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라.






행동 진화12. 정의 -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가라.



고향을 다녀오는 고속도로는 길게 연결된 주차장 상태였는데도 끼어들기를 하는 불공정한 운전자가 있었다. 그것도 가족을 함께 태우고 말이다. ‘힘과 요령이 우선하는 인간 세상에 보편적인 정의는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가졌다.

한국 축구가 일본에 졌다고 신문에서 참사(慘死)라는 표현을 했다. 물론 무기력하고 보기 민망했지만 참사라는 표현은 너무도 극단적이다. <대 수술이 필요한 한국 축구!> 정도로만 제목을 뽑아도 될 것을 호들갑을 떨었다. 신문과 방송 매체는 객관적인 정의의 눈을 지닌 생명체인데, 자기 기분과 이해관계에 따라 정의를 내리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에 정의를 세우고 유지하는 공정한 시스템이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가졌다.

정의(正義)는 바르고 의로운 행동이다. 정의는 노력 이상을 바라지 않는 정신, 자기 일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분수,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행동이다. 사회의 정의는 욕심을 제어하는 안전장치,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사회시스템, 사회가 썩는 것을 예방하는 소금이며, 눈앞의 이익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자세, 서로 살려는 정신과 행동의 규약이다.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는 간결하지만 그동안 정의의 세상은 힘이 지배했고 다수의 생각, 다수의 정서, 힘의 우위를 점령한 세력이 정의로 둔갑했다. 승자가 정의까지 독식했다. 옳고 그름을 판정하고 정의를 세우는 언론, 학계, 입법과 사법 기관이 기득권의 칼을 잡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 정의를 세우면서 본질은 묻혔고, 참과 거짓의 식별은 어려웠다.

이제 혼란과 다툼을 줄이기 위해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즈음 자본주의 4.0, 정의(正義)와 공정(公正)한 사회가 화두다. 그동안 어둡고 불공정한 면이 많다는 반성의 목소리이면서, 사회에 정의가 없으면 서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각성 때문이다. 진흙을 만진 손으로 반찬을 만드는 일을 제어하고, 약자의 손해를 경쟁에 뒤진 자연현상이 아니라 분배의 모순과 정의의 문제로 재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러나 정의는 잘 지켜지는 않는다. 개인이 정의를 실천하려면 절제와 자기관리, 희생과 고행이 따라야 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윗물이 맑고,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룰과 함께 가는 동반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행복을 배(培)로 느끼게 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정의다. 행운은 행운일 뿐이다. 개인의 행복은 가치관과 인식의 문제이기에 양심과 정의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은 서로 엇물려 있고 더불어 사는 공간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정의가 없다면 서로 불행하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서로 행복하려면 정의가 살아 있어야 한다. 정의는 서로의 행복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정의의 룰을 지켜야 한다. 행복은 자기만족을 위한 1인 게임이면서, 상대와 교감해야 느끼는 게임이다. 홀로 무인도에 산다면, 홀로 생존하더라도 홀로 행복할 수 없다. 개인 병실에서 홀로 치료 받는 환자보다 단체 병실에서 환자끼리 대화하고 격려할 때 완치가 빠르다고 한다. 인간은 병이 들어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증거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혼자 만들 수는 있지만, 혼자 멋지게 누리지 못한다. 억만금을 쥐고도 외로우면 불행한 것이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어떤 행복도, 어떤 풍요도 오래가지 못한다. 서로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다. 개인의 행복은 스스로 바르고 정의로운 양심에서 피는 꽃이며, 가정의 행복은 구성원이 모두 건강하고 서로 아끼는 애틋한 마음에 열리는 과실이며, 조직의 행복은 정의의 바탕 위에서 룰대로 흘러갈 때 다수가 느끼는 일체감이다.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약자의 아픔을 사회 모순으로 인식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행복의 게임에는 룰이 필요하다. 사회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경쟁하되 반칙을 하면 페널티를 부여하고, 서로가 존중하여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아야 한다. 한 마디로 행복의 게임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행목게임에 정의가 있을 때 자기 능력만큼의 행복 사다리를 오르며, 서로가 보호되며 시간이 갈수록 모두가 행복하게 한다.
불의(不義)여! 너는 옳지 않음의 대표 선수이며, 양의 탈을 쓴 늑대다. 네가 개입하면 장미 공원도 쓰레기장으로 변한다. 불의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즐거운 것을 소유하려다 안일한 불의의 길을 걸었고, 소신 부족으로 불의와 타협도 했고, 육안에 속아서 내면이 부끄러운 불의도 저질렀습니다. 작은 불의가 쌓여서 모순의 강풍이 불기 전에 정의의 맥박을 살리자. 불의를 저주하면서 불의를 행하는 자아여, 불의로 승리할 수 없다. 세월의 강물에 밀려서 죽음의 바다에 가기 전에 의롭지 못한 일들을 참회하고 멈추자.

정의(正義)여! 당신은 세상 질서의 신호등이며, 세상이 썩지 않도록 하는 소금이다. 정의는 함께 살기 위한 합의된 상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목적이 여건보다 앞서가느라 불의의 길을 걸었고, 아닌 곳을 기웃거렸고, 양심의 심장은 자주 따끔거렸습니다. 정의의 심장이 멈춘 사회는 죽은 사회임을 깨닫고, 아닌 곳은 가지 말고 가야할 곳은 가게 하소서! 정의는 반드시 이기며, 행복은 정의와 함께 할 때 배가(倍加)된다는 것을 믿고, 힘은 들어도 빛나는 정의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정의의 사도(師徒)를 꿈꾸는 자아여, 생체 시스템 속에 정의의 나침반을 설정하고, 정의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자. 요동치는 파도도 웃으면서 넘어가자.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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