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서는 자아를 위하여!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 다시 일어서려는 자아여!
인생은 내가 구상하고 연출하는 개인 공연이 아니더냐?
운명이 속인다고 억울해하지도, 불행의 늪에 빠졌다고 울지도 마라.
불안으로 질식한 나의 황제를 깨워 내 제국의 황제로 돌아가자.
나의 황제와 함께 나를 응원하고 나의 애씀을 보상하여 다시 일어서자.

껍데기 자아를 죽이고 본디 나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자아여!
인생은 피고 지는 꽃보다 아름다운 실체가 아니겠는가?
기쁨이 있으면 아픔도 있는 법, 예기치 못한 일에 당황하지 마라.
마음과 몸이 아프지 않고 함께 흔쾌하도록 수련을 하자.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라면 큰일을 맡기기 위한 시련이라고 위로하자.

불운과 불행을 이기고 다시 일어서려는 자아여!
넘어뜨리는 것은 다시 일어서게 하려는 하늘의 의도가 아니겠느냐?
불행의 상처를 긁지 말고,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말하지 마라.
실패는 있을 수 있어도 실패에 질 수 없다고 다짐하고 스스로 용기를 내자.
감내할 수 없는 절망이 오더라도 희망의 다리를 놓고 새로운 날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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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산악인은 최악의 생활을 하는데도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최고로 높다는 기사를 읽었고, 크게 성공한 사람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주변에 행복한 사람이 많을수록 상대적인 불행을 느낀다는 외국의 논문을 접하면서 인생은 성공보다 행복에 대한 자기 이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수시로 노출되는 불행은 행복의 방해물이 아니라 행복을 제조하는 에너지라는 사실,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여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우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결합체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고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인간은 몸이라는 하드웨어와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영장(靈長)이다. 몸이 물질 에너지를 흡수하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스템이라면, 마음은 두뇌의 화학작용으로 생겨난 생각들의 누적이자 파동에너지를 지닌 입자다. 짱돌과 칼만이 상해를 입히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도 서로 엇물려 돌면서 자신과 남에게 상처를 준다.

여러 신경과 기관이 모여서 만든 인체 공화국은 두뇌라는 대통령이 이성적인 통수권을 행사하고, 자율신경이라는 각료(공무원)들이 두뇌의 지령을 받아서 200여개의 뼈와 600개의 신경조직을 통제하고, 면역체계라는 안보(치안) 집단이 몸으로 침투하는 균을 차단하고, 비자율신경이라는 정치와 경제 집단이 심장근육을 비롯한 순환기계통과 호흡 기관, 호르몬 분배 등을 자동 통제하고, 인체 공화국의 지방 단체장인 60여개의 호르몬은 욕망을 자극하고 신체의 신진대사를 자발적으로 처리하고, 공화국의 백성인 50조의 세포는 생로병사의 순환을 따라 나고 죽는다.

생각들이 모여서 이룬 마음 공화국은 영혼이라는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 욕망까지 다스리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각료들이 행복을 위해 생존과 안전, 자랑과 즐거움, 보람과 명예를 선택해서 시행하고, 안정과 평화라는 안보세력이 분노와 미움의 저항(적대) 세력을 통제하고, 영성과 감성이라는 종교(문화) 집단이 영혼을 보좌하고, 감각과 욕망이라는 정치(경제) 집단이 쾌감을 키우고, 행동이라는 국민은 자기 생각에 따라 크고 작은(선과 악을) 행동을 한다. 마음 공화국의 어른인 영혼이 큰 뜻을 펴고 만족하면 행복하지만, 영혼이 좌절하면 욕망이 날뛰면서 분노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녹은 쇠를 잡아먹듯, 내가 만든 생각이 나를 잡아먹기도 한다. 악조건 속에서 일어서게 하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다 생각이다. 옳은 생각과 그른 생각, 허상과 진상, 둥근 생각과 모난 생각 등 스스로 생각을 만들고 생각을 따라 행동을 한다.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을 만들고, 성급한 생각은 졸렬한 행동을 한다. 칭찬을 들으면 우쭐해 하고, 잔소리를 들으면 바로 거북해 한다. 생각으로 힘과 기쁨을 얻기도 하지만 생각 때문에 고민하고 고통도 겪는다.

쇠의 녹을 방지하기 위해 기름칠을 하듯, 흔들리기 쉬운 생각을 바로 잡고 세척하려면, 너는 아파도 잘 참고 있다. 힘을 내라고 자기 위로를 해야 한다. 서로 바쁜 사람끼리 위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무의식에 갇힌 아픔을 내가 위로하고 치유(治癒)하지 않으면 불안과 불행은 반복된다. 사전(辭典)은 불행(不幸)을 ‘완전(完全)하지 못한 상태’로 간단하게 정의하지만, 피부로 느끼는 불행은 괴롭고, 불쾌하고, 멍하게 만들고, 식은땀이 흐르고, 목살을 저리게 하고, 삶의 의미마저 앗아간다. 갔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인간은 새로 태어나기 위해 자신의 고정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장을 읽고 큰 위로를 받았다.

아픈 인생을 내가 위로하고 응원하라.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불완전한 인간은 부족과 결핍감, 부실과 아쉬움 때문에 몸과 마음이 아프고, 아프다는 사실을 남이 몰라주면 서럽고, 상대가 나 때문에 아파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고, 이렇게 아프게 인생을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허무를 느낀다. 아픔이 아픔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으려면 아플 수밖에 없는 현실을 위로하고, 인생은 아프기에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고 응원하고, 치유되지 못할 불행이라면 불러들여 운명의 가슴속에 머물게 해야 한다.
불행을 슬며시 찾아오는 인생의 감기라고 위로하자. 불안과 패배의식의 괴물에 잡히면 심신이 생기를 잃고 늘어진다. 불행에 떨다가 가기엔 너무도 짧은 인생인데, 기준도 없는 불행에 속고 불행을 두려워하면서 아까운 시절을 허비할 수 없다. 인생은 불행을 요리하는 과정이며, 아플수록 행복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작은 불행에 호들갑을 떨지 말고, 피할 수 없는 불행과 아픔을 동반하는 불행이라면 불행은 행복의 약이라고 노래하자.

사람으로 사는 것이 기적이라고 자기를 위로하자. 비극적인 삶으로 마무리되는 오페라의 주인공을 보면서 인생무대는 누구나 아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어떤 형태의 아픔과 불행이 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오래된 친구와 대화하듯 자신을 위로하고, 불행은 나의 본성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나를 달래자. 아직도 나에겐 고통으로 마비된 손가락보다 행복의 감각을 느끼는 손가락이 남아 있음을 알고, 불행이 악수를 청해오면 행복의 손을 내밀자. 탈도 많고 다툼으로 쓰러지기 쉬운 삶이지만, 인간으로 사는 자체를 기적으로 여기고 새로 일어서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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