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 13도.
아침 해는 산 너머로 불기운을 드러냈고, 찬 듯 따스한 바람은 얼굴 없이 마구 불었다.
잡초는 바람에 눕고, 꽃들은 햇살을 기다렸고, 나비들은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지도자 명백 나비의 봄은 활기가 넘쳤다. 꽃을 찾는 실용의 노동을 주장했고, 봄의 향기를 노래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풍요의 꽃은 피지 않았고, 5대 지도자 노백 나비가 부엉새에게 잡혀서 죽고, 나비들의 대립은 끊이지 않았다. 중도로 포장한 나비 지도자의 언어는 힘의 질서를 열었지만 뿌리 없는 국화꽃들이 피게 했다.

청백나비는 전날 참나무 숲 관찰로, 피곤이 겹쳐 잠에 떨어졌다가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다. 청백나비에게 통증을 준 것은 배고픈 불개미 일당이었다.




“날지 못하는 나비야, 배고픈 불개미에게 살점이나 주고 가라.”
“날지 못하는 게 아니다. 잠시 자고 있었을 뿐인데 …….”

청백 나비가 어이가 없어 말을 다 끝내지 못하고 겹눈을 굴리며 저항의 기운을 보이자,
“긍정은 짧을수록 좋다. 부실한 몸을 불개미를 위해서 보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더 이상 말이 없다면 동의로 간주한다.”

불개미들이 일방적으로 청백나비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찌릿찌릿한 고통이 속살을 타고 전해왔다. 청백나비는 날개 짓으로 불개미를 털어 내고 자리를 피하면서 생각했다. ‘세상 관찰, 꽃들의 사랑, 나비들의 희망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살려면 힘부터 갖추어야 한다. 힘이 없으면 자유는 없다. 꽃들의 사랑을 돕고 얻는 에너지는 미약하다. 나비의 힘은 아마도 꽃들에게 생기를 주는 태양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태양으로 가서 큰 에너지를 얻자.’

태양을 통해 큰 에너지를 얻겠다는 청백나비의 엉뚱한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시큼하고 달싹한 배추꽃에서 꿀을 먹고 태양으로 가기 위해 산 능선을 올랐다. 산바람은 날개를 휘감아 내렸고 돌개바람은 몸을 띄워주었다. 청백나비는 날개의 힘이 아닌 상승하는 바람에 말려서, 목표로 했던 태양이 아니라 솜사탕처럼 보이던 꽃구름에 도달했다. 꽃구름은 솜사탕이 아니라 축축한 물 덩어리였다.

청백나비는 태양으로 가겠다는 미련을 접지 못해 구름을 타고 장엄한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말벌의 눈동자처럼 둥글고, 언젠가 보았던 거미의 입 속처럼 붉었다. 태양의 기운을 받으면 힘센 말벌도 집요한 불개미도 모두 이길 것 같았다. 청백나비는 태양을 향해 더 가까이 가고 싶었지만 물기 먹은 날개는 더 무거워졌고, 겹눈이 어지러워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빗방울과 섞여서 지상으로 떨어졌다. 추락하면서 생각했다. ‘상상만으로 태양 에너지를 꿈꾸다가 또 낭패를 당했다. 나비에게 태양은 바라볼 대상이지, 찾아갈 대상이 아니다.’

태양을 목표로 구름까지 올라갔다가 지상으로 떨어진 청백나비는 자신감을 잃었다. 자신의 흰 날개가 너무도 초라하게 보였다. 흰 날개를 감추어줄 흰 꽃을 찾았다. 지천에 깔렸던 흰 꽃은 보이지 않고 유채꽃, 애기똥풀, 배추꽃, 민들레, 튤립 등 노란 꽃만 보였다. 유채 꽃 속을 뒹굴어서 노란 물을 들일 수 있다면 날개가 망가지더라도 뒹굴고 싶었다. 생각은 집착으로 길어졌다. ‘나비는 0.1그람의 꿀을 위해 1킬로미터를 날아야 한다. 더 쉬운 길이 없을까? 도심지로 나가서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만 주어도 꽃 100개보다 많은 양의 꿀을 얻겠지. 도심지로 나가자.’

청백나비는 추락의 아픔과 집착이 결합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

금빛 나비가 나타났다.

「청백아, 힘이 센 나비가 되려고 태양으로 가려고 했구나? 나비가 먹어서는 안 될 아이스크림까지 집착하는구나. 집착은 몸까지 불구(不具)로 만든다. 나비는 꽃과 함께 할 때 자유롭다. 나비가 태양을 볼 수도 없고 만약, 본다면 겹눈이 타버린단다.」

“금빛 나비님, 분명 태양을 보았는데 ····.”

「집착을 끊어라. 가진 것마저 버릴 때 자유롭다. 현재 너의 좁은 겹눈으로는 태양을 보지 못한다. 네가 꽃구름에서 감상한, 말벌의 눈동자처럼 둥글고, 거미의 입 속처럼 붉은 태양은 태양이 아니라 달이었단다. 태양을 느끼고 보려면 더 수련을 쌓아야 한단다. 너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비행이다.」

“그래도, 태양을 ....”

청백나비가 말끝을 흐리는 순간에, 금빛 나비는 홀연히 사라졌다. 청백나비는 일단 비행으로 흰 꽃을 찾아 몸을 감추고, 부실해진 날개의 힘을 회복하고, 점차 초월적 힘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비행에 나섰다.

찾으면 보인다더니

청백나비는 흰 꽃망울을 터뜨린 국화꽃 농장을 보았다. 농장 안은 꽃망울에서 터져 나온 향기, 흰 천을 펼친 듯 백색의 물결, 꽃마다 꿀을 품고 있어 1cc도 안 되는 청백의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국화꽃은 향기 묻은 꿀을 주었고 편하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국화꽃들이 청백나비를 <꽃은 돌보지 않고 자기만 아는 욕심쟁이>라고 싫어했지만, 국화꽃의 언어를 듣지 못했다. 국화꽃들은 청백나비가 얄미워서 향기 대신에 벌레의 접근을 막는 독소를 뿜었다. 청백나비는 기력을 잃었고 숲속의 꽃들이 그리워 농장 탈출을 결심하고 출구를 찾다가 스프링쿨러가 뿜어대는 물바람에 날개가 젖어 버렸다.

물기에 농약이 있는지 냄새가 독하고 어지러웠다. 날개는 처치고 기력이 빠졌다. 축 처진 날개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털어내기 위해 날개 근육을 움직였으나 날개는 펴지지 않았다.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 금빛 나비가 나타났다. 금빛나비는 청백나비를 항상 주시하는 장치라도 있는 듯 위기 때마다 나타났다.









「 쉽게 꿀을 얻으려다가 자초한 위기다. 물 폭탄을 맞은 숲은 꽃을 줄이고, 나비의 숫자마저 줄이려고 할 것이다. 이번 위기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힘이 뭐죠?”
청백나비가 겹눈을 번쩍 뜨면서 묻자, 금빛 나비가 말했다.

「신이다. 너의 날개는 꿀로 움직일 수 있지만, 너의 영혼은 신이 움직인다. 먼지 하나도 신의 뜻으로 일어나고 사라진다.」
“악당 말벌이 사는 것도 신의 의지인가요? 신은 없어요. 자연을 신으로 착각하신 거예요.”
「보이는 것도 믿지 않는 너에게 보이지 않는 신을 말한다는 것은 어렵다.
신은 아니 계신 곳이 없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는다. 신은 있으면서 없고, 없으면서 있다.
신은 느낌의 존재다.」

“저도 신을 느낄 수 있나요?”
「나비의 신은 꽃 속에 있다. 꽃들의 사랑을 도우면 네가 필요한 것을 얻을 것이다.」
“그럼, 보이는 꽃을 신으로 삼겠어요.”

청백나비의 날개는 금빛나비와 대화하는 사이에 말랐고

청백나비는 다시 날 수 있는 나비가 되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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