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비예언(2005년) - 나비와 말벌의 싸움 (지혜)


어둠과 여명이 함께 섞인 새벽,

새벽 공기는 시원했지만 무거웠고, 산 위로 해무리는 붉게 퍼졌지만
아침 해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비 지도자, 노백 나비가 비행을 하자 나비들이 수군거렸다.

“햇살이 피기 전에 날지 않는 것은 나비들의 전통인데,
지도자 나비가 나비들의 규칙을 깼다.”

노백 나비는 나비들의 쑤군거림을 무시하고 유유히 날다가 보랏빛과 흰색이 배합된
나팔꽃을 발견하고 앉으려 하자, 나팔꽃이 거북스럽게 말 했다.

“나비야, 꽃의 동의를 얻지 않고 그냥 앉지 마. 네가 나의 꿀을 가져가면 나는 꽃도
피우지 못하고 바로 시들게 돼. 차라리 항상 뜨겁게 피는 해님 꽃에게 가 봐.”
“꽃들은 다 나비 지도자를 반기는 줄 알았지 ∙∙∙.”
나팔꽃의 거절에 노백 나비는 당황하여 말을 흐렸다.

나비가 말을 흐리자 꽃이 이어서 말했다.
“나비야, 꽃들은 지도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나비들이 꽃을 다 같은 꽃으로 이해하듯, 꽃도 나비들을 다 같은 나비로 느낀단다. 다만, 꽃들은 꽃잎의 흔들림 하나도 유심히 살펴보고, 꽃들의 사랑부터 돕고 꿀을 얻는 나비를 좋아한단다. 앞으로 꽃에 앉기 전에 먼저 꽃이 되어 있어야 사랑받는다. 꽃은 꽃을 사랑하는 나비를 좋아하거든∙∙∙.”
“그래?”

노백 나비는 삐딱한 기운을 나팔꽃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몸을 돌려서 대답하고는 꽃을 향해 날았다. 나비는 꽃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마음이 쓰렸다. 속도를 줄이고 날면서 생각했다.

‘나팔꽃은 나를 거절한 것이 아니다.
나를 활용하여 씨앗을 만들 기회를 거절한 것이다.’

노백 나비는 자신을 위로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비행 고도를 낮추고 향기 나는 방향으로 날아가니 아카시아 꽃이 있었다. 아카시아는 큰 키에 하얀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하얀 꽃송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흰나비 떼가 나불나불 춤추듯 했다. 나비를 닮은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고 작은 꽃방마다 꿀이 넘쳐 청백나비는 처음으로 실컷 배를 채웠다. 그러나 기쁨 뒤에 슬픔이 바로 따라 왔다. 말벌이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아카시아 꽃밭은 벌들의 구역이다. 나비는 오지마라.”

“나비를 닮은 아카시아 꽃을 나비가 돕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노백 나비의 응답에 말벌은 침을 벌렁거리며 나무랐다.
“향기 진한 꽃은 아직 나비들 차지가 될 수 없다. 어울리지 않는다.”

말벌의 나무람에 노백 나비는 기죽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은 벌처럼 꿀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꽃들의 사랑을 도우려고 하는데, 힘으로 나비의 활동을 막는다면 악마의 짓이다.”

“악마! 헛소리 못하게 널 먹어주마. 나비 맛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잘 됐다.”
“말벌, 당신은 꽃과 나비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다.”
“말벌 덕분에 생존하는 나비가 말벌을 적이라고 하다니,
나비들의 적은 말벌이 아니라 너의 동족인 흰불나방이다.”

말벌이 독(毒)이 올라 소리치는데도 노백 나비는 계속 말했다.
“말벌이 계속 나비의 활동을 방해한다면 태양 빛을 빌려서라도 네 날개를 태우고 싶다.”

노백 나비의 독설에 말벌이 독침을 세우고 날아들었다. 노백 나비는 일단 말벌을 피해 달아났다. 정신없이 도망가다가 바위 밑 공간으로 숨어들었다.

청백나비는 햇살이 바위 속까지 직진하는 장면을 보고서 나비들의 생존전략을 생각했다.

‘햇살이 직진하여 어둠을 쫓아내듯, 부드러운 나비의 강점으로 강한 말벌을 이겨보자. 弱으로 强을 이기는 – 약한 자가 강한 놈을 먹는 – 강육약식의 전략을 세우자. 상대의 강한 부분을 피하고, 상대의 약한 부분을 치는 비대칭(非對稱) 전술로 말벌과 싸우자.’

노백 나비는 오랜 침묵 속에서 전략을 기초로 전투 수행 방법을 정리했다.
그리고 페르몬 언어로 압축하여 전파했다.

전투방법 제1호(말벌의 침을 피하는 방법) : 말벌이 꽁무니를 벌렁거리면서 접근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사선 비행으로 약을 올려라. 그러면 말벌은 흥분하여 공격의 정확성을 잃게 된다. 침을 피할 수 없다면 날개로 침을 받아들여 말벌이 독을 발사하고 스스로 쓰러지게 하라.

전투방법 제2호(날개로 말벌 내려치기) : 말벌이 직선 비행으로 달려들면 날개의 각도를 45도로 유지했다가 180도가 될 때까지 순간적으로 펼쳐라. 그러면 말벌은 균형을 잃고 추락한다.

전투방법 제3호( 우천 비행 ) : 비는 분명 장애물이다. 승리를 위해서 작은 비는 나비 날개의 인분으로 막고, 큰비는 머리를 45도로 세우고 빗속을 뚫고 나가라. 악조건을 이기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비는 장애물이 아니라 말벌을 기습적으로 타격할 기회를 주는 통로다.

노백 나비가 전투 수행 방법을 페르몬으로 전파하자, 말벌을 미워하던 나비들은 환호하면서 자신감을 찾았고 , 말벌과 공생을 꿈꾸던 흰나비들은 노백 나비를 ‘나비들의 보호막을 깨트리는 지도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노백 나비가 말벌과의 싸움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데 오색나비가 날아왔다.

“약자가 강자와 싸우는 것은 자유지만 결과는 혼란입니다.
지금이라도 싸움을 멈추고 에너지를 꽃들에게 쏟으시죠?”
“말벌과 싸우는 것은 나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길이다. 더 이상….”
“지도자님, 말벌은 과거에 흰불나방의 나비 습격을 막아준 고마운 존재입니다. 개별적으로 말벌을 증오할 수 있지만, 나비를 선동하여 말벌과 싸우는 것은
나비의 생존을 위태롭게 합니다.”
“말벌과 싸우려는 것은 증오 때문이 아니다. 나비의 정당한 위상을 찾기 위해서다.”
“말벌과 협조하면서 위상을 찾으시지요.”
“지도자의 생존 전략을 어찌 네가 알 수가 있겠나?”
“말벌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비가 말벌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도
변하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즐기면서, 겉으로 지면서 결과로 이기는 전략을 구상하시죠?”

위엄과 진정성이 있는 오색나비의 조언을 노백 나비는 짧은 말로 가볍게 만들었다.
“어렵다. 결과로 이기는 전략은 시간이 걸린다. 말벌의 횡포를 지금 막지 않으면 나비는 계속 말벌의 먹이가 된다. 나를 말리지 말고 이기는 방법을 같이 찾자.”
“나비는 힘으로 살아온 곤충이 아닙니다.
나비의 유연함으로 힘을 이기는 지혜를 찾으시지요.”
“지혜란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 각성이자 핵심을 골라내는 판단력이다. 말벌에게 힘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도 용기 있는 지혜다.”
“나비가 말벌을 깨우쳐주기엔 힘이 부족합니다.
나비에겐 독침도 뿔도 없습니다.”
“힘이 없다고 계속 죽어지내면 나비들의 미래는 없다. 나비에게 가장 절박한 일은
힘을 이기는 지혜를 찾는 거란다.”

노백 나비는 오색나비의 서로가 좋은 생존 지혜와 실리추구를 이해했지만 자신의 오래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 참을 주장했지만 다수는 그 진정성을 몰랐던 지도자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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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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