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머리속 기억장치는 고장인가?

입력 2012-02-03 13:51 수정 2012-02-03 13:51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때 상대의 전화번호를 직접 누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처음 거는 번호가 아닌 다음에야 대개 아는 사람들은 단축번호를 누르거나, 저장된 전화번호부에서 검색해서 전화를 건다. 상대의 전화번호를 외워둘 일도 없고, 외워서 써먹을 일도 사실상 없어졌다. 덕분에 우리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한손에 셀 정도에 불과한 경우다 대부분이다. 전화번호 기억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요즘 노래 한곡도 제대로 기억하는게 없다. 그냥 요즘 노래는 인상적인 한구절만 겨우 기억할 뿐이다. 사실 내가 의도한 기억이라기보다 반복되고 자극적인 메시지나 리듬이 그냥 귀에 박힌것이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운전자가 길을 찾는게 아니라 네비게이션이 찾아주는 길을 따라서 가는 것이기에 몇번 갔던 길도 네비게이션에 의존해서 갔던 경우라면 혼자선 길을 제대로 못찾는 경우가 허다하다. 길치라서 그런게 아니라 운전과정에서 우리가 그 길의 지형을 인식하며 갔던게 아니라서 그렇다. 심지어 경력이 짧은 운전기사들은 네비게이션 의존도가 더 높아서 네비게이션에서 제대로 찾지못하는 곳으론 운전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설마 그럴까 하겠지만, 직접 겪어본 일이기도 하다. 뭔가 잘 기억하는 능력, 길 잘찾는 능력은 디지털기기들 덕분에 더이상 꼭 필요한 능력이 아니게 되었다.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기억력을 활용할 일이 줄어들고 이것이 기억능력의 감퇴로 이어지거나 디지털기기가 고장나거나 잃어버렸을땐 내 기억마저도 지워지거나 잃어버린 상태에 빠진다는 이른바 디지털치매 는 어제오늘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전국민이 손에 손마다 휴대폰을 갖고 다니고, 모두가 굳이 기억해둘 필요없이 모르는건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실시간 찾아보기 시작한 이래로 디지털치매는 많은 이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만나면서 디지털치매는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과거의 휴대폰에 비할바 없이 뭐든 가능해진 초강력 미디어인 스마트폰이 우릴 더 기기에 의존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우리는 머리를 제대로 쓸 기회도 없을 정도로 스마트폰이 우리 머리가 할 일 상당수를 실시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디지털치매는 더욱더 심각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원래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어지듯 말이다. 치매는 뇌세포가 죽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는 그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기억력 감퇴인건 비슷하지만 이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디지털치매라는 말에서 '치매'라는 표현이 넌센스라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니 이 말이 마음에 좀 걸린다는 디지털치매 대신 스마트 의존증에 의한 기억력감퇴 정도로 하는게 낫다.

십여년전 영국에서 런던 택시기사들의 뇌를 MRI로 찍어본 연구가 있었다. 기억과 관련해서 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해마인데, 해마는 기억을 많이 할수록 발달한다. 복잡한 런던시내를 운전하는 택시기사들은 놀랍게도 일반인에 비해 해마의 크기가 더 큰 것으로 연구에선 나타났다. 더 많이 암기능력을 쓸수록 해마는 발달한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반대로 보면 기억능력을 덜 사용할 수록 해마는 줄어든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반인의 해마에 비해 알츠하이머 환자의 해마는 더 작다. 결국 해마의 크기가 기억력의 정도를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디지털기기에 대한 의존 때문에 기억력이 쇠퇴하는 것을 디지털치매라고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치매환자가 기억력이 감퇴되고 해마가 줄어들듯 디지털치매도 그러하니 말이다. 물론 디지털치매는 기존 치매와 가장 크게 다른게 기억해야할 것을 기억 못하는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우리의 기억력이 나빠져서 기억을 못하는것보단 기억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서 선택과 집중에서 제외된 것 뿐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기기, 검색기능 등이 뇌가 하던 일 중 일부를 대신 해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고, 우린 그런 기술문화이자 보조도구를 적극 활용하는 것 뿐이다.

수학에서도 각종 계산을 머리가 아닌 전자계산기의 힘을 빌리는게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 5월 고교 수학시험에 전자계산기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논의했다. 결국 계산기 구입비용을 누가 댈건지, 어떤 사양의 제품을 살건지에 대한 문제 때문에 유보되었지만 전자계산기를 사용하는 것에는 합의를 본 셈이다. 사칙연산을 이해하면되지 굳이 세네자릿수 곱셈을 기능적으로 하는건 의미없다는 걸 공감한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먼저 논의되고 협의되었던 사안이다. 미국은 1990년대 중반에 이런 논의 덕분에 현재 수업수업과 SAT(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자계산기를 쓸 수 있다. 모든걸 우리 머리가 다 해야한다는 것은 이제 구시대적 사고가 되어버린 듯하다. 머리의 여러 기능 중 단순한 기억이나 연산 등은 기계에 맡기고, 우린 좀더 창조적인데 투자하자는 생각은 더더욱 확산된다.
이른바 머리에서의 선택과 집중인 셈이고, 머리사용의 2.0 시대를 맞은 셈이다. IT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칼럼니스트 클리브 톰슨은 인터넷을 ‘외장 뇌(outboard brain)’라고 비유한바 있다. 외장하드와 같은 맥락인 셈인데, 기존의 뇌에 하나더 추가되어 활용가능한 뇌로서 정보 저장이나 인터넷을 통한 검색이 가능한 뇌라는 의미다. 이런 환경에선 정보저장이자 기억은 기계에 맡기고, 우린 그걸 찾아내는 능력만 갖추면 된다. 굳이 뇌에 다 집어넣지 않아도 그걸 대신 해주는 도구가 있다는건 우리에겐 분명 장점은 된다.

우리가 스마트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면서 기존에 쓰던 기억력 중심의 머리를 덜 쓰는 대신, 그 잉여를 창조적인 사고에 더 써야 한다. 이것도 선택과 집중이다. 좀더 머리의 고급스런 기능에 충실하잔 얘기다. 기억력은 스마트기술이 어느 정도 보조해주니, 이젠 진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머리를 쓰잔 얘기다. 이제 우리의 뇌가 집중해야 할 것은 기억력이 아니다. 결국 창조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 커질 것이고, 관련 콘텐츠와 교육, 비즈니스 기회는 더 왕성하게 쏟아질 것이다. 기억력 퇴보라는 위기가 아닌 창조적 사고에의 집중이라는 기회로 전화위복 시키는게 필요하다. 필요를 넘어 이미 사람들이 그것을 강렬히 원하고 있다. 기억할 필요를 못느껴서 기억력이 감퇴한 것이지 머리가 나빠진게 아닌 것이고, 머리는 더 많은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효율성을 높이는 셈이다. 지식을 암기하는 시대는 가고 창의적인 일에 머리를 쓰는 시대가 왔다.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www.digitalcreator.co.kr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에서 연구와 저술, 컨설팅, 강연/워크샵 등 지식정보 기반형 비즈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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