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예언 (2004년) - 생존 전략 (자존심)

입력 2011-09-15 03:04 수정 2011-09-15 03:04


2004년. - 생존 전략











구름 덮인 동쪽 하늘은 아침 해를 놓쳤다. 오후가 되어서야 연결이 끊어진 구름 사이로 굵은 햇살이 쏟아져 지상을 비추었다.



청백 나비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낮은 비행으로 꽃을 찾았다. 비행술이 서툴러서 날개 짓에 신경을 쏟다보니 꽃들이 겹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꽃들이 보이지 않았다. 금빛 나비가 알려준 날개 짓과 호흡 동작을 일치시켜 비행을 하자 비행이 수월했고 들판에 하얗게 널린 토끼풀이 보였다. 토끼풀의 향기는 풋풋했지만 꿀이 적었다. 빨대가 아플 정도로 노동을 했으나 배를 채우지 못했다. 청백나비는 배를 채워줄 새로운 꽃을 찾아 나불나불 날았다.

나불거리는 비행에 나태함은 전혀 없었지만, 속도는 느렸고, 비행 고도는 불규칙했다. 청백나비는 무심히 날다가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 - 말벌이 살아 있는 일벌을 물고 와서 일벌의 날개를 찢어내고 몸통을 갈기갈기 분해하더니 일벌의 노란 살점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말벌이 일벌을 먹는 장면을 본 청백나비는 두려움에 겹눈이 감겼고 날개가 떨렸다. 생각의 곁가지를 뚝뚝 자르고 옹골찬 생각을 했다.
‘살아남으려면 신중하고, 빨리 날아야 한다.’



청백나비는 생각을 하면서 비행하다가 철쭉꽃을 발견했다. 2미터 정도의 키, 진한 분홍색 꽃다발, 점박이 줄무늬가 있는 철쭉꽃에 내렸다. 보이는 것 외에는 자세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는 꽃이었지만 꿀이 쏟아질 것을 상상하며, 철쭉꽃 속으로 빨대를 밀어 넣는 순간에 앞발이 끈끈이에 붙들렸다. 대물림 교육을 받지 못한 후손 나비들의 겪는 수난사였다. 끈끈이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한발을 빼면 한발이 붙들렸다. 빼고 붙들림이 반복되었지만 발은 끈끈한 접착력을 이기지 못했다. 처절한 발놀림에도 불구하고 두 발이 붙어버려 떨어지지 않았다.



청백나비는 기운을 잃고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바람 따라 흔들렸다. 끈끈이에 빠져 죽은 파리 냄새가 지독했고, 끈끈이 액체에 여린 발이 녹는 듯 짜릿짜릿한 기운이 전신을 타고 퍼졌다.

기운이 빠진 청백나비에게 무당벌레가 말했다.




“꽃에 매달려 그네 타는 나비야, 폼 잡지 마.
  장수말벌에게 걸리면 죽는다.”

무당벌레는 청백나비가 끈끈이에 붙들린 것을 모르고 놀려댔다.
무당벌레의 빈정거림에 가슴이 답답했지만 살기 위해 호소했다.
“무당벌레야, 나는 지금 그네를 타는 게 아니다.
  끈끈이에 붙들려 죽어가고 있다. 나를 구해 주라.”
“일도 안하고 나불나불 놀기만 하더니 꼴좋다.”
“무당벌레야, 제발 구해 주라.”
“당신을 구해주는 조건이 있다.”
“조건?”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다 보니, 꽁지에 죽은 진딧물 진액이 붙어 있다. 항상 찝찝하다. 너의 향기로운 빨대로 더러운 진액을 씻어주면 너를 구해 주겠다.”



무당벌레의 지저분한 제의를 받은 청백나비는 망설이다가 무겁게 말했다. “좋다. 나를 구해준다면 ….”

청백나비의 말이 떨어지자 무당벌레는 청백 나비 앞으로 날아와 꽁지를 들이댔고, 청백 나비는 살기 위해 무당벌레의 꽁지를 빨대로 훑어 주었다. 썩는 냄새가 났다. 청백나비는 참기 위해 눈을 감았고, 무당벌레는 시원해서 눈을 감았다. 봉사를 받은 무당벌레가 청백나비를 구하기 위해 발을 잡고 날아 보았지만 청백나비의 발은 끈끈이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나비야, 끈끈이에 붙들려 죽는 것이 너의 운명인가 봐!”
무당벌레가 슬그머니 달아나려 하자 청백나비가 호소했다.
“나를 구해주는 것이 너의 유일한 사명일거야. 한번만 더….”
“나비야, 이러다가 숲속의 예언자인 나까지 끈끈이에 붙들리겠어.”
“무당벌레,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지. 제발~~~”



청백나비는 애원했지만 무당벌레는 사라졌다. 청백나비는 기진맥진 상태에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잠 속에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 잠에 빠진 청백나비를 금빛 나비가 깨웠다.

「청백아, 독을 지닌 꽃에 걸렸구나. 너의 잘못이 아니다. 대물림 교육을 받지 못한 나비들의 현상이다.」

“살려주세요.”
「발이 붙들렸다고 발만 움직이는 것은 집착이다. 집착이 고통을 더 키우기 전에, 발로 밀면서 날개의 힘을 보태어 탈출해라.」
“날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었군요?”



청백 나비는 발로는 끈끈이를 밀면서 날개를 요동치자 끈끈이에서 떨어졌다. 청백나비는 다시 살아났다는 안도감보다 무당벌레의 꽁지를 빨았다는 사실에 자존심 상했다. 자존심이 시커멓게 멍든 청백나비는 날면서 생각했다. ‘나비에게 희망을 줄 내가, 더러운 무당벌레의 꽁지를 빨다니 ….

다시 지울 수도 없는 더러운 오명을 남겼어 ….’

청배나비는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뒤따르던 금빛나비가 안쓰러운 듯이 말했다.

「불쾌한 과거는 잊어라. 과거에 잡히면 현재를 잃는다. 과거는 이미 너의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현재를 날아라. 현재를 놓치면 미래가 없다.」
“무당벌레에게 당한 것이 너무 자존심 상해요.”
「굴욕으로 자존심 상할 수 있다. 굴욕도 삶의 일부다. 고통이 성장을 돕는다면 굴욕은 신중하게 안으로 살피게 만든다. 자존심은 생존의 친구이면서 적이기도 하다. 자존심으로 에너지를 뺏기면 큰 일을 못하고 흙으로 돌아간다.」
“에너지는 뭡니까?”
「생명체를 움직이는 기운. 현재를 살게 하는 열정이다.」
“현재는 또 뭡니까?”
「현재란, 지금 보고 있는 공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 시간,
마주보는 상대다.」

….



청백나비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를 온통 지우고 싶었지만 지울수록 더 생각이 났고 힘이 빠졌다. 꽃이 지천에 피어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힘없이 날면서 생각했다. ‘기분 나쁜 무당벌레의 기억을 지우자. 나비 세상에 희망을 줄 내가 이정도 아픔이야 이겨야지… 아플 때 아파하는 것도 순리다.’



- 2004년 자존심의 충돌이 빚은 탄핵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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