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숲은 개 짖는 소리에 깨어났다. 아침 태양은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어 햇살을 펴지 못했다. 청백나비는 숲속을 날다가 경사진 풀밭에 날개를 접고 모여 있는 나비 무리를 보았다. 그들은 지도자, 노백 나비의 연설 소리를 듣는 중이었다.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면서 약한 나비들에게도 평등한 기회가 왔다. 배고픈 나비와 흰불나방도 동족으로 인식하는 나비들아, 우리가 뭉쳐서 악마의 말벌을 이기자. 그리하여 나비가 주인 되는 평등한 나비 세상을 만들고, 정의가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하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내 것인 것을 내 것으로 찾겠다는 용기다.”

지도자 노백 나비의 연설은 어린 나비들을 매료시켰다. 노랑나비들은 노백 나비를 ‘약한 나비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지의 나비’라고 불렀고, 흰 나비들은 ‘하나를 위해 두 개를 잃은 지도자 나비’라고 불렀다. 나비의 자유를 연구하는 오색나비는 빨대를 길게 뻗으며 거친 소리를 냈다.

“추상적인 평등과 말벌에 대한 분노는 나비를 더 약자로 만든다. 나비에겐 생존도 축복이다. 나비 역사를 보면 나비들을 못살게 괴롭힌 것은 말벌이 아니라, 중국 불개미들이었다. 말벌은 거만하지만 나비들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급진적 변화가 아니라 점진적 수용이다.”

오색나비의 말은 작았지만 가지런했다. 오색나비가 어디론가 날아가고 날개가 짝짝이인 흰줄나비가 말을 이었다.                    

                           


                                                                        “누구의 탓이 아니다. 나비 자신에게 있다. 현재 나비들은 아름다운 날개에 어울리지 않는 추한 짓들을 하고 있다. 꽃을 찾는 사명에는 방어적이며, 달콤함을 얻기 위한 욕망의 날개 짓은 공격적이다. 꿀을 얻기 위해 쓰레기장을 뒤지며, 남의 짝을 뺏고, 쉽게 살려고 한다. 이제 암수 교대로 알을 낳아 평등한 세상을 이루자. 봄에는 암나비가 알을 낳고, 가을에는 수나비가 알을 낳게 하자.”

짝짝이 흰줄나비의 말은 톤과 높낮이가 울퉁불퉁 했다. 청백나비는 노백, 오색, 흰줄나비의 연설을 차례로 듣다가, 겹눈으로 태양광선이 빨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온 몸에 전율과 함께 기운이 넘쳤고, 겹눈이 빛나면서 용기가 생겼다.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낀 청백나비는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가 즉흥 연설을 했다.

“저는 청백나비입니다. 태어나면서 한쪽 날개를 다쳐 한 동안 날지 못했습니다. 구름 꽃을 쫓다가 추락도 했고, 철쭉꽃에 붙들려서 고생도 하면서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한 나비입니다. 지금의 혼란은 저마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싸움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나비들의 생존과 번창을 위해 꽃들의 사랑을 돕고, 함께 사는 나비 세상을 위해 서로 돕고, 나비들의 문제는 꿈과 의지로 개선해 가야 합니다.”

청백나비의 연설이 끝나자, 모여든 나비들은 열광했고, 어떤 나비들은 위기를 구한 ‘잔다르크’ 같은 나비라고 칭송했고, 어린 나비의 돌발적 행동이라고 비난도 있었다. 청백나비는 자신이 즉흥 연설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일부 나비들의 싸움 기운을 느꼈다. 청백나비는 싸움 기운을 피해 자리를 뜨려고 하는 순간, 지도자 노백 나비가 찾아왔다.





“너의 연설은 기운과 철학이 있다. 너와 함께 갈등에 빠진 나비 세상을
싸움 없고 아름다운 하늘 세상처럼 만들고 싶다.”

청백나비는 지도자 나비의 제안에 답변을 찾느라 겹눈이 떨렸다. 말을 이었다.

“지도자님, 저는 아직 나비 세상을 몰라요. 다만 구름 꽃에 속아서 하늘 높이 날아본 적은 있는데, 하늘은 아무것도 없었고, 추락의 아픔만 주었습니다.”

“하늘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군요. 내가 말하는 하늘은 새로운 이상 세계를 말한단다. 힘의 횡포가 없고, 나비와 벌이 서로 어울려 꽃들을 돌보고, 짝짓고, 즐기며 사는 행복한 나비 세상을 만들고 싶단다.”

“나비는 즐기며 사는 악마가 아니잖아요? 나비는 꽃들을 돕고, 꿀을 얻고, 짝짓기로 대를 잇는 존재일 뿐인데 무슨 추상적인 행복을 이야기하나요? 존재하지도 않는 행복에 속고 싶지 않습니다.”

청백나비의 단호한 말에, 노백 나비는 더듬이를 떨면서 말했다.

“말의 부분을 잘라서 공격을 하는구나! 즐기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근심 없이 자유롭게 날겠다는 자기 선언이란다. 난, 고통을 즐겼기 때문에 지금의 지도자로 성장했단다. 행복이 어떤 기운인지를 느끼기 위해 하늘 비행을 하자.”

“즐긴다는 언어도 해석이 다르군요. 지도자님의 행복한 하늘 세상을 보여주세요.”

청백나비가 동행을 허락하자, 노백 나비는 신이 나서 말했다.

“하늘로 오를 때는 머리를 45도로 세우고, 꽁지 부분을 안으로 접어라.
여기서부터 서북 방향 123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꽃동산 하늘로 안내하겠다. 바짝 붙어라.”

청백나비는 하늘 공간을 날면서 숲을 내려다보았다. 크고 작은 나무들과 야생화, 벌과 나비, 풍뎅이, 딱따구리, 오솔길이 보였다. 숲 속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임을 받아주는 것으로 구분되었다. 높이 오를수록 참나무 숲은 녹색의 조각 보자기처럼 보였고 골짜기의 물줄기는 청색의 실선으로, 구불구불한 산길은 황색의 실선으로 보였다.

청백나비는 하늘로 부상할 때는 숨이 찼지만, 고도를 유지하자 비행이 편했고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꽁지 부분이 -싸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행복이라고 하는구나! 청백나비는 속으로 하늘 비행도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노백 나비에게 압도당할 것이 두려워서 속마음과 반대되는 말을 했다.

“하늘로 오를수록 어지럽고 고통스럽네요. 지상 100미터 이상의 공간은 새들의 공간이지,
나비들이 갈 곳이 아니 것 같아요. 나비는 꽃이 있는 지상에서 낮게 날아야 해요.”

“네 겹눈이 불안한 것을 보니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고 있구나?”

“남의 마음을 제멋대로 읽는 것은 영혼 테러입니다.”

“하여튼 표현은 달라도 느낌은 같을 것이다. 일단 나비의 미래를 위해
연합하자. 그러면 다음번 나비 지도자가 되도록 도와주마.”

“전, 지도자 관심 없어요, 저는 당신의 적도 동지도 될 수 없어요.
사랑의 비행술을 개발하여 모든 나비들의 희망이 되고 싶습니다.”

청백나비는 지도자 나비의 제안을 무시하고 참나무 숲으로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멀고 힘들었다. 지도자의 제안을 거절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지도자에 대한 미련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비 지도자를 뽑는 계절이 되자, 노랑나비와 흰나비들이 무리지어 싸움을 했다. 싸움에는 순서도 질서도 없었고 주장과 유언비어가 오고갔다. 나비 지도자를 꿈꾸는 명백 나비가 지도자 나비를 찾아왔다.

“당신은 권위를 버리고 약자들에게 꿈을 준 지도자였지요. 그러나 새로운 나비 세상을 만든다며 편을 가르고, 말벌과 싸움을 했어. 이제, 나비의 자유도, 꽃도 줄어들었어요. 당신은 눈물로 지도자가 되더니, 나비들에게 눈물을 주었어요. 의도는 좋았지만 고통을 준 지도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함께 사는 나비 세상을 만들고 싶었는데, 흰 나비들이 너무 흔들었어.”

“변명은 추하고 짜증을 유발하는 테러다. 당신이 지도자가 된 뒤로 나비들은 배고파서 우아함을 잃었고, 잘 지내던 말벌과 싸우면서 생존마저 위태롭게 되었어. 온통 혼란이다.”

“언젠가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나의 아름다운 의도를 알 것이다.”
“시작은 다 아름다운 흥분이지.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름다워야 해. 그러나 당신은 좌우를 동시에 보는 균형 감각을 잃고 당신에게 희망을 걸었던 나비들에게 고통으로 보답했어.”

“강자의 양보를 통해 약한 나비에게 기회를 주려고 했고, 말벌과 싸운 것은 나비들의 위상을 찾으려는 절박한 운명이었다.”

“ 당신의 기회는 실망으로 끝났다. 나비들은 이제 강한 열정으로 풍요로운 꽃을 안내하고, 진정한 희망을 줄 지도자를 찾고 있다. 당신의 마지막 임무는 하늘의 뜻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공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감이 묻어 있는 명백 나비의 말에 노백 나비는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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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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