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의 무대 , 수성동 계곡과 안평대군 집터

입력 2015-09-30 15:01 수정 2015-10-05 09:56
운영전에서 수성궁에 대해 쓴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름다운 궁궐 수성궁은 안평대군이 살던 집을 한양성 서쪽 인왕산 기슭에 있었다. 인왕산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험하면서도 매우 수려하여 마치 용이 몸을 서리고 호랑이가 웅크려 앉아 궁궐을 지켜 주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대가 남쪽에는 사직단이 동쪽에는 경복궁이 자리잡고 있는 천하의 명당이었다.

인왕산의 한 줄기가 굽이쳐 내려오다 수성궁에 이르러 우뚝 일어서는데 , 그리 높지는 않아도 그 위에 올라서면 한양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그리 높지는 않아도 그 위에 올라서면 성안 가득한 집들이 바둑판의 바둑돌이나 하늘의 별처럼 또렷하게 보였고 베틀의 실처럼 줄지어 펼쳐져 있다. 또한 동쪽을 바라보면 아득히 궁궐이 솟아 있고 그 사이를 임금이 다니는 길과 신화가 다니는 길이 가로질렀으며 푸른빛을 드리운 구름과 안개가 아침저녁으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였다.

과연 수성궁은 한양에서도 제일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며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서 꽃 피는 봄이나 단풍 드는 가을미녀 술이나 활쏘기를 즐기는 한량들이 날이면 날마다 노래 부르는 기생과 피리 부는 시종을 데리고 가 놀았으며 , 시를 짓고 서예를 즐기는 이들 역시 매일같이 수성궁을 찾아가 풍류에 취해서는 돌아기는 것마저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운영전의 무대가 된 아름다운 수성궁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아직 부암동에 가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계곡물 소리가 크다 하여 '수성(水聲)'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수성동계곡이 그곳인데 , 옥인시범아파트를 2010년에 철거하면서 발굴됐고, 지금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수성동 계곡은 서울시 기념물 31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입니다.

수성궁의 주인공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1418년에 태어났고 이름은 이용입니다. 큰형은 훗날 문종이 되었고 둘째 형은 수양대군으로 나중에 세조가 되었습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을 쫒아냈을 때 그때 그도 강화도로 유배되었는데 8일만에 사약을 받고 죽음을 받았던 인물로 운영전에서 묘사한 것처럼 학식이 깊고 예술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1442년 6월 어느 날 안평대군이 수성동 계곡에 집을 지은 다음 경복궁에 들어가니 아버지 세종이 ‘비해당’ 이라는 당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세종은 재주가 뛰어난 안평대군이 장자(長子)가 아니었기에, 자신이 왕위에 있는 동안은 물론, 동궁(東宮 훗날의 문종)이 즉위한 뒤에도 ‘게으름 없이 임금 한 분만을 섬기라’는 당부를 하기 위하여 ‘비해’ 두 글자를 따서 당호로 내려준 것이라고 합니다.

수성동은 이 계곡을 말하는 것일테고 비해당은 지금 물길 양쪽에 조성된 두 개의 산책로 가운데 왼쪽 길을 따라 조금 더 상류 쪽으로 올라가 뒤 왼쪽으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위의 둔덕에 날렵하게 얹힌 형국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옥인 아파트 철거 덕분에 겸재의 그림으로 보던 기린교도 재확인돼 운치를 더합니다. 이 다리가 언제 놓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260전의 그림에 등장하는 돌다리가 전해진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겸재 정선의 <장동 팔경첩>과 인왕상 수성동 계곡의 기린교 최근 모습>



그리고 또 한 곳 안평대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서울미술관에서 자하문터널 가는 길이 아닌 창의문 가는 오른쪽 길로 올라가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부암동 주민센터 앞에서 오른쪽 큰 길을 따라 가다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쪽 길을 오르면 최근 새롭게 지은 한옥집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 지은 한옥집을 지나면 잡풀로 우거진 공터가 나오는데 ‘운수좋은 날’ ‘술 권하는 사회’ 등의 단편소설을 쓴 빙허 현진건의 집터입니다. 현진건 집터는 공터로 남아 있습니다. 집터 뒤 오른쪽 언덕 위가 안평대군 별장터인데 집 앞으로 가까이 가 보면 ‘안평대군 별장터’라는 안내판이 있지만 건물은 안평대군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대문이 잠겨 있지만 문틈으로 계단 위쪽 바위를 보면 ‘무계동(武溪洞)’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이 주변을 무계동이라 불러 안평대군의 별장을 무계정사라고 하였습니다.

1447년 음력 4월 안평대군은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그는 항상 마음에 그리던 무릉도원을 박팽년과 함께 거닐게 됩니다. 안평대군은 그 꿈을 잊을 수 없어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고 한다. 그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이 이 장소라고 합니다. 그래서 < 몽유도원도는 >는 사람들이 말하길 안평대군의 정치비전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폐가와 잡초만 우거진 안평대군의 집터를 돌아보며 권력과 명예의 무상함을 느낄 뿐입니다.



( 안견의 몽유도원도 )

그러나 우리는 작자 미상의 운영전이라는 소설속에서 , 비행당과 무계정사를 통해 그가 꿈꾸었던 세상의 편린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퇴락한 건물과 그냥 거기 근처일거라고 추정되는 위치 등 전설로만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건국대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한 후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418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713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