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내커

공정사회와 사라진 개천의 용

현실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 사회였으면, 공정사회라는 것이 중요한 정책적 결단이자 정치적 선언이 될 수 있는건가. 이런 현실이 더 안타깝긴 하다. 복지보단 성장이 우선이고, 모두보단 잘나가는 선두들이 우선이 되는 사회가 암묵적으로 묵인되었던 결과다. 단지 말 뿐 아니라, 진짜 공정사회를 지향한다면 엄청나게 많은 저항에 부딪히게 될거다. 기존의 기득권을 가진 이들에겐 공정사회가 그리 달갑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진짜 공정사회를 말하는건지, 말뿐인 공정사회를 말하는 건지는 오래지나지 않아서 드러날 것이다.

공정사회가 되려면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 진짜 공정은 무조건적인 기계적 균등이 아니라, 상대적 균등이기 때문이다. 더 가진 사람이 더 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공정한 일이다. 그러니 앞으로 공정사회가 말처럼 된다면 부자들은 더 많은 세금을 기꺼이 그리고 당연히 내야할 것이다. 부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서민들의 웃음이 많아지는 것으로도 공정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공정해질까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회가 공정해지려면 교육의 균등, 기회의 균등에서 출발한다. 공정이라는 말이 선언이나 구호처럼 쓰여지는 것은 참 곤란하다. 말 자체로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지지받아야할 좋은 말이다. 하지만 불공정한 현실을 이름만 고쳐 부른다고 해서 순식간에 바뀌는게 아니다. 고장난 물건의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포장한다고 그것이 질좋은 물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잠시 속을 순 있다. 하지만 계속 속일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어리석진 않다.
 
분명 현실은 아주 공정하지 않다. 교육에서 가장 큰 사회적 수혜를 받고 기회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서 있는 서울대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서울대 진학자 중 강남권의 비율이 어떤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고, 서울대 진학자 부모의 직업에서 부와 명예를 가진 사회지도층의 비중도 어떤 대학보다 높다. 서울대 진학자 중 과외를 비롯한 사교육을 받은 이들의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다. 시골에서 나고자라 교과서만 위주로 공부만 열심히 했다는 가난한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기는 점점더 보기 어려워졌다.

강남의 집값이 전국 어디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강남의 대치동은 입시학원가의 메카처럼 불리며 강남 집값을 이루는 중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의 높은 사교육비는 보통 샐러리맨 부모로는 감당하기 힘든 고가다. 돈이 곧 성적과 비례되는 것이 현실이다.
비싼 등록금도 공정사회를 가로막는다. 가난한 이들에겐 학자금 대출이라는 빚내서 공부하라는 무책임한 방치보단, 그들이 더 많은 장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고학력 인플레이션부터 바로잡아야 하겠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닐거다.

좋은 학군이라 불리는 곳의 집값은 프리미엄이 붙는게 당연한 일이 되었고, 고위공직자 청문회때 드러난 위장전입 사례에서도 자기 자식만 유리하자고 불법과 탈법을 저질러서라도 좋은 학군으로 옮기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었고, 또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도 절대 공정한 일이 아니며, 교육과 기회의 균등에서도 어긋난다.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등은 불공정사회의 전형적 행태다. 이런걸 밥먹듯 한 사람들을 믿고 따르라는게 절대 공정사회일 순 없다. 이런 상황을 고치지 않고 방치한다면 공정사회는 말뿐인 구호인게 틀림없다. 그러니 공정사회에 대한 얘기에서 의심사지 않으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자기 유리한 상황에서만 공정을 얘기하는 것만큼 불공정한게 또 있겠나.

고위공무원이 되는 최선의 수단이던 행정고시가 특채 인원을 늘려가며 시험 위주보다는 전문성과 경력을 평가하는 식으로 채용방식이 바뀌어 간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로스쿨제도는 가난한 이들에겐 사법고시의 벽보다 더 높은 벽이 되고 있다. 분명 효율과 합리라는 말로 새롭게 개선되는 것을 문제삼지는 않는다. 다만 효율과 합리 이면에 숨겨진 불공정의 소지들을 경계해야 한다.

무조건 똑같이 대하는게 공정이 아니라,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 좀더 진화된 공정이다. 애초부터 잘먹고 잘자라 운동까지 잘한 덩치큰 부잣집 아들과 시골서 가난하게 자란 약골 아이를 같은 조건에서 맞붙게 하는 것은 그리 공정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에 외교부 유일한 특채 합격자가 장관의 딸이었던 사실이 드러나 지탄을 받자 합격 자진취소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녀의 능력과 전문성이 탁월했다 치더라도 분명 공정한 게임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부와 명예와 권력까지 가진 부모를 둔 그녀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누렸을 것이기에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 비해서 애초부터 공정하지 않은 출발을 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말 공정사회가 된다면 개천에서 용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교육의 균등, 기회의 균등이 공정사회의 출발이기에, 이 두가지만 공정하게 이뤄져도 다시 우리의 개천에는 용들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비해 현재는 개천에서 용나는 일이 대폭 줄었다. 그나마 지금 기성세대 중에선 아직도 그런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지금 2030 세대를 보라. 그 세대 중에서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크게 줄어들었고, 지금 상황이 유지되는 한 앞으론 더더욱 보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미 불공정사회가 극에 다달았다.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이 될 개천의 용을 살려내야 하지 않겠나. 개천에서도 용이 나오는 진짜 공정사회를 원한다. 가짜말고 진짜!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www.digitalcreat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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