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본래의 자기 마음을 찾는 마음공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마음의 선택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 항상 긴장하면서 사는 신하처럼 마음이 쪼그라들 수도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황제처럼 당당할 수도 있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빠지면 허상을 사실로 집찰할 수도 있고, 세상의 근본 실상을 조금이라도 보게 되면 지금의 실상도 덧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수시로 샘물처럼 솟아나기에 인위적으로 막을 수도 없고, 모양도 형체도 없기에 파괴할 수도 없고, 한 곳에 머물지 않기에 울타리를 쳐서 소유할 수도 없지만 나의 의지로 선택하여 내 마음을 내가 사용할 수 있다. 우주처럼 큰마음을 사용한다고 사용료를 물지 않는다.

마음은 세상을 구성하고 지배하는 에너지다. 세상은 마음으로 굴러가는 공(空)의 세계다. 이성과 욕망이 갈등할 때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진정한 마음이 없다는 자괴(自愧)심도 들지만, 내 마음을 내가 선택하여 행동할 때면 마음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뿌듯한 확신이 생기고,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작은 일로 흔들릴 때면 마음은 중심이 없는 변덕스러운 에너지라는 의구심이 생기지만, 꽃을 보면 즐거워지고 좋은 노래를 들으면 흥겨워 질 때면 마음은 변하지 않는 본성과 본래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생명체는 모두 저마다의 고유 마음이 있다. 꼬리를 치는 개를 보면 개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가지를 꺾으면 진물을 내는 나무를 보면 나무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물질도 마음의 파동이며 우주 자체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본래의 마음은 아픔을 모른다. 마음은 형체가 없기에 파괴되는 아픔이 없고, 진짜 마음은 우주를 놀이터로 삼을 정도로 통이 크기에 작은 일에 잡히지 않고, 본래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기에 자유롭고, 마음은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대상을 나의 일부로 수용하기에 누구하고 다투면서 아파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마음이 작은 자아에 갇히고, 허상을 사실로 착각하고, 말로 행동을 대체하면 마음도 아프기 시작한다. 우리가 자주 아픈 것은 크고 자유로운 본래의 마음을 망각하고 마음이 작고 초라하게 변질이 되기 때문이다. 아픔을 체험하면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되고 기회의 정글에서 물질 확보를 위해 고난의 외줄을 타는 광대로 변신한다. 아픔을 반복하면 인간은 야수와 천사의 불편한 결합체이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면서 더 작은 존재로 추락한다. 본래의 자아를 찾으려면 작은 마음을 진화시켜 본래의 큰마음을 찾아야 한다.

1. 마음을 성형(成形) 하라. – 고정관념 바꾸기, 마음의 정비

  마음이 불안하고 아프다는 것은 본래의 마음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본래의 마음은 형상도 없이 크고 자유롭지만 마음이 탐욕스런 몸에 깃드는 순간 약해지고 추해지고 소유에 집착한다. 하나의 슬픔 때문에 100개의 기쁨을 잃기도 하고,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별 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입기도 한다. 고정관념에 잡히면 자기 주관대로 생각하느라 좁고 추해지고, 아집과 자기애착에 빠지면 자주 변덕을 부린다. 반대로 본래의 마음에 접근하면 큰일도 아주 지엽적이고 그냥 지나가는 일로 생각하기에 대범해지고, 상대도 나의 일부로 생각하기에 미워하면서도 애틋하게 챙긴다. 본래의 큰마음을 찾으려면 기본 틀에 스스로 묶이는 고정관념, 자기만 생각하는 아집과 집착, 오해와 분노 속에 살게 하는 반쪽 마음부터 고치고 정비해야 한다.

마음을 성형하여 새로운 마음을 만들자. 화폐는 구겨져도 가치에 변함이 없지만 마음은 구겨지면 인간 가치를 잃는다. 진흙을 주물러 원하는 형상을 만들듯, 흐트러져 깨지고 추해진 마음을 성형하여 새로운 마음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은 의지에 따라 한 점에 머물기도 하고 우주가 되기도 한다. 내 몸의 DNA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것이기에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지만, 나의 마음은 나의 의지로 정비하고 성형할 수 있다. 병든 마음을 고치고 정비하려면 마음의 성형이 필요하다. 자기 세계에 갇힌 고정관념을 정비하고 수련하여 새롭게 진보할 수 있다. 마음은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기운이기에 마음은 농축(신념과 자기사랑), 폭발(대담과 자기 버림), 재구성(이해와 수용), 성형(마음 전환, 정비)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마음을 먹기에 따라 현재 운명과 운신(運身)의 폭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

  마음의 성형은 구겨진 마음을 고치는 기술이다. 생각과 마음도 햇살처럼 파동이면서 입자다. 김치를 직접 담아보면 마음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안다. 평온하고 기분이 좋은 상태로 담으면 아삭한 단맛이 돌고, 화가 난 상태에서 담으면 질긴 쓴 맛이 돈다. 파동을 치는 마음이 물질에 투사되고 전이 되어 물질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일이 꼬이면 마음부터 고치라는 신호음이다. 정성이 담긴 마음은 일을 순탄하게 하고, 중심을 잃고 구겨진 마음은 일을 그르친다. 글과 말에 수식어가 많으면 산만하고, 진실이 담기면 간결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나의 이익을 앞세우면 다툼이 생기고, 이익보다 즐거워서 일을 하면 행운이 따른다. 남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포함된 책과 제품은 반드시 알아주는 법이다.

  2. 마음을 성장(成長)시키자. – 절제와 포용, 상상과 감성

 마음만 바꾼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현실에 적응하고 고난을 밀고 나가려면 마음을 키워야 한다. 누구나 태어날 때 마음은 우주의 일부로 순수하고 자유롭지만 몸이 성장하면서 몇 번의 좌절과 고난을 겪으면 작아지기 시작한다. 인간은 마음의 크기만큼 존재한다. 마음이 커지면 우주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마음이 작아지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 천둥에 놀라면 천둥이 두렵고, 바가지에 긁히면 작은 비난의 소리에도 놀란다. 마음이 이익 때문에 작아지면 사소한 일에 집착하고, 작은 일로 다투며, 자주 변덕을 부린다. 자주 놀라고 작아진 마음을 키우려면, 수양과 수련으로 마음을 제련하고, 인내와 절제로 단련하며, 상상과 감성으로 마음을 성장시키고, 버림과 내려놓음으로 초월해야 한다.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해왔다. 이제는 성장 속의 분열, 풍요 속의 빈곤, 상대적 불안감을 극복해야한다. 그동안 인문학 속의 인간은 자기 세계만 보는 외눈박이이며, 욕망으로 살다가 빈손으로 가는 허무한 존재, 사물을 통찰하지 못하고 아집과 집착으로 스스로 자기 세계에 갇히는 작은 존재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인간 모순에 대한 통찰하면서 마음을 성장시켜 왔다. 마음을 성장시켜 몸의 쓰임새까지 높이려면 탈바꿈 절차가 필요하다. 마음은 고정된 모양새와 방향을 싫어하기에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마음을 키우는 것이며, 마음은 고난 속에서 더 강해지기에 다치고 넘어진 뒤에 다시 일어설 때 성장하며, 마음은 전체를 볼 때 부드럽고 안정을 취하기에 통찰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 꽃과 개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마음을 주고받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통찰이다.

절제와 포용으로 마음의 가속도를 키워라. 물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면 저항보다 더 큰 힘을 가해야 하듯, 원하는 일을 하려면 추한 욕망을 이기는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한다. 마음의 근육인 심근(心筋)은 겸손, 절제, 포용으로 키워진다. 일이 생기면 진솔하게 ‘현재 이러한데, 어찌하오리까?’ 라고 자기 물음을 던지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절제로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줄이고 포용으로 자아를 확대해야 한다. 마음은 2가지 사이클로 움직인다. 욕망의 좌절 -> 화와 분노 -> 어리석은 행동으로 진행되어 아픔을 제조하는 사이클과 욕망의 좌절 -> 절제와 포용 ->사랑으로 진행되는 지혜의 사이클이 있다. 지혜의 사이클을 밟아서 마음을 빅뱅하려면 욕망이 좌절할 때 화가 아닌 절제를 선택하여 평정을 지키고, 우주도 나의 것이라는 공간 감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고, 믿음으로 어디에도 구속받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한다.

  상상과 감성의 가속도를 키워라. 마음의 성장시키려면 결정적인 순간에 이익관계를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지만, 먹다 남은 과일에서 허리 잘린 벌레를 보면 구토하는 게 마음이다. 몸의 생각인 욕망과 두뇌의 생각인 이성으로는 마음을 성장시키지 못한다. 욕망은 천방치축으로 중심이 없고, 이성은 자신감이 넘칠 때는 세상의 지배자처럼 굴다가도, 위축되면 망명을 꿈꾸는 독재자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욕망과 이성을 다스려 마음을 키우려면 욕망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상의 힘과 따뜻한 감성을 배합하여 태양 속으로 날아가 보기도 하고, 지렁이 뱃속도 여행하고, 나무 수액의 흐름을 따라 가보고, 강물의 노래 소리도 듣고, 꽃의 향기에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성장하면 말 못하는 잡초도 밟히면 향기를 풍기며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변의 사물들이 애틋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3. 마음을 빅뱅하자. –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념

세살 적 습관(마음)이 여든까지 간다. 인간이 바뀌지 않는 것은 마음의 본성은 늙지 않고 좀처럼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바람처럼 움직이며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상황에 맞는 마음을 사용하려는 마음의 운용이지 마음의 기본 속성은 아니다. 자기에게 이미 익숙한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의 속성이다. 인간의 마음이 바뀌는 것은 기적이다. 자기 마음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마음이 고르지 못하고 특정한 마음(가치)에 빠져 있어서 다툼이 많고 고통을 느낀다면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고통을 이기려면 마음을 빅뱅 해야 한다. 마음의 빅뱅은 명상과 심호흡에 의한 순간적인 깨우침, 지속적인 독서와 수양, 고행을 통한 탈바꿈 등이 있지만 자아의 프로그램을 다시 설정하여 새로 태어난다는 자기 각성이 없으면 마음의 빅뱅은 이론적이다. 

빅뱅(Big Bang)은 우주가 대폭발에 의해 탄생 했다는 우주기원설이다. 빅뱅 이론은 방대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소통이 된 교양이기에 세부적인 언급은 생략하고 빅뱅의 원리를 마음 세계에 적용하여 마음을 형상화 하고 새로운 마음을 얻어 보자. 빅뱅은 기존의 혼돈과 방치된 잠재 에너지에 충격을 가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활동이다. 우주가 빅뱅으로 열린 물질세계라면, 마음은 빅뱅으로 열린 물질세계와 짝이 되는 공(空)의 세계이며, 인간의 역사는 마음의 빅뱅으로 진보한 흔적이다. 르네상스, 종교혁명, 프랑스 시민혁명, 대한민국의 민주화 등은 사회적 빅뱅이다. 우주의 빅뱅은 ‘쾅’하는 순간에 우주의 에너지와 공간을 재편성했듯, 물질과 짝이 되는 마음(에너지 결합)도 빅뱅으로 얼마든지 바꾸고 무한 팽창을 시킬 수 있다. 마음의 빅뱅으로 마음의 틀은 바꾸면 아픔과 고난은 꿈속의 꿈이요, 티끌 속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마음의 빅뱅은 마음의 관성을 파괴하는 일이다. 일이 꼬이면 생각을 내려놓고 비우라고 하지만 자기중심으로 길들여진 마음을 쉽게 끊지 못한다. 운동하던 물체는 계속 운동을 하려고 하듯, 마음도 기억과 자기 체험으로 얻은 정보를 믿고 행동하려는 관성 때문이다. 상상으로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지만, 자기 방식과 자기 습관대로 생각하고, 몸이 배우고 체험한 대로 행동하려는 속성 때문에 닭장 안의 닭처럼 자기 생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미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울 수 있는 마음의 빅뱅이 필요하다. 마음의 빅뱅은 마음을 탈바꿈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진보하려는 인간 개조이며, 마음의 빅뱅은 불교의 해탈(解脫)처럼 속세의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나 초월적 경지에 이르는 일이며, 절대적 존재인 신을 믿고 신의 세계로 몰입하는 일이며, 좁쌀처럼 작은 마음을 순간 깨우침으로 우주 이상의 큰 자아를 키우는 마음의 핵폭발이다. 마음의 빅뱅으로 기존의 생각과 선악의 기준을 깨고 마음의 에너지가 흐르는 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옛 마음을 고치고 새로운 마음을 따라가자.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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