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100세 시대 행복을 위한 표준 일과표 만들기.


오래 살아야 하는 100세 시대인데 행복하지 않다면 삶이 아니라 지옥일 것이다. 행복을 시간 길이로 재는 것은 인위적인 발상이지만, 현대인의 평생 동안의 행복한 날의 합계 일수가 100일도 채 안 된다고 한다. 100세 기준해서 인생 행복시간이 최소 7년이 되려면 하루에 100분 정도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하루 100분이 행복하려면 10분 정도의 행복 프로젝트를 10개 정도 진행해야 한다.

1) 기상해서 심호흡을 하면서 하루의 행복 구상, 2) 하루의 에너지를 얻기 위한 아침 식사, 3) 대중교통 편으로 이동하면서 심호흡 운동, 4) 오전 일에서 쾌감을 얻기 위한 몰입, 5) 오후 에너지 보충을 위한 즐거운 식사, 6) 식사 후 자기 내면과의 대화, 7) 오후 일에서 만족감을 위한 집중, 8) 퇴근 길 혹은 퇴근 이후 걸으면서 명상하기, 9) 부모님에게 전화 드리기, 10) 잠들기 전 하루정리 및 발바닥 운동 등 10가지 이상의 행복 프로젝트를 정하고 수련하자. 삶 자체가 즐거워진다. 삶이 즐거우려면 즐거울 수밖에 없는 마음의 유전자가 필요하다.  

자아 – 나를 나답게 만드는 유전자. 유전자가 생명체의 핵(核)이라면 자아(自我)는 나를 움직이고 나를 나답게 하는 존재의 핵이다. 자아는 내가 누구라는 정체(正體)의식이며 내가 나를 보는 거울이다. 손동작 하나도 자아가 만든 작품이다. 자아는 오로지 인간에게만 부여된 영혼이다. 내 얼굴, 내 생각, 내 행동으로 고유한 존재로 살려면 자아를 찾고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자기 본연의 자아를 찾아야 안정적이고 자기다운 삶을 살 수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남과 구분되는 고유하고 독립적인 자아, 매력과 품위가 있는 자아, 마냥 행복한 자아를 꿈꾼다. 자랑스러운 자아는 자부심을 주고, 이루고 싶은 자아는 열정을 주고, 극기의 자아는 강인함을 준다.

자아에서 마음과 행동이 나온다. 자아가 흐리면 욕망과 욕심, 예민한 의식과 계산적인 감각이 나를 끌고 간다. 자아가 없으면 내가 아닌 탐욕이 나를 끌고 가기에 여유 없이 쉽게 공포를 느낀다. 자아가 부실한 상태에서 남과 비교하는 자아는 자기 위축과 허영심을 만들고, 물신(物神)주의에 길들여진 자아는 순간 쾌감을 쫓다가 스트레스 누적으로 건강을 잃고, 마음만 중요시하는 심신(心神)주의에 길들여진 자아는 마음 세계에 빠져 행동을 잃는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된 자아를 찾으려면 각성과 수련이 필요하다. 자기각성으로 자아(自我)를 돌아보고, 자기충격으로 잡념과 마음의 병을 제거하고, 자기수련으로 ‘나’라는 개체를 다듬고 내가 희망하는 자기를 창조해야 한다.


마음의 평화 – 안정감을 주는 유전자. 마음의 평화는 삶을 순탄하게 하고 행동의 안정감을 주는 유전자다. 남에게 공감과 동조를 얻고 상대보다 우위에 설 때 생기는 평화는 본능적 평화이며, 현재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게 하여 마음의 바탕을 고요하게 하는 평화는 의지적 평화이며,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고 겸손한 처신으로 만드는 평화는 초월적 평화이며, 자기 대화와 자기위로로 찾는 평화는 수양에서 오는 평화다. 의지적으로 고요한 상태를 만들어서 얻는 평화, 이미 벌어진 일을 받아들이고 나의 것이라도 필요하면 버려서 만드는 평화도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내면의 고요함과 가치 있는 행동이 만날 때 생긴다. 마음의 평화를 보장하는 유전자는 의미 있는 활동이 주는 자기희열감이다. 자기희열감은 자기만의 정신세계와 의미 있고 유익한 체험이 결합될 때 생긴다. 쇠북은 소리를 만드는 도구지만 그냥 두면 소리가 없다. 쇠북이 북소리를 내려면 자기 몸을 때려야 하는 이치와 같다.

홀로 명상으로 얻는 평화도 있지만, 진정한 평화는 서로가 공존하고 서로가 편할 때 생긴다. 누가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잘 난 척만 하면 평화는 깨진다.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전쟁터다. 나의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다. 나의 사상, 종교, 문화가 최고라고 하는 순간에 평화는 깨진다. 물질세계에서는 돌과 금은 동등한데 인위적 가치를 부여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것은 인간이다. 돌과 금이 있는 그대로 고유한 물질이듯, 반사회적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사회적 평화다. 더불어 평화를 찾게 하는 유전자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보완하는 자세다. 코가 호흡이 보이지 않는다고 코를 막아서 호흡을 중지시키면 코도 호흡도 사라지는 이치와 같다.

행복의 의지 – 고통도 즐겁게 하는 유전자. 행복은 악조건도 즐겁게 만드는 유전자다. 노래하는 새가 돈 때문에 고민하는 인간보다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좋은 조건이 제공하는 선물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만드는 상태 동사다. 행복해서 즐거운 게 아니라 즐겁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행복을 먼저 앞세우면 불만투성이지만 즐거움을 앞세우면 모든 일이 행복하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소득과 소비를 통한 물질의 행복은 한계가 왔다. 물질의 결핍이 정신공황으로 발전하기 전에, 행복한 생각, 고통을 다스리는 여유, 웃음을 행복의 기초 재료로 삼고,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생산하고, 몸과 마음의 절제된 훈련으로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유전자는 구분하지 않고 수용하는 잡식성 생각이다. 나에게 유리한 것만 선택을 하려고 하면 고달프고 불행하기에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즐겁게 수용하는 배포가 필요하다.

몸의 청소로 건강을 찾듯, 마음 청소로 행복이 깃들 마음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청소는 창문을 열고,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 순으로 진행하듯, 마음 청소는 마음의 문을 열어서 세상과 소통하고, 자아의 공간에 쌓인 욕망을 쓸어내고, 자아에 배인 탐욕을 영혼으로 닦아내고, 잘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해야 한다. 마음의 평화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진입로라면 행복 창조는 마음이 찾아가야할 목표다.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발걸음 하나도 만들듯, 행복은 몸과 마음의 합작품이다. 몸과 마음의 역학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즐거움을 만드는 것이다. 유전자도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유전인자를 만들듯,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더불어 사는 정신과 모순도 흡수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위(胃)가 아무리 왕성해도 입이 먹지를 못한다면 위는 놀면서 쓰라림을 느껴야 한다.

여유- 마음을 강하게 하는 유전자. 여유는 참고 기다리게 하며 어려움을 이기게 하는 유전자다. 전쟁터에서 최후의 5분까지 버티는 쪽이 이기듯, 갈등이 있더라도 먼저 화를 내지 않고 여유 있게 버티는 자가 이긴다. 살면서 낭패를 겪는 것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조급하게 서두르기 때문이다. 한 박자 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여유는 느리게 가더라도 똑바로 가려는 심성이며, 큰 것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인생 전략이다. 강인함은 억센 정신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여유에서 생긴다. 여유는 넉넉하게 생각하게 하여 마음의 안정을 주고 차분하게 행동하게 하여 실수를 줄이고,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듣게 하고 반대편까지 배려하게 한다. 여유는 부드럽고 신중한 대응으로 마음의 근육을 강화시켜 욕심의 강도를 조절한다.

여유가 없으면 시간의 노예가 되어 3초의 여유 부족으로 30년을 잃기도 한다. 여유(餘裕)를 가지려면 진지하게 내면의 소리를 듣고, 숨을 쉬는 일 외에는 서두르지 않고, 홀로 초연할 수 있는 배짱과 나의 일에 당당할 수 있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여유는 아픔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데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듯, 아픔 없이 성장하는 사람은 없다. 역풍이 없는 항해가 있을 수 없듯, 시련 없이 발전하는 사람은 없다. 평화와 행복 또한 힘든 과정을 여유 있게 요리할 때 생기는 마음의 산물이다.

단순함 – 명쾌하게 살게 하는 유전자 . 단순함은 복잡한 것을 이기고 행동을 명쾌하게 하는 유전자다. 세상은 음과 양의 조합으로 굴러가는 공간이다. 세상이 온정을 잃고 팍팍해져 가는 것은 갈수록 복잡해진 구조 속에서 계산하고 따지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넘어갈 일도 계산이 개입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감정이 생긴다. 복잡한 생각은 행동의 실체로 변할 수 없다. 구분의식은 스스로 활동 영역을 좁히고 인위적인 적을 만들고, 의심은 스스로 혼돈에 빠져 에너지를 뺏기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안일과 편리함을 추구하면 자기 가치를 잃고, 자존심으로 방어하면 기회와 친구를 잃는다.

용기는 자신감에서 생기고 힘은 단순함에서 생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집중의 단순함이며, 보이지 않는 것도 믿는 것은 영성의 단순함, 옳고 그름보다 사랑과 신뢰로 감싸는 것은 포용의 단순함, 복잡한 내용보다 가치로 판매하는 것은 접근의 단순성이며, 계산하고 따질 시간에 행동하는 것은 효율의 단순성이다. 복잡한 상태에서 단순함으로 탈바꿈하려면 단순할수록 강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닥치면 능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예측과 계산의 복잡함을 버리고, 복잡한 일일수록 단순하게 대응하고, 식사를 할 때는 식사만 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사랑 – 사람을 움직이는 유전자. 사회를 움직이는 유전자가 철학이라면 사람을 움직이는 유전자는 사랑이다. 철학이 없으면 철학이 있는 세력에게 끌려간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도 고유철학이 많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철학을 계승하지 못하고 서양철학을 받아들이면서 문명도 끌려왔다. 현대 문명은 서양의 합리주의 철학에 기초를 두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과 신비주의를 배제하고 오로지 이성과 논리를 기초로 하는 합리주의 철학은 물질 세상을 발전시켰지만, 치열한 경쟁구조로 정신적 갈등과 스트레스를 양산했고, 생산성을 지향한 합리주의 철학은 대량생산 체제와 고도의 물질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정신문명을 퇴보시키면서 정신적 공황 상태를 초래했다.

상생철학으로 정신 공황을 극복하자. 서양의 철학은 서로라는 개념보다 행위 주체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생산을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합리적 생산성에 집중된 서양 철학의 폐단을 사랑의 개념이 막아주었지만 아직도 사랑보다 생산성이 을 이기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서구 문명을 보면 희생적인 사랑은 적게 보인다. 사랑이 실체로 바뀌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 서로 사는 상생과 화합의 철학을 다시 찾아 정신 공황을 이겨야 한다.

자기창조 – 영원한 나를 만드는 유전자. 자기창조는 자아를 키우고 강하게 하는 유전자다. 아메바는 자기 복제를 통해서 개체를 번식하고, 인간은 자기창조를 통해서 성장하고 성공의 기초를 닦는다. 자기창조는 나의 색깔, 나의 인성, 나의 장점을 살려서 나를 빛나게 하며, 자기창조는 자기 뜻을 펴서 보람 있는 삶을 살게 한다. 자기창조는 그림으로 치면 밑그림을 따라 채색하는 과정이다. 힘든 나를 추슬러 힘을 내게 하는 것도 의지의 자기창조이며,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은 지적인 자기창조이며, 상대를 감성으로 움직이고 함께 하는 이를 이롭게 하는 것은 영적인 자기창조다. 자기창조는 자기사랑에서 생겨나 자신감과 통찰력을 먹고 성장하여 세상까지 이롭게 한다.

자기창조로 자기다운 자기를 만들고 뜻을 펴지 못하면 남에게 끌려간다. 대접이 부당해도 참고 버텨야할 일들이 많아진다. 생명체는 자기를 닮은 것을 대물림하면서 생명을 이어가고, 인간은 자기창조를 통해서 마음의 품격과 자기 가치를 진보시킨다. 남을 의식하고 모방하는 자아는 삶을 주도하지 못하고, 물질과 기술적인 창조는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정신을 가난하게 한다. 삶을 진보시키고 삶의 보람을 느끼려면 자기창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다. 자기를 창조하는 사람은 모순도 발전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자기창조를 가능케 하는 유전자는 가치의식이다. 가치의식은 하고자 하는 일의 명분과 실효성, 생산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따져보고 신중하게 일을 진행하게 한다.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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