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전환20. - 걱정의 치유



직장이 바뀌고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심야에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탱크 굴러가는 소리처럼 크게 들렸고 작은 일에도 신경이 곤두설 정도로 예민했다. 심야의 보일러를 꺼버려도 소리가 들렸다. 아랫집 보일러 소리였다. 마음으로 침투하여 신경에 거슬리고 정상적인 판단을 막는 좀비가 생긴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보일러 소리를 운명적인 밤의 노래라고 생각하자, 더 이상 보일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음으로 침투한 좀비와 대적하면 좀비는 신나서 괴롭힌다. 마음의 좀비가 생기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자기 혼자 놀도록 허용하거나, 무시하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걱정 없이 기분 좋은 상태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고통과 고민의 연속이다. 살면서 고난과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대표적 글이 보왕삼매론이다. 보왕삼매론의 서두만 보면 1)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므로, 병고(病苦)로써 약을 삼고, 2) 살면서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 곤란이 없으면 사치한 마음이 생기므로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고, 3)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우는 것이 넘치게 되므로 장애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현재의 불편은 사람을 신중하고 크게 만드는 보약이다. 약이 독이 되고 독이 약이 된다.

오늘도 다양한 좀비들을 만난다. 눈을 뜨자마자 찾아오는 걱정의 좀비, TV를 켜면 밤사이 일어난 세상의 사건. 사고 좀비들, 방사능 공포 좀비, 디도스 좀비, 기분 나쁜 현상 좀비들, 간섭하고 태클 걸고, 심지어는 아이디어를 낚아채는 인간 좀비 등 눈에 보이는 징그러운 좀비들이 많다.

더 무서운 좀비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좀비들이다. 온전하지 못한 인간 유전자에 내장된 여러 가지 병적인 좀비들이 있다. 소유를 충동질하는 결핍감과 탐욕,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걱정과 잡념, 실체를 ‘0’화시키는 의심, 존재를 가볍게 하는 불만, 반복적인 불편이 만드는 노이로제, 대립각을 세우는 비판의식과 비교의식, 허세와 체면의식 등 쓰레기 마음을 유발하는 좀비들이 있다.

유무형의 좀비들과 바로 상대하고 쫓아내려고 하면 에너지를 뺏기고 불행해진다. 좀비들은 잡초 같아서 밝고 누르면 더 자라난다. 긁어서 부스럼 낸다는 말이 있듯, 어린아이를 건드리면 울고, 모닥불을 건드리면 꺼지고, 잡념과 걱정은 유념할수록 더 커진다. 건강 염려증에 걸린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고기를 삼가고 야채만 먹고, 하루 2시간 이상 운동을 하고, 손 잘 씻고, 건전한 생활을 하는데도 도맡아 놓고 병원을 다닌다. 아는 게 병이되고 지나친 의식은 오히려 아픔이 되고, 막으려고 하면 더 침투를 하고, 깨끗하게 씻을수록 더 냄새가 난다. 냄새를 막아주는 균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잡것을 수용하는 치유가 필요하다. 세상은 이것과 저것이 섞여서 조화를 이루는 모자이크 사회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선호하고 선택하려는 것은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과 같다. 자연 세상에는 나무와 새, 돌과 잡초, 모기와 파리, 지네와 독사가 더불어 사는 것은 다 필요하기 때문이듯, 걱정과 장애, 고난과 걸림돌도 발전의 약이 된다. 근친교배로 대를 있는 생명체는 갈수록 약해지다가 종족이 사라지듯, 같은 생각을 지닌 무리들은 진보가 없다. 산 너머 누가 사는지를 모르고 살았던 농경문화는 편식과 편견, 시기와 질투로 좁은 세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 다른 것을 포용하는 치유가 필요하다. 생명 세상을 보면 순종보다 잡종이 강하다. 불순물이 없는 철은 강하나 부러지기 쉽고, 잡음을 허용하지 않는 순수 음악은 인간적 감흥이 적고, 잡균이 없는 무균 상태의 몸은 더 많은 질병을 앓는다. 적당한 균은 건강을 위한 약이다. 태풍이 없다면 벼는 웃자라 쓰러지게 되고, 밭에 잡초가 없다면 곡물은 긴장감을 잃고 알곡이 부실해지고, 잡초를 죽이겠다고 제초제를 사용하면 곡물도 약해진다. 내가 원치 않는 것도 보고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가 있다. 생명체가 생존하려면 생존에 필요한 부담금과 권리금을 물어야 한다. 인생은 권리금만 요구할 수 없다.
불편한 현상을 일시적 과정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밤을 거치지 않는 새벽이 있을 수 없듯, 고난과 불행은 행복으로 가는 과정이다. 겨울은 봄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인간은 온전하지 못한데 온전한 이상만 추구하면 문제가 생긴다. 온전하지 못한 것도 진보를 위한 과정응로 받아들이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그냥 내버려 두어라(Let it be).  걱정도 고통도 필요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냥 두면 사라진다.  나와 너,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마음 프로그램이 지령하는 대로 행동하고 살아간다. 에러와 버그가 생길 수밖에 없다. 상대와 세상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맞상대하기엔 너무도 무기력하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자. 나의 기대와 반대로 가는 일이 생겨도 나서지 말고 그대로 지켜보자. 내 생각과 다르다고 배척하고 쫓아내지 말고 일단 수용하자. 뭔가 쓸모가 있을 것이다. 빨리 간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쳐서 쓰러지지 말고 때로는 조심조심, 살살 가자. 마음의 웅덩이에 찰거머리가 붙어서 나를 산만하게 하더라도 그 찰거머리를 잡겠다고 손에 피를 묻히지 말자. 그대로 두어도 살아야 하는 것은 살게 되고, 도태될 것은 자연 도태가 된다. 머리를 들어서 먼 하늘 흰구름 한 번 쳐다보자. 있는 그대로 멋진 날, 받아들여서 행복한 날이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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