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진화10. 절제 - 절제(節制)는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인류는 자유를 기본이념으로 삼지만, 절제해야 한다. 지나치면 반드시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조금 편하고자 하면 바가지를 긁힌다. 노자의 자연과 자유이념은 지금도 미완성 상태인데,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는 절제해야 성공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걸림 없는 자유를 노래하면서도 절제를 필요로 한다. 자유와 절제라는 서로 다른 보물을 가지려고 한다. 자유 의지를 누르면 마음이 상하고, 절제를 잃으면 몸이 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유와 절제는 평행선을 달리는 철도의 궤도처럼 합일점 없이 서로의 존재를 부인한다. 자유로운 상상의 글쓰기를 강조하면서도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글이라고 평가하고, 자유롭게 질문하라고 해놓고 자기 기준에 벗어나면 엉뚱한 질문이라고 핀잔을 준다. 자유는 인간의 한계성을 벗어나게 하는 언어라면, 절제는 자유의 반대편에서 참음과 억누름의 언어, 보통 사람에 실천하기 어려운 단어, 인간의 무한 발전을 막는 언어로 인식하고 있다.

자유와 절제의 공존지대를 찾기 위해 자유와 절제를 언어 믹서기에 넣고 돌리면 ‘선택적 절제’가 나온다. 선택적 절제란 무조건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선을 지키고, 정도에 알맞게 조절하여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향기로운 마시멜로를 눈앞에 두고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맛있게 먹되 과하지 않는 것이다. 선택적 절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지나치지 않는’ 중용의 언어다. 어떤 현상을 보면 자유와 절제의 언어로 비추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집 근처에 막국수 집을 개업했다. 개업 집의 할인 기대감을 갖고 찾아가 시식을 했더니 서둘러 개업한 흔적이 있었다. 음식 맛도, 내부 서비스 동선도 비효율적이고, 설비와 인테리어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맛은 수준이하인데 가격은 비쌌다. 투자비를 건져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절제력을 잃은 것 같았다. 좀 늦더라도 준비를 갖추고 판을 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상속의 절제력은 상황을 신중하게 살피고 실수가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한 때 KBS의 개그콘서트 <발레리NO>가 인기를 끌었다. 발레를 배우는 3명의 원생과 발레를 지도하는 리더가 착 달라붙는 복장 때문에 노출되는 거시기를 감추려고 하면서 긴장이 흐르고 긴장이 반전되면서 웃음을 주었다. ‘발레리NO’가 웃음을 주는 원리는 절제미였다. 거시기 약점을 감추려는 인간 심리와 저질 몸과 어색한 동작이 웃음을 연출한 것도 있지만, 바(bar)를 이용하여 거시기를 감추려는 성적인 상황이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절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절제력을 유지했기에 있는 웃음을 주었던 것이다.

무절제 했던 인생 한 토막을 고백하면서 절제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한다. 심심풀이로 카지노에 갔다가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혹독한 아픔을 겪었던 일이 있었다. 카지노는 쓰린 맛과 함께 절제를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약자가 변명을 앞세우는 것처럼 카지노를 가게 된 이유는 황도사의 유혹의 강의 때문이었다. <카지노는 단순 도박이 아니다. 확률과 조합이라는 수학 게임이다. 대원칙을 정하고, 기록해가면서 일관성을 유지하면 돈을 잃지 않고, 그리고 바로 덤비지 말고, 잃은 사람 자리를 찾아서 자리를 정하고, 화가 난 사람과 반대로 하면 딴다.>는 카지노 속설(비법)을 듣고, 도박은 죽어도 하지 않겠다던 내가 재도전의 길을 재촉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카지노를 찾았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일인당 5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공황에서 입국 수속을 밟듯이 검사를 받고 입장했다. 우리 일행을 인도했던 황도사의 조언대로 공짜 음료수부터 마시고 객장을 둘러보았다. 먼저 다양한 사람이 보였다. 남녀의 구분이 없었고, 등산 복장부터 양복차림까지 복장도 다양했고, 눈이 퀭한 사람,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 멍한 시선으로 기계를 작동하는 사람 등 객장은 사람으로 가득 찼지만 웃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와 싸우는 게임, 카드놀이, 돌림판, 3개의 주사위를 던지는 게임 등 도박의 종류는 다양했지만 도박의 원리는 같았다. 공짜 심리가 있는 사람을 유혹해서 빈털터리를 만드는 악마의 게임이었다.

음료수를 마시고 객장을 둘러보는 순간까지는 환상 단계였다. 환상은 미리 승자를 만든다. 나에게 큰 행운이 올 것 같은 예감, 좋은 일을 하고도 가난하게 살아 온 나에게도 큰 행운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 오늘은 뭔가 될 것 같은 주술적 힘에 끌려서 만원의 지폐를 코인으로 전환하고 게임을 시작했다. 5분이 경과하자 도박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계속 기계 속으로 지폐를 투입했다. 황도사가 지도한 비법은 먹히지 않았고, 기계는 지폐를 먹는 하마였다. 마음은 점점 본전 생각으로 무거워졌다. 환상은 무너지고 영혼은 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미 진 게임에서 피해를 줄이는 것은 바로 일어서는 것인데, ‘나의 행운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번만 더....’라는 기대감에 묶여 시간이 갈수록 고통의 깊이는 깊어지고, 은행을 다녀오는 횟수와 동선은 증가했다. 절제가 무너진 영혼은 욕망의 포로가 되었다. 카지노로 데리고 온 황도사가 미워지고, 분노의 기운이 비집고 나와 기계를 때리기도 했다. 나답지 않은 행동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형체 잃은 영혼은 ‘지금이라도 일어서라.’고 호소했지만, 본전 회복에 집착하는 마음은 ‘곧 나의 행운이 온다.’고 믿으며 배팅 금액만 높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심각한 상태의 인간 군상들이 보였다. 초점을 잃어버린 얼굴, 욕설을 해대는 미치광이들(?)의 소란 속에서도 행운의 팡파르 소리는 환상곡처럼 울리면서 사람들을 자리에서 묶어둔다. 질 수 밖에 없는 확률 게임, 일어서는 것이 빠른 구원의 길임을 알면서도 손을 털지 못하고 유혹을 끊지 못한다. 카지노에서 15시간 동안 많은(?) 돈을 잃으면서 인간의 이성적 한계를 느꼈고, 욕심과 영혼이 싸우는 이중 곡선을 읽었고, 환상에서 영혼의 파멸에 이르는 길이 너무도 순간적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기계에 붙들린 나를 일어서게 한 것은 영혼의 울림소리 ‘아직도 늦지 않았다. 돈은 땀으로 벌어야 한다. 기계와 싸워서 돈을 버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를 듣고, 남아 있는 코인도 챙기지 않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오자 밤바람이 시원했고, 흐린 하늘 사이로 별이 보였다. 빛나는 별이 원점으로 돌아온 영혼을 축하하는 듯했다.

욕망에 쫓기면 추해져서 사람다움을 잃고 어둠 속에서 허둥거리게 한다. 욕망 쪽으로 나의 발이 움직이려고 하면 ‘이건 아니야.’라고 호통을 쳐야한다. 그래도 욕망이 죽지 않고 활동하면 ‘욕망의 행적은 하늘이 기억한다. 욕망은 나를 포함한 가까운 이에게 악영향을 준다.’라고 내면을 긴장시켜서 욕망을 누르고, 독한 마음으로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절제는 행복을 지키는 에너지이며. 고고하고 맑은 쪽을 택하게 하는 영혼의 동지다.

무절제여! 너는 스릴과 허무를 동시에 주는 욕망의 번지점프다. 통제할 수 없는 욕망과 감정에 잡혀서 절제를 잃으면 짐승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털고 나오지 못해 아름다운 시간과 공간을 잃었고, 영혼마저 떠돌았습니다. 독선보다 무절제가 더 무섭다는 것을 알게 하시어, 절제력을 찾게 하소서! 이제, 시간을 죽이고, 먹기는 달콤하지만 아픔을 배설하고, 고통의 늪으로 추락시키는 무절제와 이별하리다. 의지와 긍정의 칼로 불안과 슬픔의 종기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절제의 세포를 이식하리다.
절제여! 당신은 새벽에 피는 나팔꽃이며, 땅 속에 묻혀서 건물을 지탱하는 기초입니다. 바르게 각이 진 당신의 고고함을 사랑했고, 당신의 높고 거룩한 성지를 사모하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는 성인의 가르침을 절제의 의미를 깨닫게 하소서! 이제, 실수의 상처를 줄이고, 애틋한 가족이 행복할 수 있도록 절제하리다. 평생 수련해도 절제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절제의 배를 타고 유혹의 강을 건너 영광의 광야로 가리다.

절제의 진화여! 당신은 자유와 절제의 이종(異種)결합으로 생겨난 새로운 절제입니다. 복잡하게 서로 엮인 세상에 나만의 절대 자유가 있을 수 없기에 스스로 절제하여 작은 자유를 찾겠습니다. 자유와 절제는 반대 개념이 아니라 교감의 관계임을 알고, 자유 속에 절제를, 절제 속에 자유가 공존하게 하리라. 이제 절제의 언어를 주저함과 억누름의 의미가 아니라, 꼭 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으로 진화시키리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폭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자유와 절제가 갈등하면 ‘이것이 나의 행복에 기여하는가?’ 라고 질문하고, 행복에 기여한다면 질서를 위반하더라도 행동하리다. 내게 허용된 밝음과 용기로 일을 선택하고 선택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리라.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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