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나비예언(2001년) - 문명의 충돌

나비 2001년. – 문명의 충돌(테러와 평화)




봄이었다. 꽃들이 이미 아름다운 산을 더 아름답게 하는 봄이었다. 하늘아래 모든 산들이 개나리, 진달래, 산 벚꽃, 싸리나무 꽃을 차례로 피워 내면서 울긋불긋한 꽃 대궐을 만들었다. 피어난 꽃들은 긴 겨울의 인내심을 완성시켰고 다가올 아름다운 고통을 예고했다.

불암산 입구, 3미터 상공, 황갈색 몸통에 흑갈색의 다리와 성조기의 빗금을 연상시키는 긴 날개를 지닌 장수말벌이 겹눈을 부릅뜨고 독거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집을 깨트린 독거미를 제압하려고 침을 날름거리며 공격 기회를 엿보던 중이었다. 독거미가 겁을 먹고 뒷걸음질하자 분노의 기운은 직선적이었고 집요했다. 장수말벌은 지체 없이 독거미 몸통에 침을 놓았다. 잠시 꿈틀대던 독거미가 힘없이 축 늘어지자, 집게 턱으로 독거미를 여러 조각으로 분해하여 속살을 야금야금 파먹었다. 그러나 독거미는 그냥 죽지 않았다. 독거미는 죽으면서도 복수의 대결을 펼쳤다.

승자인 장수말벌의 안도감도 잠시뿐이었다. 독거미가 분해되면서 희멀건 사체(死體)액이 장수말벌의 입에 붙은 것이다. 독거미의 몸이 분해되면서도 배출된 끈끈한 액체가 장수말벌의 입가에 달라붙었다.

장수말벌은 끈끈한 액체를 제거하려고 입을 땅에 대고 문질렀지만 끈끈이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흙가루만 묻었다. 말벌은 독거미를 먹은 것을 후회하며 끈끈이를 닦아낼 수 있는 대상을 찾아 ‘쌕쌕’ 거리며 산 속을 날았다. 장수말벌의 다급한 분노는 눈이 없었고, 끈끈이를 제거해줄 희생물을 찾기 위해 초조한 비행을 했다.

장수말벌은 한반도 모형을 닮은 참나무 숲 위를 날다가 미세한 떨림을 보고, 1미터 높이까지 하강하여, 시신경을 집중했다. 애기 나비가 번데기 집을 열고 막 날개를 빼내려는 순간이었다. 장수말벌은 바들바들 떨면서 세상으로 나오려는 애기나비의 무기력함을 확인한 뒤에, 애기 나비의 젖은 날개에 입을 ‘쓱쓱’ 문질렀다. 애기나비의 왼쪽 날개는 흉하게 구겨졌고, 몸체는 심하게 떨렸고, 오른쪽 날개를 빼려던 동작을 멈추었다. 장수말벌과 독거미 싸움에 엉뚱한 애기 나비가 희생을 당한 것이다. 애기나비는 아무런 이유와 원인도 모르고 깊고 심한 상처를 입었다. 나비가 태풍을 일으킨다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나비가 번데기 집에서 나오자마자 말벌에게 희생당한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산 생명체는 산 자의 의지로 몸부림을 쳤다. 날개가 구겨진 애기나비를 비추던 햇살이 달빛으로 바뀌고, 다시 아침 햇살이 찾아 왔을 때, 애기나비는 정신을 차리고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넘겼다. 상체의 무게를 아래로 실어서 번데기 집에서 탈출하려는 동작을 취한 것이다. 3 그램의 무거운 하중 덕분에 껍질에 걸린 오른쪽 날개를 완전하게 빼냈을 때는 태양은 하늘의 중앙에 걸려 있었다. 하늘은 빛이 났지만 애기 나비의 겹눈은 고통으로 찌그러져 그 어떤 빛도 볼 수가 없었지만 번데기 집을 벗어나기 위해서 꿈틀거렸다.

애기나비는 날개 속살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젖어 있는 날개에 체액이 고루 퍼지게 하려는 원초적 동작을 취했다. 체액이 날개 살 속으로 퍼지면서 날개가 조금씩 펴졌다.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젖은 날개를 말려 주었고 날개는 얇은 종이처럼 굳어졌다. 날개가 마르자 애기나비는 날기 위한 마지막 동작으로 상체를 바로 세우고 , 번데기 시절부터 몸 속에 쌓였던 찌꺼기 체액을 몸 밖으로 내보냈다. 액체를 버림으로써 모든 과거를 버렸고, 닫힌 공간에서 열린 세계로 날아갈 준비를 하였다. 애기나비는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애기나비는 왼쪽 날개가 시큰거렸지만 날기 위해 날개를 파닥거렸다. 몸이 떠올랐고, 진달래 꽃나무가 아래로 보였다. 그러나 부실한 왼쪽 날개 때문에 왼쪽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꽃그늘 속으로 떨어졌다. 한쪽 날개로는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첫 비행에 실패한 애기 나비가 앞발로 기어서 꽃그늘을 빠져 나오자 구름 그림자가 쫓아왔다. 말벌이 다시 덮치는 것만 같아서 다급히 그늘로 숨었다. 애기 나비가 자신의 날개를 구겨 놓은 장수말벌을 원망하며 신음 소리를 내고 있을 때, 봄 하늘은 잔잔하게 빛났고, 바람은 부드럽게 하늘과 땅을 오고갔고, 산새들은 자기 언어로 즐겁게 노래했다. 세상은 고통과 즐거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산 속에 산은 없었고 나비에게 나비는 없었다. 산에는 물오른 나무, 낙엽을 뚫고 나오는 새싹들, 뾰족한 새싹을 내민 잡초, 낮은 자세로 꽃을 피운 야생화, 기어가는 지렁이, 썩지 못하고 뒹구는 낙엽들, 그리고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는 어린 나비 등 저마다 개체로 분해되어 있었고, 개체는 개체들로 연결되면서 다시 산을 이루었지만, 산은 산을 보지 못했다.

애기나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운 나비였지만, 구겨진 날개는 나비의 온전함을 분해했고 날 수가 없었다. 애기 나비는 비행 본능을 펼치기도 전에 미움과 두려움을 먼저 알아버린 작은 나비였다.

– 2001년 9.11테러와 문명의 충돌을 돌아보면서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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