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오늘의 행복(9.6) - 대한민국에 정의는 없다.

오늘의 행복(9.6) – 생활 속의 정의(正義) – 정직, 정성, 정도,


바른 소리를 하다가 밥그릇을 잃고 참담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국법을 어기고도 뻔뻔한 사람들을 보면서 과연 대한민국에 정의가 있는가?
너무도 답답해서 무거운 화두를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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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 덕분에 정의의 바람이 불었지만 아직 정의로운 봄은 오지 않았나보다. 저마다 자의식(自意識)과 자아여행으로 존재이유, 삶의 목적과 행동 가치를 쫓지만, 세상은 거짓이 참을 조롱하고 수단이 목적을 위장하며 진실과 정의를 질식시킨다. 정의가 질식된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자.  

자기가 한 짓이 얼마나 다수의 정서를 해치고 부끄럽고 참담한 짓임을 모르는 반사회적 철면피들, 인간은 많은데 인간존엄성이 부족한 기업, 원칙과 아량은 적고 원리와 아집만 많은 법조계, 인간에 대한 예절은 없고 예산만 탓하는 공직자, 자발적인 노력과 도전의식은 없고 자존심만 장대한 청년 구직자, 충성은 희소하고 배신이 넘치는 조직, 예외와 특혜가 많지만 실망도 많이 주는 권력기관, 갑은 앉아서 수익을 얻고 을은 달려가서 희생당하는 불공정 시장, 새내기들과 제대군인의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꿈과 정의를 잃은 공간이다.

 정의는 진리에 맞는 도리다.

조직을 움직이는 것이 법과 규정이라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정의다. 공리주의자는 정의(正義)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정의(定議)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세상이 정의롭다고 했다. 법과 철학의 정신, 윤리와 도덕, 정도와 정직은 다 정의라는 그룹의 계열사들이다. 정의는 규범적이고 강제적인 냄새가 나지만 서로가 살기 위한 생존의 울타리다. 왜 정의가 필요한가? 다수가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정의는 이기적으로 변질되기 쉬운 아집과 자의식에 검정된 정신적 지침을 주고, 사회가 합의한 상식과 행동 매뉴얼을 제공한다. 정의는 거창하지 않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것, 다수가 살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정립한 법과 제도 가치를 존중하는 것, 다수에게 이익을 주고 다수를 이롭게 하는 조치, 소수의 의견도 배려하는 정신이자 행동이다.

  정의는 생활 속의 행동에 있다.

정의는 책속, 법조인과 정치인의 혀 속, 리더의 즉흥적 지시에 있지 않다. 정의는 바른 행동을 하려는 정신과 바르게 살려는 생활 속에 있다. 정의는 입바른 언어에 있는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바르게 보고, 배우고, 적용하게 하는 실천 교육에 있다. 정의로운 논리와 명분을 담은 글들이 난무하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정의는 죽은 정의다. 정의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고 정의의 편에 서게 하는 유전자는 무엇일까?  정의는 3정승(政丞)을 거느리고 있다. 바른 행동을 지극정성으로 다 하게 하는 영의정인 정성(精誠),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우의정인 정도(正道), 곧고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고수하는 좌의정인 정직(正直)이 있다. 행동하지 못하는 정의, 떳떳하고 당당하지 못한 자기들만의 정의는 그냥 주장이며 아집이다. 정의는 3공(公)으로 행동 모양새를 갖춘다. 공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공공이익, 공명정대, 공인자세 등 더불어 살기 위한 3공을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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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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