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행복은 정직함에 있다.

행동 진화7. 정직과 진실 – 험난한 정의의 길을 사랑하자.



요즈음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들은 자연을 배경으로 게임하지만, 무늬만 자연이지, 주체인 출연자들은 미리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도구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제한된 시간에 흥미와 유익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대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더 이상 거짓의 세계에 우롱당하는 것이 싫다.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예능 프로그램이 일정한 주제를 정해놓고 출연자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웃기고, 저마다의 창의적인 모습을 찍어서 보여주면 어떨까? 흥미가 떨어져도 진짜의 모습을 보고 싶다.

최근 신문을 보다가 ‘오래되고 유명한 맛 집’기사를 읽었고, 맛 집의 위치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기사 내용의 맛 집이 25년 전에 정직한 감동을 준 경기 북부, 이동면의 그 집임을 알았다. 먼 길 찾아갔더니 26년 전, 7월에 ‘식은 밥은 줄 수 없다.’던 그 집이었다. 넓은 식당이었지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고, 맛은 변함이 없었다. 그 때 주인아주머니는 할머니로 변해 있었지만 성공한 맛 집의 CEO답게 기품이 고우면서도 당당해 보였고 행복해 보였다. 이동면의 유명한 맛 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5년 전의 일이다.

25년 전, 소대장 직책을 끝내고 군단장 부관 면접을 보았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모처럼 동기생을 만나 사령부 앞 허름한 식당에 들렸다. 서로 바빴고 부대로 복귀하는 버스 편도 제한적이어서 간단한 음식을 시켰는데, 주인아주머니 왈 <양심상, 식은 밥을 줄 수 없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따듯한 밥을 주겠다는 주인의 단호한 명령에 어쩔 수 기다리느라, 버스도 놓쳤고, 늦게 복귀하여 질책을 받았지만, 주인의 정직한 행동은 오래도록 감동으로 남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삶의 좌표 하나를 심어주었다.

신(神)을 웃기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집을 나서면서 가스 불을 껐을까? 고민하고 잡념에 잠기면서도 행복한 척 한다. 신은 웃는다. 신은 약하면서 강한 척 하는 인간이 가소롭기 때문이다. 자기 절제력도 없으면서 자기 계획을 발표하고 이 계획이 성사되도록 기도한다. 신은 또 웃는다. 계획은 단지 행동의 방향일 뿐인데 말이 앞서는 인간이 우습기 때문이다. 자기 아픔을 고백하고 아픔을 치유해 달라고 매달린다. 신은 웃는다. 아픔 고백보다 더 중요한 믿음에 대한 고백을 빠트리고 요구만 하기 때문이다. 3가지 이야기는 거짓을 꼬집는 가상의 개그다.

인간이 자기에게 불리한 것을 감추려는 것은 어쩌면 보호 본능이다. 정직은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려는 감성이자 올곧은 태도다. 인생은 불확실 위험과 고난이 따르는 여행이다. 그 고난의 여행을 흔들리지 않고 바로 가게 하는 친구는 정직이다. 정직하면 부딪힘과 손해가 발생하고, 고지식하다는 말도 듣지만, 정직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들고, 남에게 감동을 주고, 자기 성찰을 통해 성공의 발판을 만들고,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인간 자본이다. 정직하게 살면 고달픈 일도 생기지만 결과적으로 신뢰와 신용으로 사람을 얻는다.

종말론자, 서민의 돈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종당에는 부도 사태로 서민을 울리는 사람들, 사업 가치를 과대 포장하여 사람을 모으고 결국 피해를 주는 악당들은 처음부터 자기 이익을 위해 의도적인 거짓을 꾸민 사기꾼들이다. 사기꾼들은 남을 이용하기 위해서 허상의 바벨탑을 쌓고, 가치 이상의 거품으로 사람을 모으고, 초기에는 이윤의 부스러기를 주면서 허상의 바벨탑을 믿게 하고, 자신들이 만든 거품에 상대가 계속 속아 주지 않아서 허상의 바벨탑이 무너지면, 의도는 좋았는데 다수의 협조가 부족했다고 변명한다. 세상의 허상에 속지 않으려면 직접 보고 깊게 살펴야 한다.

거짓은 3가지 유형이 있다. 사실대로 말하면 – 체면 손상, 관계 불편, 노고의 가중 등 – 손해를 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나쁜 의도는 없지만 습관화된 거짓, 순간적인 체면 보호와 품위 유지 때문에 일시적인 위장을 하고, 남을 해코지할 의도도 없이 자신을 과도하게 포장하는 방어적 거짓도 있고, 남을 고의로 속여서 이익을 취하려는 검은 거짓이 있다. 자기 이익을 위해 일을 꾸며서 남을 속이고, 본심을 감추고 진실과 실체가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행위, 고도의 사기성 연출력으로 거짓을 참으로 둔갑시키는 거짓 등은 공공의 적이 되는 공격적 거짓이다. 희망과 용기를 주려는 하얀 거짓도 있다. 표현은 거짓이지만 남을 돕는 착한 거짓이다.

평화를 유지하고 희망을 주는 착한 거짓도 있다. 어느 의사가 말기 암 환자에게 ‘아무 이상이 없으니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라.’고 했더니 완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좀 못생긴 사람에게 ‘뭔가 모를 기운과 기품이 있다.’라는 하얀 거짓이 있듯, 상대가 네모를 요구하면 일단 네모에 맞추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상대가 네모를 요구하는데 네모가 틀렸다고 원을 끼우면 충돌이 난다. 정말 동그라미가 맞더라도 네모의 모자람을 힐난하고 비웃을 것이 아니라 네모난 구멍에 일단 맞추어 주고 난 뒤에 동그란 모습으로 변하게 해야 한다. 너무 고지식한 정직으로 본의 아닌 상처를 주는 것 보다는 나의 주장과 기분을 조금 줄이여 평화를 주는 것이 생산적이다.

거짓이여! 너는 허공을 떠도는 구름이며, 두려움이 무서워 변덕을 부리는 겁쟁이다. 너는 실체를 허깨비로 만들고, 빛의 에너지를 빨아먹는 블랙홀이다. 진실이 이긴다고 배웠지만, 알량한 존재감 때문에 불리한 상황을 피하려고 비굴한 거짓을 고했고, 거짓으로 부풀려진 껍데기를 지키려고 하다가 속마음마저 빈 껍질이 되었습니다. 죽은 나무에 꽃이 필 수 없듯, 거짓에는 영혼이 죽고,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 없음을 알고, 거짓으로 흐려진 영혼을 다시 살리자. 이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고백하자. 거짓으로 인생 품위를 구길 수 없는 우리들이여,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거짓을 말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자.

진실이여! 당신은 안일한 거짓의 길보다 험난한 진실의 길을 사랑하는 사도(師道)이며, 네모 구멍엔 네모 못을 박는 센스입니다. 진실은 인생을 당당하고 평온하게 한다는 것을 알지만, 생존 경쟁에 밀려서 본의 아닌 거짓과 타협도 했고, 과욕의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거짓으로 불안과 불화를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속일 의도가 없이 허상에 속아서 남까지 속였습니다. 잡초를 제거하여 곡식을 살리듯, 거짓을 죽여서 진실한 자아를 찾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려는 우리들이여, 진실이 있어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노래할 수 있도록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전혀 모르는 무균질 인간이 되자.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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