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마음으로 평화와 행복의 문을 열자.

입력 2012-04-09 04:30 수정 2012-05-12 08:10


감사는 갚아야 할 의무지만 누구도 그것을 기대할 권리는 없다 - 루소






감사함이 무디어진 자아에게!



인생의 짐이 무겁다고 감사함마저 무디어진 자아여! 감사함이 서로를 평화롭고 이롭게 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감사함이 부족하면 얻는 것은 불만과 다툼이며 잃는 것은 인간 품위다. 인간으로 사는 자체가 감사할 일이 아닌가? 눈만 뜨면 비교에 시달리더라도 작은 일에도 감사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자. 감사함은 더불어 살라고 영혼이 마음에게 파견한 전령(傳令). 미운 이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감사의 달인이 되어 오만과 거만을 제거하고 겸손을 초대하자. 일이 있어 즐겁고, 가족이 있어서 고맙고, 행동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 묵묵히 사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고 뜻을 같이하는 이를 축복하자.





감사할 일 앞에서도 계산을 생각했던 자아여! 감사함은 험한 세상을 위로하며 앞으로 나가게 하는 에너지라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다. 매사에 감사하면 얻는 것은 기쁨이며 잃는 것은 미움과 비판이다. 꿈을 꾸고, 살며, 행복을 선택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 아닌가?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더라도 시공(時空)을 조건 없이 허락한 자연에게 감사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찬미하자. 감사함은 사람 구실을 하게 하는 인간 의 덕목. 희생을 당해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감사의 철인(鐵人), 먼저 주고 먼저 감사하는 감사의 명인(名人)이 되어 마음으로 감사하고 행동으로 표현하자. ‘넌, 누구냐?’ 고 물으면 감사할 줄 알아서 행복한 인간이라고 대답하리라.


대장암 검사를 받고, 용종을 떼어 내고,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감동적인 사진(김 형원님 작품)을 보았다.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외발의 할아버지가 외발 자전거를 타는 손자(동네 아이)를 도와주는 장면이 아닐까? 자기도 힘이 들면서 남을 돕는 자세가 감동적이다. 불편해도 움직이며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자기 생명에 대한 예우이며 강인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 장의 사진은 아픔과 재기, 포기할 줄 모르는 강한 정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 아파도 앞으로 나가려는 인간의 숭고함 등을 생각하게 했다.





행복(幸福)의 행(幸)자를 뜻풀이를 하면 다행이라는 뜻이다. 행복은 다행스러운 복이다.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뭔가 요행과 우연에 기댄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행자의 깊은 비밀을 찾기 위해 행자를 파자(跛字)하면 다리 짧은 양(羊)이 땅(土)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 양이 땅을 떠받드는 모양이다. 더 인위적으로 풀면, 양이 땅에 대해 감사하는 형상 => 양이 땅이 생산한 풀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이다. 결국 행복의 행(幸)은 감사를 의미한다. 행복(幸福)은 감사할 때 우연한 복도 온다는 합성어다. 감사함은 존재의 뿌리에 대한 포괄적 긍정이며, 현재를 인정하고 넘어가려는 포용성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감사함의 의미를 소화하고 실천하지 못하면(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자기 존재를 가능케 하는 뿌리도 모르고 사명감 없이 경박하게 살며, 남을 탓하고 원망하며 다툼이 많고, 더불어 어울리지 못하고 불편하고 쪼들리게 산다. 감사함은 낮추면서 사는 약자의 언어가 아니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충만하고 불편하고 부당한 것도 일단 감싸면서 나가려는 강자의 언어다. 내가 존재함을 감사하고, 상대가 있음을 감사하고,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감사하자. 감사함은 세상의 에너지를 부르는 행동이면서 평온을 누리게 하는 수단이다.



감사함은 자기 긍정과 자비(사랑)에서 생겨나 서로를 이롭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 감사함은 지친 가슴에 생기를 주는 생수이며, 서로를 살게 하는 에너지다. 감사함은 마냥 기쁨을 느끼게 하고 남까지 챙길 여백을 주며, 투자에 비해 큰 생산을 준다. ‘아직도 신(臣)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는 이순신의 비장함도 본질은 감사함이 아니었을까? 살기 위해 허리를 굽히더라도 살아 활동함에 감사하고,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었다면 더 좋은 일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감사하자. 쇠기둥에서 꽃을 피우려면 꽃이 필 화분을 달아주어야 하듯, 악조건 속에서 평화와 행복의 꽃을 피우려면 감사의 주머니를 달자.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감사하라.



불평을 감사로 전환하자. 불평과 감사함은 서로 방향이 다른 힘이다. 불평은 두 손 가득 물질을 잡고도 더 달라고 거칠게 보채는 행위라면, 감사함은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이다. 복잡하게 살수록 불평할 일도 많다. 우주의 쓰레기로 떠돌다 지구의 인력(引力)에 의해서 몸을 태우면서 지구로 날아온 운석처럼, 불평과 불만은 무조건 찍고 태우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불만은 불안과 불행을 부르고 자기 영혼마저 검게 태운다. 지상에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며, 마음의 입가에 불만이 찾아오면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언어의 낭심에 가득 찬 불만과 부족감을 거세하여 항상 감사하자.



모든 일에 감사하자. 산다는 것은 부딪힘이며 부딪힘은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이다. 다툼과 고난이 생겨도 일단 감사할 수 있다면 인간 품질이 상승하고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감사함은 복을 부르는 행동이면서 감사함 자체가 행복함이다. 저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하면 매사가 미흡하고 불안하지만, 지금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면 마냥 행복하다. 감사하는 순간에는 욕망은 증식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이게 어디야.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고마운 일이다. 조상과 하늘이 보살폈다. 아직도 행복하다.’ 등 모든 일이 감사할 뿐이다. 매사가 어렵고 힘이 들어도 마음의 평화를 위해 감사하자.

‘그래도’ 감사하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면 그래도 감사할 일이 많다. 직업 구하기가 어렵고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때, 가난한 나라의 어린 노역자들은 하루 일당 1달러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불공정 사회라고 비판의 날을 세울 때,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으며, 우리가 반찬 투정을 하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하면서 배부른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의 토속 촌에서는 하루에 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일부의 사람이 성형 수술을 받고 작품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고 있을 때, 교전지역과 북한의 어린이들은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찾고 있다. 우리가 브랜드를 따지면서 신발을 고를 때,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PT병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서 신발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우울해 할 때, 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는 인류가 전체 지구 인구의 2/3인 40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것도’ 감사하자. 우리는 매사를 이익과 욕망의 잣대로 저울질하고 선택한다. 세상을 이익과 욕망의 저울로 선별하면 항상 부족감을 느끼지만, 이익이 아닌 이해와 아량의 잣대로 보면 감사할 일이 넘친다. 누가 해코지를 해도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지금의 모순과 감당하기 어려운 ‘이것도’ 미래를 위한 시련으로 생각하며 감사하자. 이익의 잣대에 걸리면 상대의 무례와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쉬운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밥그릇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고 그릇을 깨는 짓을 한다. 이해의 마법을 취하면 작은 시비에 말리지 않고, 작은 일로 행동 리듬을 잃지 않고, 자기 행복을 스스로 깨지 않는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존재로 보일까? 를 고민하지 말고, 나는 어떤 존재로 살 것인가? 를 생각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자. 나의 중심을 잡고 감사한 삶을 살고 상대를 애틋한 존재로 인식하면 갈등과 다툼이 준다.



‘그리고’ 감사하자. 감사함의 기운이 서린 언어는 ‘그러나’라는 말 대신에 ‘그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긍정 후에 부정으로 말의 품격을 낮추지 않고 긍정으로 긍정을 이어간다. ‘그러나’의 언어는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지적하여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지만, ‘그리고’의 언어는 장점에서 장점으로 연결하면서 감사함의 공간을 확장한다. ‘그러나’가 미리 자기 선을 긋고 그 선 밖을 보지도 않으려고 명분을 찾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감각이 무딘 자세를 취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자기 선을 긋지 않고 무한 가능성을 향해 뻗어간다. ‘그러나’가 이미 익숙한 것에만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나머지는 버리려고 하고, 세심하게 파고드는 힘이 부족하여 대충 윤곽만 파악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자폐성을 취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이익과 관련 없는 부분까지 생각의 신경 세포를 뻗어서 자연과 상대를 미세하게 관찰하고 감사할 일을 찾는다. 살기 바쁘다고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를 모르고 죽고, 아무리 오래된 동료라도 자세히 보고. 이해하고, 서로 맞추어주려는 미세함이 없다면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떠날 때도 감사하자. 행복은 일정 부분 개인의 영역이며 개인의 책임이다. 행복은 골프처럼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며, 행복은 마음으로 만족을 취하는 선택의 게임이다. 죽을 때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새해 벽두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에서 나오는 솔향기? 도봉산 정상에 핀 진달래 동굴? 4월의 눈처럼 휘날리며 낙화하던 어느 산사의 벚꽃 물결, 벼가 익어가는 연노랑 물결,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던 경포 앞 바다… 아니다. 어쩌면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과 감사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육체라는 껍질을 놓고 떠날 때, 행복했던 순간과 감사한 에너지를 챙기면 육체의 인연은 끝나더라도 영원한 영혼의 세계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감사함도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만의 감사함은 효력이 없다. 감사함이 입과 행동에 붙어 있어야 한다. 감사함도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일에도 입으로 소리를 내어 감사하다고 해야 하고, 감사할 일이 있으면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원망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위력이 있음을 체험해야 한다. 성질이 나더라도 입은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 세상을 밝고, 편하고, 온전하게 보는 두뇌 훈련이 필요하다. 평화는 마음의 수평선 찾기이며, 행복은 의미 있는 행동 찾기다. 평화롭다고 생각하면 평온한 일이 생기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부족과 부실한 현실도 기쁨의 대상이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커진다. 매사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마음의 근본이 바로 서고,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행복이 생긴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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