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비예언(2003년) - 허상 (위험한 자유)

2003년. – 허상 (위험한 자유)

산 뒤로 아침 해가 솟아올랐고, 하늘에는 구름 꽃이 뭉실뭉실 수평으로 빠르게 움직였고, 형상 없는 아침 바람은 아래로 불었다. 서늘했다.

청백나비는 자신이 나비 세상에 희망을 줄 영웅나비라고 확신하고 우쭐한 기분으로 힘차게 날았다. 겹눈 아래로는 만발한 노란 유채꽃이 보였고, 겹눈 위로는 유채꽃보다 더 크고 화사한 구름 꽃이 보였다. 지상으로 내려가 유채 꽃을 찾는 것보다 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꽃으로 날아 가는 것이 꿀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저 풍성한 구름 꽃으로 가자. 많은 꿀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청백나비는 꿀이 많아 보이는 구름 꽃을 향하여 무작정 날았다. 비행시간은 적립되었고, 지상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구름 꽃으로 가고 싶은 의도는 열망이 되었고 열망만큼 날개 짓이 빨라졌다. 금방 잡힐 것 같던 구름 꽃은 보이지 않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이 쏠렸다. 기대는 아득하고 고통은 질겼다. 불안전한 대기층을 지나면서 허공 바람에 날개는 균형을 잃고 추락했다. 추락하는 날개엔 시간과 공간, 방향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청백나비는 무아의 상태에서 한 조각 낙엽처럼 팔랑팔랑 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의도는 무(無)로써 복잡한 유(有)를 대신했다.

….

오후 바람은 먼지 덮인 허공을 청소했고, 따사로운 햇살은 졸도한 청백나비를 깨웠다. 의식을 되찾은 청백나비는 왼쪽 날개가 뒤틀렸지만 다시 날기 위해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러나 비행을 계속하겠다는 의욕은 아픔을 이기지 못했다. 뒤틀린 날개를 끌면서 바위 밑으로 기어들었다. 바위 속은 바람이 쑥쑥 들어왔고 어둡고 답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위 속은 땅벌 집이라는 사실을 노출시켰다. 금방이라도 땅벌이 튀어나와 물어뜯을 것 같아서 몸이 떨렸다. 청백나비는 뭔가 붙잡고 싶었다.

‘난, 나비 세상에 희망을 줄 영웅나비다. 
  이 밤만 버티자. 하나, 둘, 셋…. 삼만 셋, 삼만 둘, 삼만 넷 ….’

청백나비는 세던 숫자를 놓쳤고 깊은 잠에 빠졌다. 잠자던 청백나비는 따끔거리는 통증에 깨어났다. 아픈 곳을 따라가 보니 13마리의 중국 불개미가 뒤틀린 날개에서 흘러내리는 진액을 빨고 있었다. 청백나비가 날개 근육을 움직이자 불개미들이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통을 더 깨물었다. 온 몸이 따끔거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마비되었던 청백나비의 날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개미의 독이 날개를 치료한 것이다. 날개에 힘이 생기자 배속 통증이 시작되었다. 불개미가 꽁지로 파고들어 내장까지 진출한 것이다. 청백나비는 화끈거리는 내장을 식히기 위해 바위틈에 고인 물을 빨대로 흡수했다. 시간이 흐르자, 불개미가 배속의 물에 익사했는지 통증이 멈추었다.

긴 시간이 흐른 뒤 뒤틀린 날개가 펴졌다. 청백나비는 또 다시 구름 꽃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뛰고 호흡이 불규칙했다. 구름 꽃을 바라보며 막 날개에 힘을 주려는 순간 금빛나비가 찾아왔다.

「청백아, 왜 지상의 꽃을 찾지 않고 하늘로 오르려고 하니? 」

“구름 꽃은 꿀이 많고 괴롭히는 말벌이 없을 것 같아서 ….”

「구름 꽃은 꽃이 아니라 부서진 물 덩어리다. 허상에 잡혀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네. 이제 지상의 꽃을 찾겠어요. 그런데, 쉽게 꽃을 찾아가는 비행술은 없나요?”

「꽃은 날개로 찾아야 하고, 비행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거란다.」

“금빛나비님! 그래도 비행을 쉽게 배우고 익히려면….”

「비행에도 원칙이 있다. 날기 전에 날아갈 방향을 미리 정하고, 날개를 펼 때는 날개의 각도가 180도가 되게 하고, 접을 때는 완전히 접지 말고 내각을 45도로 유지하고, 날개를 펴면서 숨을 들이마시고 날개를 접어면서 숨을 내쉬어라.」

“네.”


 

청백나비는 간단하게 말하자, 금빛나비가 말을 이었다.

「이제 지상의 꽃을 찾아가 꽃들의 사랑을 돕고, 그 대가로 꿀을 얻어라.」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은 종족 보존의 본능, 상대를 인정하고 기분 좋게 하는 형체 없는 에너지란다.」

“어떻게 해야 꽃들의 사랑을 돕는 거죠?”

「나비가 꽃을 찾아가 꽃기운이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럼 나비는 꽃을 위한 존재인가요?

「나비와 꽃은 서로를 위한 존재다. 나비는 꽃을, 꽃은 나비를 보호하는 존재다.」

“복잡해요. 하루를 살더라도 편하고 자유롭고 싶어요.”

「아직 생존도 불안한 너에게 자유는 이르다. 자유보다 생존이 우선이다. 나비가 생존하려면 겹눈을 긴장시켜 전방을 주시하고, 날개의 균형을 잡고, 꽃을 찾아 날아야 한다. 자유는 고통을 뛰어넘어 고통마저 즐거울 때 찾아오는 혼의 쾌감이지만, 아직 너에겐 ….」

….

금빛나비는 자유의 정의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생략했다.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청백나비에게 자유를 알려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백나비는 금빛 나비의 조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했다. ‘꽃을 찾아가 꽃들의 사랑을 돕고, 꿀을 얻어라.’는 금빛나비의 말에 잡혀서 생각하고 생각을 거듭했지만 나비, 꽃, 사랑의 의미조차 알 수 없었다. 체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무리였고 생각만으로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 2003년 법의 질서를 무력하게 만든 자유를 보면서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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