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예언(2007년)- 지도자 나비의 언어

입력 2011-09-23 09:00 수정 2011-09-23 09:00










태양이 없는 대낮,

구름들은 하늘을 분주하게 만들었고, 숲속의 곤충들은 밥벌이를 위해 기고, 뛰고, 날았지만 미리 정해진 행운은 없었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은 숲속 공간에 흔적 없는 동선을 남겼다. 나비들은 날개 짓 만큼 이동했고, 겹눈이 볼 수 있는 거리만큼의 꽃을 찾았다. 노백 나비는 꽃가지에 앉아서 명상에 잠겼다.
‘나비들은 꽃의 향기를 쫓아 움직이는데, 그동안 대결의 언어로 움직이려고 했다. 많은 나비들이 힘들어 했다. 힘의 세력은 실용의 더듬이로 공격할 것이다. 지도자 자리를 떠나면 후환이 두렵다.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 나비 정보의 집을 만들어 보호 장치를 만들자.’



노백 나비는 자신의 기존 이상과 주장을 수정했다. 말벌에 대한 나쁜 감정을 감추었고 기존 발언과 반대되는 연설을 했다. 떠나야할 지도자의 언어는 조심스럽고 비장했다.
“그동안 어둠을 쫓아내려다 빛나던 것들의 희생도 있었다. 발전을 위한 선택으로 보자. 지나간 일들은 한 조각구름 아니겠느냐? 나비의 위상을 찾기 위해 말벌과의 무리한 싸움도 했지만 성과도 있었다. 이제 나비의 생존을 위해 말벌과 자유 거래를 해야 한다. 변할 수밖에 없는 전략을 모르면 미워하지 마라. 사실 뒤에는 정당한 사연과 진실이 있다.”





말벌과 자유거래를 하자는 노백의 연설에 노백을 따르던 노랑나비들이 비난했다.
“노백, 당신의 정체가 뭐냐? 악마로 규정했던 말벌과 자유거래를 하자고? 뭐가 원칙이고 정의인가? 나비들이 희생당하더라도 말벌과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 당신의 기백 아니었던가?”



실망과 살기가 도는 노랑나비들의 말을 이어 노백 나비가 답했다.
“나비의 잠재력이 힘의 말벌을 이겼다. 말벌은 나비도 건드리면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말벌은 나비를 가볍게 보지 않고 함께 살려고 할 것이다. 이는 나의 빛나는 업적이다. 이제 말벌과 더 싸우지 않고 대등한 위치에서 서로가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노백, 싸우다 멈추면 우스운 꼴이 된다.”



노랑나비들의 흥분은 누그러졌다. 노백 나비가 답했다.
“지도자는 큰 것을 위해 때로는 작은 것을 버린다. 나비에겐 독침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이제 나비들의 안전한 자유를 위해 말벌과 공존해야 한다. 지도자가 말을 바꾸는 것은 불행하지만, 더 큰 불행을 줄이기 위해서 싸움을 멈추자.”
“갑자기 변하면 흙으로 돌아갈 징조다. 나비를 위해 강한 놈과 싸웠던 원래 모습을 지켜라.”

“상상과 이상만으로 실존 상황을 이길 수 없다.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전략을 짜는 것은 지도자의 책무이며 약자가 사는 길이다.”
“노, 또. 궤변이다.”



노백 나비는 싸움을 끝내고 새로운 발전을 모색했으나, 한쪽으로 치우친 노랑나비들은 노백의 생존 전략을 이해하지 못했다. 노백을 따르던 노랑나비들마저 노백을 비판하자, 노백은 산만해졌다. 무작정 날고, 나비들의 소식 길을 차단하고, 꽃이 보여도 지나치기 일쑤, 꽃에 앉더라도 빠는 둥 마는 둥, 허리 가는 꽃에 체중을 실어 꽃이 휘어지게 하고, 해 떨어진 밤에도 쉬지 않고 날았다. 날개는 날지만 마음은 어딘가에 붙들려 마냥 불안해했다.



지도자 나비를 뽑는 날이 다가올수록 지도자를 꿈꾸는 나비들의 언어는 현란했다. 노백 나비의 후계자로 뽑힌 정도 나비는 수려한 모습에, 나비들의 행복을 화두로 내걸고, 나비 세상을 탈바꿈 시키겠다는 열정이 넘쳤다. 그는 지도자 나비에게 호소했다.
“지도자님 덕분에 약자들의 위상이 진일보했다. 말벌과의 싸움은 나비들의 위상을 찾은 성공적 게임이었고,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한 최초의 사건, 나비들도 뭉치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동안 흰나비들을 실망시킨 일들은 지도자님이 먼저 시인하여 저의 지도자 꿈을 꺾지 마세요. 제가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정도 나비를 중심으로 다시 뭉쳐야 한다고 호소하세요. 지도자님이 물러선 뒤의 신변은 제가 보호하겠소.”

노백 나비는 자신을 편들면서도 공격하는 정도 나비를 바라보며 말을 줄였다.
“나를 밟고 날아가라.”



지도자의 꿈에 부푼 정도 나비는 전파성이 강한 페르몬 언어를 발사했다.
“노랑나비 형제여! 세상 탈바꿈을 시도했던 노백 나비의 이상은 방해와 갈등 속에 더디게 지나갔지만, 약자도 뭉치면 산다는 미완의 성공을 남겼다. 이제 노랑나비의 정신을 계승하고, 노랑나비의 단결로 탐욕에 찌든 흰나비들의 복귀를 막자. 어리고 약한 나비들도 편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나비 세상을 만들자.”



정도 나비의 연설은 전염성이 강했지만, 노백 나비의 좌절에 실망한 흰나비들은 정도 나비를 싫어했다. 반면 흰나비들의 대표가 된 명백 나비는 나비세상의 풍요함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그의 언어는 노백 나비와 반대 편에 있었고, 신을 믿는 나비들의 지지를 얻었다. 나비 세상을 구할 구세주처럼 보였다. 노랑나비들은 명백 나비를 ‘박탈감을 주는 얄미운 귀족 나비’라고 비판했지만, 그의 주장은 흰나비들의 꿈의 언어로 퍼져나갔다.



“힘의 억제로 평등 세상을 꿈꾸던 어설픈 실험은 끝났다. 이제 꽃은 향기로 말하고, 나비는 날개로 행동한다. 풍요로운 나비 세상을 위해 말벌과의 싸움을 끝내고, 자유로운 것은 더 자유롭게 하고, 강한 것은 더 강하게 하고, 이로운 것은 더 이롭게 하자. 자유와 풍요를 위해 나를 지지해주라. 신은 흩어진 나비들이 나를 중심으로 모이게 하고, 나비에게 고통을 주었던 벌들을 전자파로 심판하고, 핵 가루에 의존하려는 흰불나방을 응징할 것이다.” 명백 나비의 언어는 매끄럽지 못했지만 실용의 인기 언어가 나비에게 먹혔다.



독거미들이 말벌 집을 파괴할 징후를 보이자, 말벌들은 즉각 독거미 사냥에 나섰다. 진노(震怒)의 사냥은 실패와 약점 없이 침으로 거미를 마비시키고, 날카로운 턱으로 독거미를 찢고 분해했다. 말벌의 분노에 맞서는 악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말벌의 독거미 사냥을 지켜본 흰불나방들은 독을 몸에만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생존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독을 멀리 살포할 수 있어야 누구도 건드리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독소를 압축하고 퍼뜨리는 독 가루 핵실험을 했다. 흰불나방의 독 실험은 부시 말벌로 하여금 연설하게 했다.
“꽃밭의 곤충들아! 흰불나방의 독 실험을 방치하면 함께 죽는다. 흰불나방이 독 실험을 중지할 때까지 흰불나방과 어울리지 마라. 곤충들의 미래를 위해 협조하라.”



부시 말벌은 불개미들의 지도자 불개미 1호를 찾아가 제안을 했다. 




“1호, 흰불나방이 독을 지니면 불개미도 위험하다. 흰불나방들을 없애고 고원을 차지해라.”
“흰불나방과 불개미는 형제다. 고원을 얻고자 흰불나방을 버리는 것은 의리 없는 짓이다."
"불개미들은 전천후 전사다. 마음만 먹으면 흰불나방 제거는 일도 아니잖아 ….”

부시 말벌이 말끝을 흐리자. 불개미 1호의 답변은 명쾌했다.
“불개미들의 의리를 시험하지마라. 의리를 깨려는 당신은 추하다. 사라져라.”



날은 어두워졌고, 지도자를 뽑는 날은 다가왔다. 노백 나비는 독가루 실험으로 곤충들로부터 왕따 당하고 살아가는 흰불나방의 서식지인 고원을 찾아가 평화를 제안하려고 나서는데,
오색 나비가 나타났다.



                                                                   “나비의 적인 흰불나방 편들기로 나비 세상은 편이 갈라졌고, 혼란에 빠졌다. 그동안 나비에게 고통을 주면서 강하게 한 것으로 당신의 임무는 끝났다.”



“오색, 나비와 흰불나방은 동족이다. 동족의 문제는 동족만이 해결할 수 있다. 동족의 문제를 눈앞의 이익 잣대로 접근하면 영원한 미결 과제다. 나비와 흰불나방의 화해 없이는 참나무 숲에 평화는 없다. 흰불나방과의 긴장 관계는 지금 아니면 풀 수 없다. 멀리 보자.”


“노, 당신의 실패를 흰불나방으로 덮으려 하지 마. 그동안의 혼란은 준비 없이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처음에는 지도자 자체가 버거워 말이 많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시로 말을 바꾸었다. 말벌을 싫어하면서 말벌을 칭찬하고… 많은 나비들은 당신 때문에 고통스러워했다. 나비가 물속을 날 수 없듯이, 독을 품은 흰불나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비들의 적이다.”
“허황된 공포다. 날조다. 흰불나방을 악으로 보는 나비들은 숲을 떠나라.”



숲속의 나비들은 노랑나비들이 보여준 열정속의 혼란 반복이 두려워서 정도나비를 외면하고, 명백 나비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추천은 제가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용기를 줍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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