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기려는 자아를 위하여!

부족과 결핍으로 두려움에 잡힌 자아여!
두려움은 자신감 부족과 좁고 작은 결핍이 만든 생각의 불량품이 아닌가?
빵이 작아진다고 두려워 말고, 물속의 수초가 허리를 굽힌다고 비난하지 마소.
욕망의 비대증과 나태가 두려움의 뿌리임을 깨달아 욕망을 줄이고,
펜을 손에 쥐었으면 글을 쓰는 적극성으로 두려움을 끊게 하소서!

상대를 대하는 일이 어색하고 두려운 자아여!
몸아, 물로 왔다가 한 줌의 재로 갈 수는 없잖아!
영혼아, 짧은 인생, 인간 두려움에 떨다가 그냥 갈 수는 없잖아!
몸과 마음의 계급장이 두려움의 줄기임을 깨우쳐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고,
나 속의 너를 찾고, 너 속의 나를 사랑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이기게 하소서!

세상으로 나가 행동하는 것이 두려운 자아여!
세상은 열려 있는데, 마음이 좁아서 움츠리고 있는 게 아니냐?
불꽃이 작아서 요리가 늦다고 투정하지 말고,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탓하지 마소.
주제도 없는 복잡한 언어들이 두려움의 잎임을 알고 혼으로 행동을 압축하고,
아직도 빈자리로 있을 내 자리를 찾아서 두려움을 꿈으로 바꾸게 하소서!



현생 인류는 힘센 동물의 위협도 없고 인격체로서 법의 보호를 받지만, 여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원시인에게 위협의 대상이었던 힘센 맹수는 힘의 질서와 조직의 억압으로 대체가 되었고, 사냥꾼의 사냥감 불확실은 밥벌이의 불확실로 변했을 뿐이다. 자리 보존의 불투명, 대인관계의 불안, 투자의 결과에 대한 초조함, 미래의 불확실, 몰래 벌린 일의 노출, 천벌(天罰)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두려움은 긴장하면서 신중하게 살도록 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두려움은 활기와 생기를 죽이고, 행동을 위축시키고, 소심하게 하는 역기능이 더 많다.

'우리는 왜 두려워하는가?’ 두려움의 뿌리는 피해의식과 상실감이다. 두려움은 존재감을 허탈하게 하는 부족감과 결핍감, 최악의 상황을 이길 자신감 부족, 이미 가진 것을 뺏길지 모른다는 상실감에서 생긴다. 자리와 권위의 상실, 상대의 공격으로 인한 체면 삭감, 인격과 자존심의 분실, 물질의 손실 등 손해를 보고 있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두려움을 키운다. 두려움의 본질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두려움이 생기면 소심하고, 예민하고, 주저하고, 까칠한 행동을 한다.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살펴보자.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보자. 두려움에 떠는 것은 원인을 보지 못하고 현상만 보기 때문에 생긴다. 지키고 보호할 할 것들이 많아서 두려운 게 아니다. 두려움이 생기는 불안감의 뿌리를 보지 못하고, 일이 잘 못되면 다시 하겠다는 용기가 부족하면 두려움이 날뛴다. 상처 받는 것이 무서워 접근을 못하는 두려움, 반발과 원망이 무서워 조언도 못하는 두려움, 대인 기피와 대인 공포 등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능히 지혜롭게 대응을 못하는 자기에 대한 두려움이다. 해야 할 일을 못하는 소심한 두려움,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을 담지 못하는 어리석은 두려움은 사물과 대상을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무대 울렁증, 기대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손해를 볼 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건강 상실과 죽음에 대한 공포, 감추어진 비밀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자기를 믿지 못하고 자기를 감추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다. 사물의 본질과 자기를 볼 수 있다면 두려움의 반을 해결한다.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배짱을 키우자.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이길 수 있다는 배짱이 있으면 능히 해결할 수 있지만, 걱정과 두려움이 습관이 되면 조건이 좋아도 걱정거리에 시달린다. 나는 나로서 강하다는 자아의식과 자신감으로 불안감과 피해의식을 제거하면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고 작은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 최선을 다한 이후의 고통은 내 책임이 아니라는 영적인 배짱이 있으면 소심한 마음과 불안감을 녹일 수 있고 죽음도 두렵지 않다. 언젠가는 아름다운 소풍을 끝내고 영적 세계로 돌아갈 운명이다. 미련 떨고 조바심내지 마소. 조바심을 많이 내고 죽었다고 황금 관을 내려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두려움을 느끼면 최악을 상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자.

좀 망가지는 것을 성장의 기회로 삼자. ‘나’라는 존재는 유일한 존재이며 우주의 주인이다. 주인은 자기 일을 하면서 손해를 따지고, 손해를 보았다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정한 주인은 자기 일로 자존심이 망가지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더 큰 성공을 위해 자존심이 좀 무너지는 것도 감수한다. 두려움이 생길 때 요행수를 버리고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면 대비하는 힘과 한 박자 쉬면서 하려는 여유가 생겨서, 성과가 지연 달성이 되어도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이미 망가진 일이라면 두려움 대신에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자.
두려움을 만드는 아집과 이기심을 순장(旬葬)하자. 칼이 부러진 무사가 칼이 짧다고 두려워서 물러서면 바로 죽는다. 칼이 짧을수록 한 발 더 앞으로 나가야 살 수 있듯, 여건이 불비할수록 더 힘을 내야 산다. 삶을 불리하게 하는 아집과 이기심을 자기 의지로 콘크리트 무덤 속에 순장시켜야 평온한 자기로 살 수 있다. 육신이 한 줌의 재로 사라지기 전에, 두려움에 빠진 허상의 자아를 죽여야 한다. 자기가 사라진 공간에 두려울 일이 무엇이 있겠나? 새로운 삶,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용기, 한 박자 쉬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큰일을 찾자.

진정으로 두려워 할 것은 자기를 감싸는 관대함이다. 자기를 이기지 못하면 두려움과 타협하는 비겁함이 생긴다. 두려움은 자기 성장을 위해 제거할 대상이다. 고민과 고통, 몸의 노고와 손실을 두려워하지 마소. 손해는 새로운 기회, 새로 채우기 위한 절차로 인식하고, 몸이 좀 더 수고를 하고, 마음이 한 발 더 나가자. 더 크게 살고 세상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매사에 감사하고,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대응하며, 공격적인 욕심과 방어적인 자존심을 내려놓고, 서로 어울려 일을 하자. 쉽게 일을 하려는 안일함과 귀찮아하는 소극성을 버리고, 웃으면서 화합하는 큰 인간이 되자.

자신감을 회복하자. 자신감으로 나의 위대성을 인정하고, 나를 낮추는 겸손으로 행복을 만들자. 돌멩이에 붙어사는 이끼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키우고, 물을 흡수하는 땅처럼 부드러운 자아를 찾자. 지나간 실패를 가슴에 묻고, 내가 나를 인정하여 주변 소리에 굴절하지 마소. 나의 무한한 잠재력(핵에너지)을 찾고 키우자. 영혼이 나를 감싸고 있음을 확신하여 만인 앞에서도 당당하자. 지상에서 얻은 것을 다 돌려주고 빈 껍질로 돌아가더라도 자신감으로 당당하게 살았다는 자랑만은 챙겨서 가자.


-감사합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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