만족은 어떤 현상과 사물을 원만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다. 만족은 얼마든지 마음 먹기에 따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일과 대상에 만족감을 갖게 하는 매개체(중간자)가 감사함이다. 어떤 일이 미흡해도 함께 수고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면 만족감을 느끼지만, 감사한 마음을 일으키지 못하면 만족은 없다. 만족해서 감사하고, 감사해서 만족한 것이다. 만족과 감사함은 한 몸이다.

  ‘이것도’ 만족하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면 이것저것이 다 만족할 일이다. 매사를 이익의 잣대와 편리의 저울로 선별하면 항상 부족감을 느끼지만, 이익이 아닌 이해와 수용의 잣대로 보면 고맙고 만족할 일이 넘친다. 누가 해코지를 해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지금의 고통을 미래를 위한 시련으로 생각하며 만족하자. 만족의 마법에 걸리자. 상대의 무례와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것도 만족하자’라고 용서하며 넘어가자. ‘이것도 감사해서 만족하자’ 는 마술을 걸자. 작은 손해와 상대의 시비에 행동 리듬을 잃지 않는 나에게 감사하자. 상대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일이 없도록 애틋하고 겸손한 만족과 감사의 예방주사를 놓자. 그리하여 불행과 불만의 면역(免疫)이 생기게 하자.
  ‘그리고’ 만족하자.

만족의 언어는 둥글다. 만족의 기운이 서린 언어는  ‘그러나’라는 말 대신에 ‘그리고’라고 둥글게 말한다. ‘그리고’는 긍정 후에 부정으로 말의 품격을 낮추지 않고 긍정으로 긍정을 이어간다. ‘그러나’의 언어는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지적하여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지만, ‘그리고’의 언어는 장점에서 장점으로 연결하면서 만족과 감사의 공간을 확장한다. ‘그러나’가 미리 자기 선을 긋고 그 선 밖을 보지 도 않으려는 자폐(自斃)성을 취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자기 선을 긋지 않고 무한 가능성을 향해 뻗어간다. ‘그러나’가 이미 친한 것만 자기편으로 삼고 배려함이 부족하여 가지고도 인색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이익과 관련 없는 부분까지 생각의 세포를 뻗어서 상대를 배려하고 서로 만족할 일을 찾는다.

  떠날 때도 만족하자.

  행복은 일정 부분 개인의 영역이며 개인의 책임이다. 행복은 골프처럼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다. 행복은 마음으로 취하는 선택의 게임이며, 자기 만족감이다. 죽을 때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새해 벽두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에서 나오는 솔향기? 도봉산 정상에 핀 진달래 동굴? 벼가 익어가는 연노랑 물결,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던 경포 앞 바다…  아니다. 어쩌면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과 감사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육체라는 껍질을 놓고 떠날 때 행복했던 기억과 감사의 에너지가 우주에 가득찰 수 있도록 만족하면서 살자. 만족으로 현재를 영원히 살자.

# 즐겁고 행복한 축제의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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