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이왕이면 즐겁게 살자. - 즐거움의 행복


대청소를 하기 위해 열어둔 문으로 센바람이 들어와 아끼던 난초 화분을 깨트렸다. 난감했다. 바로 서있던 난초는 옆으로 누워서 전혀 내색을 못했지만, 나의 기분은 처참했다. 달라진 것은 화분이 깨진 것뿐인데, 마음은 엉망이 되고 즐거웠던 기분이 사라졌다. 깨진 화분을 수습하고 다시 새로운 화분으로 옮기고 모양새를 바로 잡자, 안심이 되었다. 인간은 대상에 의해 웃고 우는 감정의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다.

깨진 난초 화분을 통해 인간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의 감정을 체험했다. 꽃망울이 맺힌 난초가 깨진 것을 보는 순간에는 불쌍한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이 생겼고, 바람이 화분을 깨트렸다고 생각하니 원망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난초를 넘어뜨린 것은 바람이 아니라 문을 열어둔 나의 행동으로 원인을 돌리는 양보의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이 들었고, 바람이 센 날은 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는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의 네 가지 속마음이 동시에 지나갔다.

난초를 통해 일곱 가지 감정을 느꼈다. 아침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기뻐하던 (喜), 넘어진 것에 대한 노여움(怒), 깨진 것에 대한 슬픔(哀), 난초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懼), 난초를 아끼는 사랑(愛), 난초를 고생시킨 바람에 대한 미움(惡), 난초가 다시 살았으면 하는 욕망(欲)이 순차적으로 생겼다. 무지개 색깔을 동시에 배합하면 흰색이 되고, 사단칠정(四端七情)의 자연 감정을 동시에 섞으면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잡초를 보고 가슴이 뛰면 그는 즐거운 사람이다.

인간 활동의 9할은 즐거움 구매다.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 취미활동을 하고, 즐거움을 실감하기 위해 일을 하고, 쇼핑을 하고, 모임을 갖고,  여행을 한다. 즐거움은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작용(아~ 좋다.)이면서, 고통과 고민을 극복하고 얻는 희열(그래~ 이거야!)이다.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다.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느끼는 포만감이며, 안정과 평화, 사랑과 자아감을 느끼는 감정상태, 합격후의 감정처럼 어떤 인정을 받았을 때 생기는 존재감의 희열이며, 베풀고 느끼는 따스한 눈길이며, 등산처럼 힘들게 일을 완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다. 즐거움의 형태는 달라도 즐거움은 가슴을 움직이는 에너지다. 인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즐거움에서 생긴다.

꽃을 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으면 즐거움을 모르는 허깨비다.

인간은 누구나 즐거운 감동을 느끼고 싶은데 말처럼 쉽지 않다. 짧은 인생! 나의 지배권과 통제권을 내가 쥐고 있으면서도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 즐거움은 유리 그릇 같아서 쉽게 깨진다. 경솔한 상대가 나의 즐거움을 깨기도 하고, 환경오염과 공해, 사회불안, 불공정과 불리한 조건들, 보이는 음모 등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즐비하다. 50년 인생을 돌아보면서 아쉬운 일들은 – 신중하지 못하여 꿈을 접은 일, 여유가 없어서 즐겁게 살지 못한 일, 가까운 사람마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일- 등이다. 반성을 요약하면 지나온 삶이 즐겁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즐거움을 파괴하는 적은 나 안에 있다. 
걱정과 근심은 나의 즐거움을 통째로 앗아가는 형체도 없는 괴물이며, 자기가 만든 기준과 욕심은 불만 꾼으로 만들고, 습관과 취미, 인터넷과 약물 중독은 이미 있는 즐거움마저 쫓아버린다. 어린 코끼리가 쇠말뚝에 묶여서 큰 고통을 체험해 보면, 큰 코끼리가 된 뒤에는 나무 말뚝에 고삐를 걸쳐만 두어도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말뚝 – 징크스와 속설, 환상적 예언, 체면과 형식, 위축과 병적인 완벽함, 명예와 명분, 돈과 물질- 에 잡히면 한 발짝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묶이면 심신의 자유는 사라지고, 즐거움은 그림자 속의 빛처럼 존재하지 못한다. 즐거움을 찾는 방법을 보자.

1. 어디에도 묶이지 마라.

생각과 감성이 풍부해도 스스로 작아지면 먼지처럼 작아지고, 마음이 커지면 우주를 압축할 정도의 기운을 갖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주체는 ‘나’라고 자기 선포를 하자. 나는 내 행동을 주관하는 황제다. 황제는 신하들 눈치를 보지 않는다. 황제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다. 심신의 자유로움으로 즐거움을 만끽한다. 인간은 강한 존재이지만, 어디에 묶이는 순간 위대한 허깨비가 되어 스스로 자유와 존엄성을 잃는다. 마음이 눈이 자기기준에 묶이면 있는 대로 보지 못하고, 기분 나쁜 일에 마음이 잡히면 위축되고, 징크스에 묶이면 멀쩡한 바보가 된다. 묶이지 않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즐거움은 용기와 덕성, 감성과 영혼의 결과이면서 행운을 부른다. 즐거운 사람에게 기운이 모이기 때문이다.

2.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느껴라.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즐거움을 주고 있지만, 인간은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받지를 못한다. 인간은 단백질과 탄수화물, 수분과 뼈대 속에 영혼이 스민 복합 생명체다. 작아지면 단백질 덩이에 불가하고, 영혼이 광장을 펴면 우주를 덮는다. 즐거운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즐거움을 준다. 꽃은 눈을 즐겁게 하고, 바람 소리는 귀를 즐겁게 하고, 따스한 햇살의 감촉은 피부를 즐겁게 한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즐거움을 주고자 하지만, 나안에 즐거운 내가 없으면 어떤 즐거움도 없다. 즐거움은 이유도 없는 본능이다. 즐거움의 본능에 젖으면 고통이 보이지 않고, 아침 햇살을 보면서 살아 있음에 가슴이 뛰고, 기어가는 개미를 보면서 삶의 용기를 낸다. 화난 상대의 얼굴도 즐거운 눈으로 보면 내가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3. 대상에 맞추는 즐거움.

저마다 생명이 있고, 개성이 있고, 저마다 자유를 추구한다. 내가 대상을 통제하여 기쁨을 찾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산을 움직여 물길을 내는 것보다 어렵다. 대상에 맞추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르다. 내가 즐거울 권리가 있는 것처럼 미물도 인간도 다 즐거울 권리가 있다. 남을 움직이는 것은 어쩌면 그의 즐거움을 뺏는 짓이기도 하다. 그대로 두라. 내가 움직여서 기쁨을 누려라. 벌과 나비가 꽃을 찾아가서 꿀을 얻듯이, 내가 움직여서 기쁨의 꿀을 찾자.

오늘,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해 갈고, 다듬을 것이 뭔지? 를 생각해 보자.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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