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합니다 - 감사의 행복

입력 2010-10-16 21:30 수정 2011-02-14 14:33






인터넷을 통해 감동적인 사진(김형원님 작품)을 보았다.






사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 인간 존엄성, 삶의 의지,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함, 자기 생명에 대한 예우 ....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 행복(幸福)의 행(幸)자를 파자(跛字)하면, 양(羊)이 땅(土)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이다. 더 인위적으로 풀면, => 양이 땅에 대해 감사하는 형상, => 양이 땅이 생산한 풀에 대해 감사하는 모습이다. 결국 행복의 행은 감사를 의미한다. 행복(幸福)은 감사할 때 복도 온다는 합성어다.



만물의 영장, 우주의 주인인 인간이 감사함을 모르고 욕망에 잡히면 행복은 없다. 욕망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고, 만족과 행복은 마음으로 출발하지만, 감사할 줄 모르면 매듭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생명의 고마움을 모르면 욕망은 고삐를 풀고 끝없는 상승을 한다. 걸어갈 때는 차를 타고 싶고, 차가 생기면 기사를 두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 사이클이자 욕망의 상승도표다. 세상은 하늘과 땅이 있고, 하늘과 땅 사이엔 무한 공간이 있는데, 욕망이 저 높은 하늘만 쳐다보면 매사가 미흡하고, 불안하고, 나보다 좋은 조건으로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비교하게 된다. 비교 속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있던 행복도 소멸된다.




그래도 우리는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내가 할 일이 없다고 상심할 때,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다고 불평할 때, 가난한 나라의 어린 노역자들은 하루 일당 1달러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있고, 우리 사회가 불공정과 불평등 사회라고 비판의 날을 세울 때,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으며, 우리가 반찬 투정을 하고, 음식이 맛이 있다. 없다. 하면서 배부른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아프리카의 토속 촌에서는 하루에 한 끼니도 해결하지 못해 죽어가고 있고, 일부의 사람이 성형 수술을 받고 작품이 ‘좋다. 나쁘다.’를 따지고 있을 때, 교전지역의 장애우들은 신체의 일부를 잃고 땅바닥을 기면서 쓰레기장에서 음식을 찾고 있다. 우리가 브랜드를 따지면서 신발을 고를 때,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PT병을 납작하게 찌그러트려서 신발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가 안락의자에 앉아서 우울해 할 때, 하루의 생존을 걱정하는 인류가 전체 인구의 2/3인 40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래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위만 쳐다보면 매사가 불행이다.
행복은 마음의 선택이다. 마음(감정)의 스위치를 밝은 쪽을 선택하면, 두뇌의 프로그램 회로도 밝은 쪽으로 가동하여 힘과 의욕을 만들면서 행복을 느끼게 하지만, 어두운 쪽의 스위치를 올리면 두뇌는 어둡고 차갑고 우울한 일만 상기하면서 불행을 느끼게 한다. 행복은 훈련이다. 세상을 밝고, 편하고, 온전하게 보는 두뇌 훈련이다. 반대로 세상을 어둡고, 불편하고, 일그러진 눈으로 보면 행복을 잃는다. 마음이 뿜는 독소 때문이다.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심의 독은 현재를 지옥으로 만들고, 보다 쉽고 편하게 살려는 안일함은 풍요 속의 고통을 생산하고,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대우만 받으려는 자존심은 가슴 속에 가시를 키워서 자기의 성장 에너지를 빼앗고, 자기 고난을 비관하고 자기만 슬프다는 우울함의 독가스에 취하면 행복은 소멸된다. 행복은 마음이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일만 보이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현실의 부족과 결핍, 고통과 고민만 찾아온다. 부족과 고통을 새로움을 얻기 위한 인생의 에너지로 볼 때 행복하다.



상대 때문에 행복의 리듬을 잃지 말자.
상대의 무례와 괜한 시비 때문에 기분 상하고, 행동 리듬을 잃고, 자기 행복을 스스로 깬다면 이는 밥그릇에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고 그릇을 깨는 짓이다. 파리의 비행이 자유이듯, 상대의 교만과 오만도 자유다. 그의 교만과 오만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한다. 내가 나의 존재를 세우고, 보란 듯이 우뚝 서서 만족감을 느끼고 싶듯, 상대도 자기 자리를 세우고 싶어서 시비를 걸기도 한다. 상대의 시비를 어여쁘게 받아주자.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개가 두려워서 짖듯, 상대는 뭔가의 열등의식과 결핍으로 나에게 시비를 건다. 그 시비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자. 행복은 너무도 여리기에 예만한 반응을 보이면 행복은 사라진다.





쇠기둥에서 꽃은 피지 않는다.
꽃을 피우려면 꽃이 필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행복의 꽃도 행복에 필요한 요소를 갖출 때 핀다. 행복은 요행과 행운으로 생기지 않는다. 행복은 자기 감성 다스리기와 상대와의 조율, 그리고 지독할 정도의 자기관리에서 생긴다. 행복을 소멸시키는 요소 중의 하나가 타성(惰性)이다. 타성에 빠지면 생명의 실체를 보지 못한다. 타성은 미리 자기 선을 긋고 그 선 밖을 보지 않으려는 게으름이며,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감각이 없는 무딘 자세이며, 이미 익숙한 것에만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소극성이다. 타성은 파고드는 힘이 부족하여 대충 윤곽만 파악하고 넘어가려고 하고, 이익과 관련 없는 부분에는 생각의 신경 세포를 뻗지 않는 자폐성이다. 30년을 같이 살아도 자세히 보고. 이해하고, 서로 맞추어주려는 미세함이 없다면 그것은 어쩌면 남보다 못하다.

작은 일에도 감사, 감동, 감격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

투표보험설계사·택배기사 등 노동3권 보장, 어떻게 생각하세요?

  • 특수형태 근로자도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을 통해 권익을 보호받을 것 418명 37%
  • 4대 보험 적용 등 고용주의 부담이 늘어나면 일자리가 되레 줄 수도 우려 713명 63%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