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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정의 - 더불어 사는 행복

벌초를 위해 고향을 다녀왔다.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길게 연결된 주차장 상태였는데도 끼어들기를 하는 불공정한 운전자가 있었다. 그것도 가족을 함께 태우고 말이다. ‘인간 세상에 정의는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가졌다. 갈수록 이 세상이 혼란과 고통이 많아지는 것은 ‘정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요즈음 정의(正義)와 공정(公正)한 사회가 화두다. 이는 그동안 어둡고 불공정한 면이 많다는 반성의 목소리이면서, 사회에 정의가 없으면 서로가 행복할 수 없다는 각성 때문이다.

개인의 정의(正義)는 바르고 의로운 행동, 노력 이상을 바라지 않는 정신, 자기 일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분수, 남에게 피해를 안 주는 행동이다. 사회의 정의는 욕심을 제어하는 안전장치, 그의 것을 그에게 주는 사회시스템, 사회가 썩는 것을 예방하는 소금이며, 눈앞의 이익보다 대의를 생각하는 자세, 서로 살려는 정신과 행동의 규약이다.

그러나 정의는 잘 지켜지는 않는다. 개인이 정의를 실천하려면 절제와 자기관리, 희생과 고행이 따르기에, 달구어진 돌을 만지듯, 마음이 찝찝한 상태에서 슬거머니 불의를 저지른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윗물이 맑고, 엄격하고 일관성 있는 룰, 함께 가는 동반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약자의 손해를 경쟁에 뒤진 자연현상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와 진흙을 만진 손으로 반찬을 만드는 구조 하에서는 정의는 요원하다. 정의가 없는 사회는 모래성이며, 정의가 없는 행복은 쓰레기장의 장미다.

행복은 정신의 자장(磁場)으로 만드는 1인 게임이다.

행복은 일정 부분 개인의 영역이며 개인의 책임이다. 행복은 골프처럼 자기 목표와의 싸움이며, 행복은 마음만 먹으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게임이며, 자신의 일에 푹 빠져 자기 만족감으로 얻는 온전함, 시련을 이긴 상태에서 느끼는 자기감정이다. 죽을 때 하나의 기억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새해 벽두에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 눈 쌓인 소나무에서 나오는 솔향기? 도봉산 정상에 핀 진달래 동굴? 벼가 익어가는 연노랑 물결, 눈이 시릴 정도로 맑았던 경포 앞 바다… 아니다. 당연히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을 가져가려고 할 것이다. 육체라는 껍질을 놓고 떠날 때 행복했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간직하는 자기 분신이다.

행복은 교감을 통하여 얻는 상대성 게임이다.

행복은 자기만족을 위한 1인 게임이면서, 탁구처럼 상대가 있어야 진행할 수 있는 상대성 게임이다. 행복은 어떤 대상과의 교감에서 얻는 에너지다. 같이 있어도 즐거운 마음, 바라만 보아도 웃을 수 있는 뿌듯한 정서다. 행복을 만드는 재료(조건)는 경제적 안정, 기쁘게 몰입할 수 있는 일과 대상, 삶의 의미와 살아 있게 하는 의미, 노동과 명상 속의 자기 기쁨 등 행복의 조건은 비빔밥의 재료처럼 다양하다. 한두 개 요소로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모든 요소를 갖추고도 불행한 사람도 있다. 행복은 상대로부터 오는 교감의 빛이기 때문이다. 어떤 방해를 받으면 행복은 한계가 있다. 홀로 무인도에 산다면, 나 홀로 독야청청할 수 있고 나 홀로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홀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살면서 상대의 표정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행복은 개인의 정신과 상대의 반응,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행복과 정의는 일정 부분 연결되어 있다.

세상은 서로 엇물려 있고 더불어 사는 공간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정의가 없다면 서로 불행하다.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행복할 요소를 갖추어도 서로 흔들면 누구도 행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러하다. 정치가 개인 행복에 영향을 주고, 사회 정의가 없으면 행복도 없다. 내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자족 시스템 속에 산다면 나 홀로 고고하게 행복할 수 있지만, 시장중심 사회에서 경제와 감성의 정의가 없다면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다. 뺏긴 것이 없으면서도 마음으로 뺏기면서 불행을 느끼게 된다. 서로 행복하기 위해서 정의로워야 한다. 정의는 서로의 행복을 보장한다. 개인의 행복은 스스로 바르고 정의로운 양심에서 피는 꽃이며, 가정의 행복은 구성원이 모두 건강하고 서로 아끼는 애틋한 마음에 열리는 과실이며, 조직의 행복은 정의의 바탕 위에서 룰대로 흘러갈 때 다수가 행복하다. 정의가 없는 곳에는 어떤 행복도, 어떤 풍요도 존재하지 못한다. 서로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다. 공정한 행복 사회가 되려면 약자의 아픔을 사회 모순으로 인식하는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정의와 행복의 최종 상태는 더불어 사는 것이다.

개인은 갈대처럼 약하지만 더불어 사는 세상은 강철처럼 강하다. 서로 뜻을 같이하며 의지하기 때문이다. 개인 병실에서 홀로 치료 받는 환자보다 단체 병실에서 환자끼리 대화하고 격려할 때 완치가 빠르다고 한다. 인간은 병이 들어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증거다. 인류는 오랜 기간 흩어져서 다른 환경에 살다보니 행동문화는 다르지만 선과 평화를 갈구하는 정의의 맥박은 같다. 정의의 맥박은 더불어 사는 상태에 이르러야 순조로워진다. 더불어 사는 사회는 이해와 사랑이라는 통로가 있고, 서로를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숙함이 있다. 서로 지탱하고 공간을 펴주는 담과 담쟁이넝쿨처럼 서로의 장점을 나누면서 조화를 찾고, 내 것이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하게 받드는 자세가 필요하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정의와 행복이 공존하는 상태다.

내가 소중하게 아끼고 책임질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오늘 한번 명단을 적어보자.



 

198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 1988년 '국방일보' 호국문예 수필 분야 당선, 2004년 중령으로 예편, 월간『시 사랑』을 통해서 등단, 2004년부터 작가로 활동 중이며, 인문학과 군사학을 접목한 새로운 집필 영역 개척, 2014년 '군인을 위한 행복 이야기', 2013년 '버리면 행복한 것들' , 2012년 '군인을 위한 경제 이야기', 2009년 '경제형 인간' , 2008년 '행동언어' , 2004년 '마주보기 사랑' 출판. 현재 파주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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