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사랑이다.

입력 2011-08-19 12:06 수정 2013-11-05 10:46


행동 진화13. 사랑 - 사랑으로 갈등을 녹이고 행복이 존재하게 하자.













대관령 험준한 산에, 세상은 이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믿는 ‘이것’ 산양과 세상은 저것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확신하는 ‘저것’ 산양이 살았지. 하루는 태초(太初) 문제로 논쟁을 하다가 머리를 박고 싸우는 지경에 이르렀지. 두 마리의 양은 벼랑 끝으로 서서히 밀리고 있었는데 위기를 인식하지 못했어. 이것을 지켜보던 독수리가 나섰지.



“산양들아, 이대로 계속 싸우면 둘 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는다. 둘 다 죽으면 나에게는 좋은 양식이 되지만, 나의 양심상 서로 싸우다가 죽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어서 말한다. 서로 싸우다 죽으면 이것과 저것이 무슨 의미가 있니? 지금 싸움을 중지하고 서로 인정하면 1+1=2가 되고, 서로 사랑하면 1+1=3이 된다.” 독수리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싸우던 두 마리의 산양은 낭떠러지를 행해 자유낙하를 했지.



우리는 지금도 우화 속의 산양처럼 싸움을 하고 있다. 싸움은 개체간의 부딪힘 현상, 대립자 간의 충돌이다. 남북한의 대결, 한·일간의 독도 분쟁, 크고 작은 노사분규, 서울시의 무상급식 관련 찬반 투표, 빈부 갈등, 경제전(經濟戰)과 화폐전쟁 등은 소수의 기획자가 싸움판을 만들고, 피·아를 구분하고, 자기에게 이익 되는 전선(戰線)을 만들기 위해 자기만의 주장과 정리 안 된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다수의 주체들은 싸움의 본질도 모르고 휘말리거나, 명분도 없는 싸움에 피해를 당한다. 생존과 번창, 인간존엄성과 인간 사랑을 위한 싸움이라면 싸워야 하지만, 명분도 사랑도 없는 싸움, 세력 다툼과 편 가르기로 비화되는 싸움은 막아야 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고대 사냥꾼의 사냥습성에서 시작된 싸움은 지금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온통 싸움판이다. 우리 민족은 기록상 931회의 외침을 받았고, 지금도 더위와 추위, 태풍과 폭우 등 자연과의 싸움, 직장에서의 자리싸움, 조직에서는 세력싸움, 지구촌의 전쟁과 테러 등 하루도 싸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 인간 세상은 싸움이거나 거짓 평화이거나 둘 중의 하나다. 평화는 유리한 싸움을 위한 준비 운동에 불가하다. 이제 싸움에 대한 본질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인류가 문자를 만든 이후로 사랑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이 많다. 사랑은 본능적인 원초적 사랑부터, 소중한 가족을 책임지려는 애틋한 사랑, 인류의 고통을 해소시키려는 성자의 사랑까지 그 품격과 농도가 다르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사랑은 고귀하고, 사랑은 행복을 만드는 에너지다. 사랑은 자신의 품위와 기운을 고양시키고, 상대에 대한 관심과 수용의 다리를 놓아서 서로 소통하게 하며, 세상에 대한 이해와 믿음 지수를 향상시키고, 사랑은 서로 애틋해 하는 행복을 만들고, 시간이 갈수록 영성을 키운다. 사랑은 행복의 도구이면서 행복을 끌어오는 자석이다. 사랑을 위해 왕자 자리를 버린 이야기처럼, 소중한 이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랑은 온전한 행복을 제공한다.



사랑은 더 좋은 곳으로 함께 가기 위한 마음의 여행이다. 호떡도 노동에 사랑이 첨가되어야 맛이 나고, 똑 같은 공정에서 태어난 자동차도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면 정품이 된다. 사랑으로 행복을 조제하려면 건전한 육체의 노동, 애틋하게 아끼는 정신, 사랑만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신념이 만나야 한다. 행복이 선한 본성과 행동으로 기쁨을 찾는 것이라면, 사랑은 영혼의 샘터에서 정情의 목마름을 축이고 행복을 빛내는 과정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게 인간의 모순을 포맷(삭제)하고, 이해로 서로의 영역을 확대하며, 서로가 사는 공간을 만든다. 사랑은 진리의 끈을 연결하여 사랑의 진정성만큼의 행복을 준다.



행복은 자기만족, 풍요, 뿌듯한 성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만 할 수 있어도 행복이다. 어떤 행복은 사랑 그 자체다. 사랑은 소중한 이와 함께 살려는 행동이며, 고통과 대가를 치루고 얻는 보물이며, 시리고 아플수록 더 달콤한 열매를 맺는 고고함, 영혼의 광장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 축복을 주는 향기다. 행복은 물질과 돈, 집과 차량의 브랜드에 있지 않다.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보는 사랑에 있다. 작은 모퉁이에서 가족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우해 즐겁게 일하는 가장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은 계량화할 수 없지만 서로의 느낌으로 에너지가 오고가는 고귀한 인생 자산이다. 대본이 배우를 움직이듯, 사랑이 인간을 움직이며, 사랑이 행복을 만든다.


불안감과 공포가 싸움을 만든다. 금실 좋은 부부사이도 조화가 깨지면 부부싸움을 한다. 서로 다른 생각과 기운을 지닌 인간은 싸울 수밖에 없다. 싸움은 인간 본성이 악해서 일어나는 것도 많지만, 상반되는 이해관계, 손해를 본 것에 대한 피해의식과 손해를 볼지 모른다는 불안의식, 그냥 있으면 당한다는 공포감 때문에 싸움이 생긴다. 전쟁 역사를 보면 정의와 명분을 위한 전쟁보다 공포심 때문에 발생한 전쟁이 더 많다. 신이 전쟁을 원한다고 신을 빙자한 전쟁도 있지만, 불안감과 두려움을 다스릴 수 없어서 싸움을 시작한다. 9.11 테러에 놀란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한 것은 화학무기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다.



싸움이 일상화 되었다. 까칠한 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각 응대, 자존심 대결 등 우리의 일상이 싸움의 연속이다. 공격적인 눈은 시비꺼리를 찾기 바쁘고, 공격적인 발은 먹이와 색을 찾아 바쁘게 움직이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는 수용적인 눈은 끊고 맺을 대상은 과감하게 마침표를 찍고, 미워도 언젠가는 만날 대상이라면 쉼표를 찍고 넘어간다. 공격자기 어떤 것을 탈취와 확보의 대상으로 볼 때, 수용자는 배려하고 사랑할 대상으로 본다.






인간의 생체는 싸움을 하면 행복할 수 없는 구조다. 싸움을 하면 긴장상태로 돌입하여 행복을 느끼게 하는 ‘세라토닌’이라는 쾌감물질의 분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모두가, 나이나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싸움 때문에 행복을 잃고 있다. 싸움에서 이겨서 얻는 만족감은 지극히 일시적이다. 우리는 지금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자기가 살기 위해 지능적인 싸움을 한다. 싸움이 행복을 깨는 주범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싸운다. 삶 자체가 싸움이다.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싸움아, 사랑도 전쟁에 비유하는 너는 세상 언어의 지배자다. 생존게임, 무한도전, 도전과 응전 등 세상은 온통 싸움판이다. 싸움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설전(舌戰)과 신경전(神經戰)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서로 지지 않으려는 자존심 싸움으로 마음의 문이 굳게 닫힌 상태가 되었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싸움에 말려서 비극을 맞고, 그 비극을 통해 관객을 위로하지만, 우리들의 싸움은 그 자체가 비극임을 알게 하소서! 싸움 기운이 넘치는 자아여, 싸우다 죽을 운명이라면 흔쾌히 싸우자. 그러나 평화를 원한다면 싸움을 멈추자.



거룩한 싸움이여! 당신은 나를 구하고 행복하게 하는 나와의 싸움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나를 이겨야 행복한 성장을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욕망의 칼로 이성을 베었고, 싸가지 없는 상대와 싸우느라 흥분했고, 편한 대로 살려는 비아(非我)에게 슬쩍슬쩍 자리를 허용하기도 했습니다. 눈앞의 빵 때문에 목숨을 걸면서도 내 속의 적에게는 관대했습니다. 나를 이기지 못하고 성질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나를 패자로 만드는 피해의식과 불안의식을 탄압하리라. 나를 이기고 싶은 자아여, 나를 먼저 이겨서 밥값을 하자. 인생을 승리로 이끌자.



사랑이여! 당신은 악취도 향기롭게 하는 마법이며, 싸움을 멈추게 하는 묘약입니다. 행복이 물질과 정신의 복합 비타민이라면, 사랑은 물질과 정신의 복합 영양제다. 사랑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이를 소유하려고 했고, 반쪽 눈으로 반쪽 사랑만 하였습니다. 사랑은 행복의 종결자임을 알고, 사랑의 위력으로 갈등을 녹이게 하소서! 자기를 믿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며, 사소함을 버리는 것은 사랑의 훈련이며, 상대를 나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은 큰 사랑이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랑의 확대임을 알게 하소서! 사랑으로 싸움을 중지하고, 사랑으로 행복하리라.



사랑하고 싶은 자아여, 그대는 싸우고 고민하려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위대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려면 인간부터 사랑하라. 넉넉한 품위로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하자. 단점보다 장점을 먼저 보려는 관대함으로 동정하고, 미운 놈도 애틋한 눈으로 따뜻하게 대하자. 동시에 많은 것을 사랑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은 하나뿐이다. 과거는 과거를 키운 역사일 뿐이다. 불미한 과거 때문에 사랑스러운 현재를 초라하게 만들지 마라. 사랑으로 수용하고 화해하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가상통화의 미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현대판 튤립 투기이며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것 804명 59%
  • 결제·지급 수단으로 인정받아 은행 대체할 것 556명 4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