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컴퓨터를 켜자, 악성 프로그램을 삭제하라는 배너가 떴다.
<삭제하기> 박스를 눌렀더니 결제를 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언젠가 똑 같은 배너가 뜨기에 컴퓨터를 지킬 사명감으로 결제를 했더니 매달 돈이 빠져나갔다. 이제는 당하지 않으려고 무시했더니 성가시게 자꾸만 떠올랐다. 결국 인터넷 접속을 끊어버렸다. 기계 언어가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고 자유를 제한했다. 기계에게 자유를 뺏겼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었다. 작은 사건은 내게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가?’라는 화두(글감)를 주었다. 자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모든 생명체는 자유를 원한다. 
자유란 얽매이거나 구속받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하려는 상태 동사다. 헌법은 개인의 자유를 -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 직업선택, 양심의 자유, 종교, 학문과 예술, 언론과 출판, 집회와 결사, 사생활 비밀 유지의 자유 등 사안별로 구분해서 열거하고 있고,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않는 이유로 경시할 수 없다.’고 포괄주의를 병행 적용하고 있다.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간 조직 명칭도 많고, 인류 역사는 자유를 찾아 투쟁했던 역사다. 개도 자기를 구속하는 줄에 묶이길 싫어하고 지렁이도 누가 밟으면 꿈틀거린다.

생명체는 자유를 갈구하지만 여러 이유로 자유롭지 못하다.
위험을 줄이려면 꼼꼼하게 주변을 살펴야 하고, 함께 살기 위한 부자유는 불가피하다. 스스로 만든 부자유가 문제다. 인간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싸움꾼이다. 욕심이 열정으로 변신하면 매일 쫓기듯 살고, 습관에 길들여지면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변화 없이 살고, 밥벌이를 위한 직장생활에 묶여서 살고, 밤에도 자지 못하는 가로등 옆의 벼처럼 환경의 구속을 받는다. 인간은 행복을 몰라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유가 없으면 행복은 없다. 마음의 절대 자유를 통해 행복을 찾는 절차를 보자.

1) 마음만은 절대 자유를 누리자. -마음의 자유

인간은 불편한 자유인이다. 인간은 보다 자유롭기 위해 문명의 도구와 사람을 부리지만, 부리면서(지배하면서) 부림(지배)을 당한다. 인터넷을 부리면서 해킹을 당하고, 핸드폰을 활용하면서 자기 위치를 노출시키고, 부하를 부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몸을 사용하고 영혼의 씀씀이를 결재하는 것은 ‘나’인데 대상에 집착하면 대상에게 잡혀서 나를 잃는다.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마음을 비우고 길들여진 타성을 깨야 한다. 열린 생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찾고, 선택과 권리에 욕망을 섞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아야 한다.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마음이 만드는 자유다. 인간에게 욕심이 있는 한 돈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는 없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행복한 자유, 상대가 시비를 걸어도 평상심을 유지하는 자유만이 있을 뿐이다. - 마음의 크기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2) 스스로 만든 구속을 깨라. - 행동의 자유

나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를 구금하고 구속하는 것은 타인과 불공정 사회가 아니라 집착과 걱정, 예민한 자존심과 계산의식 등 마음의 질병이다. 마음의 질병은 행동의 자유를 막고 주저하게 하는 고삐다. 마음은 무한 자유의 세계에 놀 수 있지만, 마음이 욕심에 잡혀 작아지면 바늘 하나 세울 자리도 없다. 손해를 볼까봐 작은 일에도 마음이 걸리고, 불쾌한 일로 마음 상하고, 욕심을 놓고 버리지 못하면 잡히고, 붙들리고, 허상에 속는다.

미워하면서도 정(情) 때문에 관계를 끊지 못하고, 미련과 후회로 과거에 잡히고, 계산과 구분의식에 붙들려 평정을 잃고, 명분에 잡혀서 내실을 잃고, 가깝다는 이유로 가까운 이를 너무 간섭하여 불화를 만들고, 다양한 관계 때문에 가기 싫은 자리도 가야한다. 나의 마음과 행동을 불편하게 괴롭히는 것은 자기가 만든 원죄와 타성에 잡히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능력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면 남의 자유마저 유린한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과 담배, 게임과 극단적 취미에 빠지면 (본인들은 자기가 도구를 애용한다고 하지만), 도구의 노예가 된다. -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든다.

3) 너무 남을 의식하지 마라. - 대인관계의 자유

더불어 사는 사회는 서로가 고삐가 되어 서로의 행동을 제한한다. 공동운명체의 고삐는 개인을 불가피하게 부자유(교통 신호에 걸리고, 법에 걸리고, 때로는 헌법에도 없는 괘씸죄에 걸리는)하게 하며, 사회의 다양한 고삐(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면서 서열을 매기는 인습의 고삐, 서로 살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동운명체 고삐, 구더기 무서워 상식적 편리마저 폐기하는 규제의 고삐, 개인별 사정을 무시하는 시스템의 고삐,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대본과 도면의 고삐)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 공동운명체와 사회의 고삐는 개인의 자유를 일정부분 앗아간다.

스스로 만드는 고통의 고삐가 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이치를 모르면 부자유의 고삐에 바로 잡힌다. (공짜 마케팅에 속으면 자기 정보를 노출시켜 무수한 스팸에 시달린다.) 남을 너무 의식하면 스스로 멍에를 지고 부자유(위축과 두려움, 체면과 형식)를 초래한다. 내가 지금 어떤 고삐에 걸려 사는지를 돌아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으로 선포하고,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나의 자유를 찾아야 한다. - 사회가 제공하는 고삐와 내가 만든 멍에에 잡히지 말고 당당하게 나가자.

4) 욕망을 해방시켜라. - 영혼의 자유
자유는 육체와 영혼의 조화에 있다. 욕망이 억압된 상태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은 없다. 팔딱거리는 욕망은 누가 억압한다고 죽지 않지만, 영혼이 욕망을 안아야 진정을 취한다. 욕망은 영혼 속에서만 에너지가 될 수 있다. 영혼이 작은 울타리를 치고 고고하게 굴면 정신은 고집과 의심에 잡히고, 몸은 도구, 게임, 영상에 중독되어 자기도 모르는 대상에게 자기를 뺏긴다.

자유롭고자 하면 모든 것을 크게 보는 영혼이 필요하다. 자기 기준과 숫자에 길든 자기 판단으로 세상과 상대를 비난하고 불평하지 말자.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에너지와 저마다의 DNA에 설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살고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의 생존 방식이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지성과 권력을 갖고도 영혼을 파는 사람은 그릇이 작기 때문이며, 영혼을 팔 수 밖에 없는 사람은 삶이 벅차기 때문이며, (자기 관리에 실패하여) 추한 사람은 영혼이 욕망의 프로그램을 이기지 못할 뿐이지 원래 악인이 아니다. 영혼의 눈으로 보면 선과 악의 구분, 이익과 손해의 경계선이 사라진다. 그러나 영혼은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자유, 소수의 이익과 편리를 위한 자유는 용서하지 않는다. - 자유는 욕망과 영혼(양심)의 결합물이다.

오늘, 나의 자유와 행복 지수를 점검해 보자.
지수(地水)와 화풍(火風)의 결합체인 인간은 죽으면
지수화풍을 자연에 돌려주고 자유의 기운으로 돌아가지만,
죽어서 자유를 찾는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살아서 자유로워야 한다. 그 방법은 뭔가? 
박필규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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