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과 행복의 조화를 위하여!



언어를 끌고 경제의 숲으로 갔다. 오랜 기간 관찰했다. 경제의 숲은 인간과 물질과 심리, 정의와 도표와 통계, 주장과 예측과 해석이 서로 얽혀서 복잡했다. 경제의 숲을 멀리서 보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풍경이었고, 가까이에서 보면 밥과 행복, 물질과 정신의 전투였다. 경제의 숲은 밥을 해결하여 행복까지 보장하는 영토였다.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 경제의 숲은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광장이었다. 논리가 개입된 경제의 언어는 실체이면서 허상이었다.

내가 본 경제의 숲은 생기와 열정을 만드는 자연 빛의 공간이었다.
경제는 인간 자유 본성과 소유 욕망을 보장하는 자연의 빛이며, 경제는 인문학의 조명을 받으면서 성장했고, 인생은 경제라는 불꽃놀이였고, 경제는 밥과 행복을 빚는 도자기의 빛이었다. 경제에는 어둠과 빛이 혼재하는 인공 빛도 있었다. 경제는 의지와 불확실이 충돌하는 스파크 불꽃이었고, 소유와 절제와 절약이 서로 엇물려 빛을 내는 밤무대였고, 경제는 자기창조와 경제생활 매뉴얼로 어둠을 밝히는 전등불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는 어둠과 빛이 공존했고, 어둠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애매한 경계선 상의 빛들도 있었다. 경제는 행복의 수단이면서 때로는 돈을 행복으로 착각하기도 했다.

경제의 숲에는 그림자와 악취가 섞여 있었다.
자유 경제에는 겉은 빛이지만 안으로 실체 없는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무한 가능성과 발전에 제동을 거는 자연과 인간의 충돌과 기상이변, 종교간 갈등, 진실보다 집단에게 명분을 제공하는 일부 어용 학문들, 기대와 반대로 가는 정책들, 희생으로 진보하는 자본주의는 실체도 없는 그림자였다. 어떤 경제는 빛이 빛을 소멸시키는 블랙홀이었다. 탐욕과 거품, 환경을 파괴하는 건설과 토목, 무역전쟁과 화폐전쟁, 단기 순익에 빠지는 기업 논리, 인간을 게으르게 하는 도구의 발전은 존재하는 빛마저 소멸시킨다. 경제에는 빛이 전혀 스미지 못하는 암흑도 있었다. 미래가 없는 현재 위주의 소비, 겉은 신사의 게임이지만 안으로 추한 금융의 제로섬 게임, 불공정의 장벽, 열정과 생산의 감소, 방에 군불을 지피지 않으면서 춥다고만 하는 노동 기피증은 미래를 스스로 포기하는 암흑이다.

경제의 숲은 진화 중이다.
숲속의 다양한 생명체가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협조하듯,  경제도 현재와 미래, 밥벌이와 행복벌이, 제조업과 지식산업이 서로 조화를 찾아야 한다. 사냥꾼들이 만든 다툼과 비판, 어둠과 부정의 언어를 걷어내고, 인터넷 문화가 창시한 수평문화 속에 서로 아름다울 수 있는 저마다의 실체와 보람을 찾아야 한다. 경제는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진화를 해야 한다. 현재 속에 미래를 염두에 두고, 100세 시대를 고려한 인생 재설계, 비판과 갈등 키우기보다 긍정적으로 진보하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경제는 언어가 아니라 행동이다. 경제의 숲이 공생과 공존의 공간이 되려면,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며, 이윤과 효율의 돈줄에 엮인 싸움판을 걷고, 통계와 언어의 기교로 만든 경제를 원리와 이치로 굴러가는 실용 경제로 바꾸어야 한다.
경제는 밥과 행복을 동시에 해결하는 수단이다.
물질과 정신으로 구성된 인간에게 경제는 밥과 행복을 해결하는 영역이다. 앞으로도 밥만 챙긴 무리들은 아름다운 양보와 배려의 언어를 잃고 소유 속으로 질주하고, 성장 속의 빈곤을 낳고, 마음의 밥상을 잃게 될 것이다. 반대로 밥을 소홀히 하고 정신만 찾거나 놀기에 바쁜 무리들은 허상에 빠지고, 빵은 부족하고 방은 추워질 것이다.

물질과 행복을 함께 말지 못하면 깨진 그릇에 물을 담으려고 하는 모순을 범한다. 진정한 삶을 위해 밥과 행복이 한 자리에 모여서 빛의 축제를 해야 한다. 행복 축제의 장에는 사냥꾼부터 농경인, 산업인, 지식인, 있는 그대로 행복한 인류까지 가장행렬을 보여주고, 인간 이해와 사랑의 배우, 감성으로 노래하는 가수를 초대하여 욕망 비대증과 인간불감증을 치유하자.



밥벌이와 행복벌이는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물질중심의 반쪽 인간은 물질 때문에 영혼을 뺏길 수 있고, 물질을 외면하고 행복만 찾는 반쪽은 행복 때문에 생존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교감하기에, 육체를 위한 밥벌이와 영혼을 위한 행복벌이는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밥벌이로 행복을 대체할 수 없고, 행복 벌이만으로 물질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겠다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음을 궁핍하게 하면 일시적인 물질 소유를 하지만 온전하지 못하다. 나물 먹고 물을 마시면서 행복의 찬가를 부르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물질과 정신(영혼)의 조화로 온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인내심과 추진력으로 서로 성격이 다른 존재를 하나로 조합하고, 2인 1각 달리기처럼 속도를 늦추고 골인 지점까지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물질을 위한 밥벌이와 정신의 평화를 위한 행복 벌이가 함께 이루어져야 물질은 흩어지지 않고 행복한 삶에 기여하고, 행복은 역으로 물질의 영역을 키운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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