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감사한 마음이 행복의 문을 연다.

행동 진화15. 감사 –  부딪힐 때는 바로 싸우지 말고 감사할 일을 찾아라.



대장암 검사를 받고, 용종을 떼 내고,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 그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감동적인 사진(김 형원님 작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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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외발의 할아버지가 외발 자전거를 타는 손자를 도와주는 장면이 아닐까? 자기 생명에 대한 예우와 삶의 의지, 아픔과 재기, 포기할 줄 모르는 강한 정신, 자기도 힘이 들면서 남을 도우려는 마음,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인간 존엄성,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 아파도 앞으로 나가는 우리들의 인생을 상징하는 사진이었다.

행복(幸福)의 행(幸)자를 풀면 다행이라는 뜻이다. 행복은 다행스러운 복이다. 행복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데, 뭔가 요행에 기댄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행자의 깊은 비밀을 찾기 위해 행자를 (跛字)하면 양(羊)이 땅(土)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 양이 땅을 떠받드는 모양이다. 더 인위적으로 풀면, => 양이 땅에 대해 감사하는 형상 => 양이 땅이 생산한 풀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이다. 결국 행복의 행(幸)은 감사를 의미한다. 행복(幸福)은 감사할 때 복도 온다는 합성어다. 감사함은 알 수 없는 존재의 뿌리에 대한 포괄적 긍정이며, 현재를 인정하고 넘어가려는 포용성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감사하라.’는 말을 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 감사함의 의미를 소화하고 실천하지 못하면(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도 많다.) 자기 존재를 가능케 하는 뿌리에 대한 감사함과 신비함을 모르고, 경박하게 남을 탓하고 원망하며, 다툼이 많고 불편하고 쪼들리게 산다. 감사함은 낮추면서 사는 약자의 언어가 아니다.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에 충만한 사람이 나를 다스리고, 상대를 인정하고, 불편하고 부당한 것도 일단 감싸면서 맞이하려는 강자의 언어다. 감사함은 세상의 에너지를 부르는 소리이면서 평온을 누리게 하는 수단이다.

뿌리에 대해 감사하자. 우리가 잘 나고 내가 노력해서 인간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조상을 만났기 때문에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인간 유전자를 받지 못했다면 무엇으로 살 지 모른다. 뱀은 사악한 기운과 악한 물질의 결합이 아니다. 뱀의 유전자를 받아서 태어나면 뱀으로 사는 것이다. 나비는 나불거리는 기운이 만든 곤충이 아니다. 나비가 낳은 알이 깨어나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를 거쳐서 나비가 된다. 나비는 꽃들의 사랑을 돕고 먹이를 얻고, 새에게 물리고 가시에 걸려서 날개가 부서지면서도 악착같이 알을 남겨서 대를 이어간다. 생명의 연결 고리에는 빈틈이 없다. 인간 형질을 주신 부모님과 조상에게 먼저 감사할 일이다. 그 감사함을 모르면 인간 자체를 부인하는 짓이다.

모든 일에 감사하자. 산다는 것은 부딪힘이다. 부딪힘은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이다. 다툼과 고난이 생겨도 일단 감사할 수 있다면 인간 품질이 변하고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감사함은 복을 부르는 소리이면서 감사함 자체가 행복한 기운을 준다. 저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하면 매사가 미흡하고 불안하지만, 지금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면 마냥 행복하다. 감사하는 순간에는 욕망은 증식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이게 어디야.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고마운 일이다. 하늘이 보살폈다. 아직도 행복하다.’ 등 모든 일이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감사하자.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면 그래도 감사할 일이 많다. 직업 구하기가 어렵고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때, 가난한 나라의 어린 노역자들은 하루 일당 1달러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불공정 사회라고 비판의 날을 세울 때,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으며, 우리가 반찬 투정을 하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하면서 배부른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의 토속 촌에서는 하루에 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일부의 사람이 성형 수술을 받고 작품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고 있을 때, 교전지역의 어린이들은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찾고 있다. 우리가 브랜드를 따지면서 신발을 고를 때,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PT병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서 신발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우울해 할 때, 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는 인류가 전체 인구의 2/3인 40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이것도’ 감사하자. 우리는 매사를 이익과 욕망의 잣대로 저울질하고 선택한다. 세상을 이익과 욕망의 저울로 선별하면 항상 부족감을 느끼지만, 이익이 아닌 이해의 잣대로 보면 감사할 일이 넘친다. 누가 해코지를 해도 살아 있음이 감사하고, 지금의 모순을 미래를 위한 시련으로 생각하며 감사한다. 이익의 잣대에 걸리면 상대의 무례와 손해를 끼치는 행위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고 쉬운 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밥그릇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고 그릇을 깨는 짓을 한다. 이해의 마법을 취하면 작은 시비에 말리지 않고, 작은 일로 행동 리듬을 잃지 않고, 자기 행복을 스스로 깨지 않는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존재로 보일까를 생각하며 조심하고, 상대도 애틋한 존재로 보이고 상대의 시비도 어여쁘게 받아주게 된다.

‘그리고’ 감사하자. 감사함의 기운이 서린 언어는 ‘그러나’라는 말 대신에 ‘그리고’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긍정 후에 부정으로 말의 품격을 낮추지 않고 긍정으로 긍정을 이어간다. ‘그러나’의 언어는 장점을 말하고 단점을 지적하여 분위기를 싸늘하게 하지만, ‘그리고’의 언어는 장점에서 장점으로 연결하면서 감사의 공간을 확장한다. ‘그러나’가 미리 자기 선을 긋고 그 선 밖을 보지 도 않으려는 게으름을 피우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감각이 무딘 자세를 취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자기 선을 긋지 않고 무한 가능성을 향해 뻗어간다. ‘그러나’가 이미 익숙한 것에만 자연스러움을 느끼고 나머지는 버리려고 하고, 파고드는 힘이 부족하여 대충 윤곽만 파악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자폐성을 취할 때, ‘그리고’의 언어는 이익과 관련 없는 부분까지 생각의 신경 세포를 뻗어서 상대를 미세하게 관찰하고 감사할 일을 찾는다. 살기 바쁘다고 자기를 돌아보지 못하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를 모르고 죽고, 아무리 오래된 동료라도 자세히 보고. 이해하고, 서로 맞추어주려는 미세함이 없다면 그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떠날 때도 감사하자. 행복은 일정 부분 개인의 영역이며 개인의 책임이다. 행복은 골프처럼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다. 행복은 마음으로 취하는 선택의 게임이며, 자기 만족감이다. 죽을 때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새해 벽두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에서 나오는 솔향기? 도봉산 정상에 핀 진달래 동굴? 벼가 익어가는 연노랑 물결,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던 경포 앞 바다… 아니다. 어쩌면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과 감사한 대상에 대한 기억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육체라는 껍질을 놓고 떠날 때 행복했던 순간과 감사한 에너지를 챙기면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감사함도 훈련이 필요하다. 생각만의 감사함은 효력이 없다. 감사함이 입과 행동에 붙어 있어야 한다. 감사함도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일에도 입으로 소리를 내어 감사하다고 해야 하고, 원망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위력이 있음을 체험해야 한다. 성질이 나더라도 입은 감사하다고 할 정도로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 세상을 밝고, 편하고, 온전하게 보는 두뇌 훈련이 필요하다. 행복은 마음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이 생기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현실이 부족과 부실 투성이다.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안정되고 커진다. 매사에 감사할 수 있을 때 근본이 바로 서고 없던 행복도 생긴다.

불만이여! 너는 우주의 쓰레기로 떠돌다 지구의 인력(引力)에 의해서 몸을 태우면서 지구로 날아온 짱돌이다. 그래서 그런지 불만은 무조건 찍고 깔려고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불만은 불안과 불행을 부르고 자기 영혼마저 검게 태운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 손 가득 물질을 잡고도 더 달라고 거칠게 보채고 불평을 했습니다. 지상에서 인간으로 사는 것은 최고의 축복이며,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은총임을 알게 하소서! 마음의 입가에 불만이 찾아오면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언어의 낭심에 가득 찬 불만과 부족감을 거세하여 항상 감사하게 하소서! 매사가 어렵고 힘이 들어도 잘 되고 있다고 노래하게 하소서!

감사함이여! 당신은 지친 가슴에 생기를 주는 생수이며, 서로를 살게 하는 에너지다. 당신은 누가 만든 프로그램이기에 휴식을 주고, 마냥 기쁨을 느끼게 하며 남까지 챙길 여백을 준다. 아직도 신(臣)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다는 이순신의 비장함도 본질은 감사함이 아니었을까? 살기 위해 허리를 굽히더라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었다면 더 좋은 일을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게 하소서! 쇠기둥에서 꽃을 피우려면 꽃이 필 화분을 달아주어야 하듯, 악조건 속에서 행복의 꽃을 피우려면 감사의 주머니를 달게 하소서!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감사하라.

감사할 줄 아는 자아여!

인간으로 존재하고 활동하게 하는 자연과 인연(因緣)에 감사하라.
빛과 공기와 물과 불을 사용하며 생존하고 있으니 감사할 일이 아니냐?
꿈을 꾸며 행동하고 어둡고 험한 삶도 묵묵히 사는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고,
그리고 함께 하며 사랑으로 미움을 분해하는 우리에게 감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화를 달래고, 크고 작은 고통을 줄이자.

죽기 전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고,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자아여,
불안, 불만, 불평, 미움은 나를 작게 만드는 감정의 파편이다.
혀뿌리에 익은 불만을 제거하여 억울한 희생을 당해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어렵고 실패해도 핑계대지 말고, 승리했다면 경계의 조언에 감사하자.
우주인이 도래하여 넌, 누구냐고 물으면 감사할 줄 아는 인류라고 답하자.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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