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가 없는 정치는 망한다.

입력 2013-03-07 14:50 수정 2014-03-08 01:22





최근 대한민국은 환상적인 ‘통일대박’에 빠져 있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후에도 신형 방사포를 쏘아대며 노골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간판을 걸 정당엔 안보 철학과 대북 정책에 대한 정견이 없고, 여야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정략 대결은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서서히 뜨거워져 가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대한민국의 다수는 안보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안보는 통일이 되더라도 국가 생존의 기초이며 강국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구한말 보다 더 불투명한 현재의 안보 상황을 극복하고 국가 안위를 위한 안보 책략을 제안하고자 한다.


책략(策略)은 일을 처리하는 꾀. 현 여건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전략이며 최선의 방책이다. 책략이 없는 사람은 책략이 있는 사람에게 끌려가고, 책략이 없는 조직은 책략이 있는 조직에게 지배를 받는다. 책략은 거룩한 꾀나 진한 속임수가 아니다. 인간존중과 국민중심의 상식에 기초하고, 절대가 아니라 상대적이며 역발상으로 기존 정체성을 정리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안보 책략을 칼에 비유하여 살펴보자.


안보라는 칼은 국민이라는 주군을 지키는 칼. 국가의 기본은 국민, 영토, 주권. 안보는 국가의 3대 기본을 지키겠다는 국가의 최고 기능이다. 안보를 소홀히 하고 자국을 지킬 힘이 부족했던 국가들은 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마야 문명과 월남이 그러했다. 국민과 국가를 지키는 안보 철학과 정책이 없는 무리들이 정권을 잡아서는 안 되고, 국가의 최고 기능인 안보의식이 없는 정치인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할 기본 개념이 없는 사람이기에 정치 무대로 보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악하다. 통제(정치)가 없으면 혼란에 빠지기에 국가를 다스리고 통제하라고 국민이 위정자에게 위임한 것이 권력이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탁받은 정치인은 그 권력으로 국가를 지키고 국민이 잘 살도록 하는 게 기본 임무인데 정치 무대에 등단하면 국가는 안중에 없고 사리사욕과 권력의 지배력 강화에 몰두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은 우리도 모르는 자국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데 세상 밖을 보지 못하고 안에서 싸우는 꼴이 꼭 유치원생이 장난감 갖고 싸우는 꼴이다.

칼은 안보, 칼자루는 통치권, 칼집은 정치. 안보, 통치, 정치는 모두 국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기능이다. 주변 4대 강국은 계속해서 국방예산을 증액하는데, 우리나라는 적과 대치하고 있는데도 제자리 걸음이다.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들의 종북성 발언은 안보 집단의 사기를 꺾고 적과의 동침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한국의 안보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현재 안보 상황은 칼에 비유하면 녹이 슬고 무디어졌다. 적을 베기 위한 도구로서의 안보의 칼은 한 두 사람이 결정을 해서도 안 되지만, 정당 정치의 희생양으로 고유 기능을 잃어서도 안 된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 때문에 마치 정치가 국가의 최고 기능으로 오해를 하고 있다. 아직도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보다 안보 기능이 앞서야 한다. 나라가 망한 뒤에 정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적이 무서워하도록 안보의 칼날을 엄중하게 세우고 여차하면 통치권자가 칼을 쓸 수 있는 안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칼집에 칼이 걸려서 칼을 쓸 수 없다면 칼 자체가 무용지물이듯 정치가 안보의 걸림돌이 된다면 그 정치는 환멸과 경멸의 대상이다. 칼에 맞는 칼집을 만들고 칼집은 평소의 칼을 보호하고, 결정적일 때는 칼집을 내려 놓을 수 있어야 칼로 적을 벨 수가 있다. 우리는 이제 부국강병과 살기 좋은 국가를 위해 안보가 없는 정치, 국민이 없는 정치에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안보에 여야가 없다. 칼이 있기 때문에 칼집이 생겼는데 칼집이 칼을 보호한다고 인식하면 본질과 현상이 전도된 현상. 본질을 모르는 사회는 칼집이 칼의 행세를 한다. 안보의 본질을 모르는 위정자는 칼집이 칼을 통제하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칼이 칼집을 만들고 칼집이 칼을 보호하듯, 안보와 정치가 같은 방향을 보고 나갈 때 안보와 정치가 함께 산다. 안보가 튼튼할 때 정치와 경제도 있는 것. 정치가 없는 안보는 있을 수가 있지만, 안보가 없는 정치는 있을 수가 없다. 안보의 칼이 위협을 느끼면서도 칼집의 보호(방해) 속에 갇혀 있다면 칼은 칼집 속의 무딘 쇠에 불과하다. 평소의 칼은 칼집 속에 갇혀 있어야 하지만, 위기를 느끼면 칼집은 잠시 물러나(칼집을 벗기고) 칼의 역할을 성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안보에 문제가 생긴다면 누가 대한민국의 안위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가?


안보 관련 정책과 약속은 지켜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안보의 칼이 정치적 칼집에 막혀서 칼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당한 치욕들이 너무도 많았다. 우리 민족의 기록의 역사를 분석하면 문이 무를 지배하여 유약하고 나약한 시절, 자기 생존권마저 외세에 의존했던 암울했던 시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하던 선조는 이황의 건의(왜군의 목을 베서 바치는 자는 신분 상승 보장)를 받아들여 공고를 하였고 의병 봉기를 유발하여 국가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왜군이 물러간 뒤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병자호란 때에는 의병이 봉기하지 않았다. 정권마다 국방 개혁 정책을 참신하게 내놓지만 지속되거나 시행되는 것은 없다. 인기를 위한 미봉책의 정책도 문제였지만 정치의 희생물로 사라진 정책도 많았다.


물리적 합동성은 제고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에 소리를 낸다. 같은 목표를 향해서 저마다의 위치에서 일을 하는 조직은 강하다. 모아 놓고 통제하려는 조직은 자발성을 잃고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자신감이 없는 리더가 회의를 많이하고, 시스템이 없는 조직일수록 통합과 합동을 강조한다. 오리는 걷고, 뛰고, 날고, 수영도 고루 할 수 있지만 어느 종목에서도 대표가 되지 못한다. 다양한 전투 요소를 모으고 결합하는 통합의 본질은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일관성 유지인데, 통합성을 잘못 이해하면 물리적인 통합에 고착된다. 물리적으로 통합되면 저마다의 고유성을 잃고 기존의 자존감을 잃는다. 거문고 줄을 붙여버리면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동안 합동의 이름으로 물리적으로 합친 조직의 효율성과 갈등 요소를 분석해야 한다. 통합은 대테러 작전처럼 소부대 단위가 전투할 때는 필요하지만 대부대 작전에서 통합은 의사결정 시스템만 제한해야 한다. 이제는 통합이 아니라 통섭이다. 저마다의 자기 본질을 지키면서 같은 목표와 미션을 향해서 주목하고 함께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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