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healing)은 몸과 마음에 대한 치유를 의미한다. 지난해부터 뜨겁게 불었던 힐링 열풍은 먼저 감성적 치유로 시작했다. 멘토들의 위로에 귀 기울이고 마음의 위안이자 심리적 카타르스시를 얻고자 했고, 출판계, 방송계 모두에서 힐링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올해도 거침없이 확산되는 힐링, 그런데 그 힐링이 조금 변화하고 있다. 단순한 위로와 감성적 치유에서 보다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담은 행동하는 힐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新 힐링의 조건, 왜 가족인가?

요즘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TV프로그램이 <아빠 어디가> 이다. 아이와 아빠가 함께 떠난 여행은 목적이 ‘여행’ 아니라 ‘관계’다. 평소 집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일상 밖에서의 여행을 통해 서로의 진심도 확인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는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가족의 서로 소통하고 관계가 원만해지는 것만큼 좋은 힐링이 또 있겠는가.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한번에 씻어줄 존재도 역시 가족이고, 그건 몸과 마음의 진짜 치유가 되는 진짜 힐링인 셈이다. 아이와 아빠, 혹은 아이와 엄마, 아빠와 엄마를 등장시키는 가족 간 화합이자 소통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은 더욱더 소비될 소지가 크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명사를 멘토로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 보다 바로 옆, 늘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귀 기울이는 것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힐링임을 올해 우리가 다시금 깨닫는 셈이다.

<인간의 조건>, <남자가 혼자 살 때>라는 프로그램도 주목받는데, 여기서도 가족이 드러난다. <인간의 조건>에서는 개그맨들이 모여 일주일간 하나의 가족이 되고, 각자의 가족의 얘길 꺼내고 서로의 가족을 위해주기도 한다. 여기선 쓰레기 배출을 줄이거나 자동차를 타지 않거나 등 일상에 당연히 누렸던 것에 대한 결핍도 선사한다. 당연함이 감사함으로 바뀌는 순간 우린 우리의 일상에 더 만족을 느낄 수 있고, 잊었던 마음의 안정도 더 가질 수 있다. 우린 이미 충분히 잘 누리고 있고,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혼자 살 때>에서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스타들이나 기러기 아빠들이 사는 모습을 리얼다큐로 보여주면서 그들에게서 가족의 결핍과 함께,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시청자들로서는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바로 옆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한번 더 돌아볼 계기가 되고, 그것이 바로 일상에서 필요한 진짜 힐링, 바로 가족과의 관계 회복의 시작이 된다.

우린 왜 힐링을 원하는가?

바쁜 일상과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각종 상처가 가끔 있는 짧은 휴가로선 도저히 해소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쌓아가고 있는게 바로 현대인들이다. 누적된 스트레스와 상처를 참아내던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다. 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임계점이다. 더 이상 개인의 노력으론 해결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경제위기 앞에서 청년은 취업을, 중년은 퇴사를, 노년은 생존을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 고민을 터놓을 상대가 없고, 그걸 위로받을 방법이 없는 이들처럼 가혹한 상황도 없을 것이다. 바로 힐링이 필요한 시점이자 힐링을 상품화해서라도 소비해야 할 이유인 셈이다. 그만큼 우리가 힘들다는 얘기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엔 늘 마음치유에 대한 트렌드가 등장한다. 트렌드는 늘 사람들의 욕구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경제위기의 터널 속에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가장 의지하고 믿을 존재는 결국 가족이다. 과거 IMF 구제금융시기의 경제 위기에서도 힐링은 등장했었고, 그때도 가족이 화두가 되었다. 위기의 짐을 진 가장들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아버지’에 대한 화두가 출판계, 방송계에서 주요하게 소비되기도 했다. 우리 늘 어려울 땐 가족을, 그 중에서도 가장을 찾는다. 의지할 존재이자 문제를 해결할 존재로서 그가 필요한 것이다. 결국 우린 힐링을 감성이 아닌 행동이 중요하다는걸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달콤한 위로보다 일상의 관계 회복이 진짜 힐링

배고픈 사람에겐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최고의 힐링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까지 득세했던 감성적 힐링은 ‘너도 배고프냐, 나도 배고프다. 그러니 참아보자’ 라거나 ‘원래 배 한번쯤 고파야 인생을 아는거란다’ 라는 식으로 문제의 해결보다는 위안 자체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금방 귀를 자극하고 마음을 두드리긴 했지만 금새 공허했다. 요즘 출판계에서 쏟아지는 힐링 서적에서도 이전의 막연한 멘토보다는 좀더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아주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 대부분이 삶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거나, 타인과 소통이자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들이다. 결국 힐링의 새로운 조건은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잊고있었던 사람과의 관계라는 진짜 문제해결에 관심가지는 독자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이고, 달콤한 위로보다는 현실에서 적용할 진짜 힐링의 행동들이 필요함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우린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을 기회가 부족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주는 결핍이 상처가 되고 위로받아야 할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소셜네트워크에 열광하고 반려동물을 키운다. 누군가와 쉽게 연결되어 쉽게 얘길 주고받는 대상을 찾기엔 소셜네트워크만한게 없고, 반려동물을 보듬어주면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외로움도 달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겐 소셜네트워크에서 만난 가상의 누군가가 옆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보다 더 쉽게 마음을 터놓을 대상이 된다. 만약 일상에서 늘 함께하는 가족과 동료, 친구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바로 진짜 힐링이 아닐까.
우리가 주변에서 가족이나 친구 중에서 멘토를 찾지 못하니 사회적인 명사를 멘토로 바라보게 되어, 위로를 주는 책과 토크 콘서트를 적극 소비한다. 하지만 이런 공공의 멘토는 개인에겐 늘 결핍을 준다. 일상에서 세세한 얘길 터놓을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인에겐 자신의 얘길 들어줄 사람, 자신의 상처에 공감해줄 사람이자 콘텐츠가 필요한 것이다. 자기만 혼자 외롭고 힘든게 아니라는 것을 공감해줄 동지면서, 달콤한 위로만이 아닌 때론 쓴 비판도 해줄 진짜 친구, 가족, 동료가 필요한 것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ww.digitalcreator.co.kr

* SPC 사보에 기고한 원고


라이프 트렌드 2013 -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김용섭 저, 부키, 2012.12.15)

이 책은 현실과 일상의 수많은 단서를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재배열하여 2013년을 관통할 흥미로운 핫 트렌드를 전한다. ‘오렌지족의 귀환’, ‘대중문화의 새로운 티핑포인트’, ‘스마트 기술이 바꾼 풍경’ 등 에세이처럼 편안하게 읽히는 22개 주요 트렌드를 통해 오늘 우리 삶의 스펙터클한 변화상을 눈맛 시원하게 조망해 낸다. 2013년 한국인은 무엇에 관심을 쏟고 누구와 함께 어떤 일에 열광할 것인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만나 보자.




라이프 트렌드 2013

김용섭 저
부키 | 2012년 12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에서 연구와 저술, 컨설팅, 강연/워크샵 등 지식정보 기반형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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